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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40분의 하루

차라리,  하루살이가 되자.  오늘 하루만 생각하며 살아보자.
지금 우리가 괴로워하는 온갖 오늘의 고뇌들은 대개가 현재가 아닌

내일에 대한 비현실적 번민들이다.
즉 괴로움도, 어려움도, 쓰라림도, 아픔도 아닌, 두려움 때문에

우리는 힘겨워하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아무리 큰 고통도 유한하지만, 공포는 무한하다.

발행인 박인학

 

 

 

‘3월 1일’을 <위키백과>에서 보면, ‘그레고리력으로 60번째(윤년일 경우 61번째) 날에 해당한다. 다만, 윤년인 경우에는 이전 연도 12월 1일과 같은 요일이 된다(3월 31일까지).’라는 피상적 설명으로 시작된다. 이어서, 그 ‘3월 1일’에 일어난 사건들로는, 705년 86대 교황 요한7세의 취임, 1627년 정묘호란의 발발, 1936년 후버댐의 완공, 1947년 IMF의 업무개시, 1969년 대한항공의 창립, 1974년 워터게이트사건의 발생, 1995년 YTN 등 케이블TV 방송국들의 개국, 1996년 국민학교에서 초등학교로 명칭변경 등이 있다. 탄생의 역사를 보니, 대단한 길일이라 아니 할 수 없었다. 1265년 이탈리아의 작가 단테 알리기에리, 1445년 이탈리아의 화가 산드로 보티첼리, 1810년 폴란드의 작곡가 프리데리크 프란치셰크 쇼팽 등 인류문화사 불세출의 거성들과, ‘빌보드 싱글차트 Hot100’ 17곡 동시진입으로 51년 만에 ‘비틀즈’의 기록을 깼다 해서 화제가 된 캐나다의 1994년생 ‘사고뭉치악동’ 가수 저스틴 비버가 이 날에 태어났단다. 하지만 우리네에게 각인되어 있는 것은 오매불망의 단 하나, 1919년 기미년의 ‘3.1절’ 뿐이다. 여하튼 그 하루들에는 크건 작건 간에 엄청나게 많은 세상만사들이 빼곡히 묻혀 있을 게다. 즉 ‘년(年)’과 ‘월(月)’과 ‘일(日)’을 붙여 칭해지는 주야장천(晝夜長川)의 각 날들에는 인류역사 속의 ‘365분의 1’ 정도 되는 인간들이 태어났을 테고, 그쯤 되는 사건들이 일어났다는 이야기이다. 그러니 간단히 말해 오늘이 모월모일이든 간에, 현재 이 땅 위에 살고 있다는 70억 인구 중 대략 2천만 명의 생일이란 사실이다. 내겐 숨만 쉬다 저문 오늘 하루였을지 몰라도, 그 나날들은 말 그대로 희비의 쌍곡선을 넘나드는 엄청난 다사다난들의 시종(始終)이었을 게다.

 

 

인생이란, 결국 하루들의 집대성이다. 이 하루와 저 하루가 얽히고설키며 짜이고 꼬인 인적과 행적의 흔적들이 바로 한 인간의 일생일사(一生一死)이다. 그 인생살이 중에는 황금빛 씨줄도 있고 암회색의 날줄도 있었겠지만, 그 어느 게 더 중하다 말할 수는 없다. 분명한 것은 그 짜임 중에 어느 한 코만 빠져도 그 뜨개질은 개판이 되고 말기 때문이다.

 

 

1분이 지루한 적도 많았다. 어찌 보면, 24×60=1440분짜리의 하루는 매우 긴 간극의 시간이다. 누가 찾아냈는지, 1분에 할 수 있는 일도 많았다. 물 500ml 마시기, 푸시업 15개 하기, 전자레인지에 햄버거 돌리기, 셀카사진 10장 찍기, 200m 달리기, 커피포트에 물 끓이기, 핸드폰배터리 갈아 끼우기, 고양이세수 하기, 옷 갈아입기, 수건 5개(장) 개기, 옷걸이에 옷 10개 걸기, 컴퓨터 부팅하기, 글자 300자 쓰기, 키보드로 1000타 치기, 그리고 한번 크게 울거나 웃기… 이것들 말고도 별의별 게 다 있을 게다. 하지만 이 허접해 보이는 것들 중 한두 가지조차도 않고 멍하니 지낸 날들도 부지기수일 테니, ‘얼마나’가 아닌 ‘어떻게’가 중요한 게 시간이란 건 맞는 듯하다.

