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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3월 9일, 알파디자인 혁명기념일

 이세돌이  말했었다.  “알파고는  아름답고 창의적인 수를 두었다.”

그건, 디자이너가 하는 일인데…
알파고의 이 파고를, 우리 인류는 과연 넘을 수 있을까?
한국기원은 알파고라는 인공에게 아마추어가 아닌

프로 명예9단증을 수여했다. ‘제1호’라 적혀 있었다.

박인학│발행인

 

 

인류대표! 멋져 보였다! 하지만, 그 찬란하고 명예로운 칭호를 받고 나섰던 우리의 장수가 ‘1승 4패’라는 처참한 전과를 가지고 돌아온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제1, 2, 3국에 이어 마지막 제5국에서도 불계패했고, ‘신의 한 수’라는 78수를 놓은 제4국에서만 귀중한 유일무이의 불계승을 거두었다. ‘아름다운 패배’라 했다. ‘승리는 알파고이고, 영웅은 이세돌’이라 했다. ‘이세돌이 1승을 거둔 것은, 기계가 아직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줬다’고도 했다. 그런데 세계적 외신들의 이 찬사들이 어째 나를 더 비참하게 만듦은 어쩔 수 없었다. 다 좋다! 그러나, 두렵게 만드는 건 바로 그 단어였다. “인류대표!”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상에 처음으로 인류가 나타났다는 수 백 만년의 역사는 말고라도, 소위 ‘슬기로운 사람’이란 뜻의 현생인류 호모사피엔스(Homo sapiens)가 등장했다는 몇 만 년의 시간동안 ‘우리 인류’는 ‘우리 인류’하고만 겨루고 다투고 싸우면서 생존을 이어왔다. 자신의 고향을 대표하는 ‘시도대표’, 나아가 나라를 대표하는 ‘국가대표’, 간간이 대륙간 경쟁을 벌인다는 ‘대륙대표’만 있었지, 인류가 아닌 그 누구와의 싸움을 해본 것은 단지 SF(Science Fiction Film)영화 속의 스토리뿐이었다. 그래서 언뜻은 그럴싸하게 보이나 그 어느 사전에도 나오지 않는 ‘인류대표’라는 이 신조어가, 이리도 섬뜩하게 느껴지나 보다. 여하튼 엄청난 적수가 나타난 것만은 분명한 듯싶다.

 

2016년 3월 15일. 대한민국의 서울 광화문 포시즌스호텔에서 열린 알파고와의 제5국이 4시간 59분간의 치열한 혈투 끝에 우리 인류대표의 패퇴로 막을 내리던 그날은, 공교롭게도 우리 인류가 외계생물(ET)에 대한 접촉을 시도한 것을 기념해 정했다는 ‘World Contact Day’란 국제기념일이었다. 그나마 우리가 상상만 하던 막연한 인류 공동의 적은 저 외계인뿐이었는데, 이제 다른 맞수가 우리의 이 지구 안에 출현한 것이다.
“도대체 알파高가 어디 있는 학교냐?”며 호들갑을 떨더니, 캐나다 남동부 온타리오주에 실존한다는 과학·수학·컴퓨터공학 명문고 ‘Alpha high school’까지 찾아내며 ‘카더라뉴스 신흥명문고 판’을 만들어내게 한 알파고. 외신기자들에게 영어해설을 해주던 크리스 갈록 미국바둑협회 부회장이 자신도 모르게 ‘he’라고 지칭했다는 ‘AlphaGo’의 작명은, 구글의 지주회사인 ‘Alphabet’의 사명(社名)과 그리스문자의 첫 번째 글자이자 최고를 뜻하는 ‘α’라는 단어에, 영어로 바둑을 뜻하는 ‘Go’를 덧붙여 이루어진 거란다. ‘그’는 오만불손하게도 예(禮)와 도(道)의 기(技)라는 기단(棋壇)에서, 이미 태어날 때부터 “나 알파고가 기왕(棋王)이며 기성(棋聖)이다!”라고 호언장담하며 탄생한 것이다. 놀라운 또 한 가지는, 알파고의 모체인 ‘구글 딥마인드(Google DeepMind)’라는 회사의 이름에 담긴 속뜻이었다. Deep Mind, 말 그대로 ‘깊은 마음’ 정도로만 보이지만, 불교에서 말하는 묘리(妙理)와 선도(仙道)를 구하며 여래(如來)의 본원(本願)을 향하는 깊은 심심(深心)이라는 저의가 숨겨져 있었다. 알파고는 너무도 인간적 문중의 소생이었다.

 

AlphaDesign! 만약, ‘알파디자인’이 태어난다면? 이미 베타 버전 테스트에 돌입한 디자인 프로그램은 여럿이다. 그러나 디자이너들 모두는 한 입으로, 인간 창의력의 절대적 우위만을 거론하며 강 건너 불 보듯 손 놓고 있던 게 사실이었다. 그런데 긴 겨울가뭄 때문인지 얼음이 녹은 우리네 하천은 그 폭이 눈에 띄게 좁아지다 못해 바닥을 드러낼 지경이 되었다. 누군가 저 강 건너 메마른 갈대밭에 작은 불씨라도 던져 놓는다면, 그 화기는 금세 우리 얼굴을 화끈거리게 만들 성싶다. 마치 조물주라도 되는 냥 ‘무(無)에서 유(有)를 만든다’며, 되지도 않을 너스레를 떨던 몇몇 영장(靈長)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특별한 준비는 없다. 알파고의 대국 요청을 받아들이기까지 채 3분도 걸리지 않았다. 인공지능과의 대결 시기가 생각보다 빨리 와서 어떨지 궁금했고, 호기심 해결을 위해 직접 도전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 5대0 승리를 장담하지만 인간적 실수가 나온다면 한판 정도는 질 수 있겠다는 생각은 든다. 하지만 첫판부터 진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알파고와 임전하던 이세