 

 

‘하루가 다르다’는 말이 있다. “당연하지! 그것도 말이라 하냐?” 싶었는데, <사랑의 블랙홀;Groundhog Day, 1993>이란 요상한 영화가 있었다. TV 기상통보관인 한 남자(빌 머레이 分)가 매년 2월 2일에 성촉절이 개최되는 시골마을로 취재를 갔는데, 아침에 눈만 뜨면 어제로 되돌아가는 시간의 마법에 걸린다. 처음에는 혼자만 다가올 일상을 혼자만 미리 안다는 사실을 장난스럽게 즐기지만, 그것도 하루 이틀, 결국은 그 무료함 때문에 자살을 택하게 된다. 그러나 다음날 아침이면 침대 위에서 다시 어제와 똑같은 오늘을 맞게 되니… 다행히도 코믹&로맨틱 판타지인 영화이기에, 자기중심적이고 시니컬했던 주인공은 착한 행동을 하다 사랑도 얻게 되고 그토록 기다리던 내일로 돌아온다는, 그저 시시껄렁한 킬링타임용 영화임은 분명했다. 그런데 이따금씩 ‘만일 내게도 그런 일이…’라는 망상이 오락가락 했다. 그래, 어제와 같은 오늘이었고 또 오늘과 같은 내일이라면, 제 아무리 태평성대 속에서 부귀영화만 누리는 권문세족이라도 결코 달포를 넘기며 희희낙락 호의호식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미래는 현재 우리가 무엇을 하는가에 달려 있다.” 마하트마 간디가 남긴 말이다. 차라리, 하루살이가 되자. 오늘 하루만 생각하며 살아보자. 지금 우리가 괴로워하는 온갖 오늘의 고뇌들은 대개가 현재가 아닌 내일에 대한 비현실적 번민들이다. 즉 괴로움도, 어려움도, 쓰라림도, 아픔도 아닌, 두려움 때문에 우리는 힘겨워하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아무리 큰 고통도 유한하지만, 공포는 무한하다. 또 공포는 막연하다. 왜냐하면, 실상은 공포에 대해서는 곰곰이도 꼼꼼히도 생각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별도 달도 없는 한밤중에, 아니면 혹여 눈을 질끈 감은 채 어둡다며 애간장을 태우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요즘 세상이 칠흑의 야음(夜陰) 중인 건 맞는 듯하다. 물론 극지방에서는 반년 가까이 지평선 아래로 해가 내려가지 않는 백야(White Night)나, 해가 뜨지 않고 밤만 지속되는 극야(Polar Night) 현상도 있긴 하다. 지금이 바로 그 마지막 극치(極致)의 시대인지도 모르겠지만, 만일 그 극한에 다다른 시간이라면 해가 돌아올 날도 그리 멀지 않다는 게다.

 

 

만인에게 한 날이 귀하듯, 땅 위에 세우고(建) 쌓는(築) 일을 업으로 하는 우리에게는 한 평(坪)이 더없이 귀하다. 1坪, 1.8m의 제곱으로 약 3.3㎡에 이르는 넓이임은 다 알 게다. 이제는 법정계략단위인 ‘미터’에 밀려 구세대의 유물로 전락하고 말았지만, 6척 장신인 남정네가 이리저리 누워 구를 만한 광(廣)이었으니 이보다 인본적인 단위(Human Scale)도 없는 게다.
이 坪과 坪들을 모아 만든 게 집이니, 난 순우리말인 ‘집’을 두고 ‘모을 집(集)’이라고도 한다. ‘집과 계집은 가꾸기 탓’이란 옛말이 있다. ‘남자가 존재하는 이유는 여자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라는 ‘신(新)남존여비’의 이 세상에서는 어느 귀신이 잡아갈지 모르니 계집은 빼고 집만 두고 말한다면, 고대광실(高臺廣室)의 저택이든 일간두옥(一間斗屋)의 오두막이든 집은 손질하며 가꾸기에 달렸다는 것이다.

 

 

그나마 공간은 함께 거들어 치우고 닦고 고치며 살지만, 집처럼 사고팔 수도 없고 그 누가 들어설 수조차 없는 나만의 시간은 나 혼자만의 의무요 권리이다. 오늘이 쇠털같이 하고많은 날들 중의 그저 어느 하루라 여길지 몰라도, 오늘로서는 분명히 마지막 날이다. “마치 내일 죽을 것처럼 살되, 영원히 살아갈 것처럼 배우라.” 이도 간디의 말이었다. 또 소포클레스가 말했다. “내가 헛되이 보낸 오늘 하루는, 어제 죽어간 이들이 그토록 바라던 내일이다.”
지금, 몇 시? 오늘의 남은 시간이라도, 죽도록!
‘정말, <어바웃 타임:About Time, 2013>이란 영화도 있었지!’ 레이첼 맥아담스의 싱그러운 미소를 찾아가는 시간여행! 그것도, 시간나면 봐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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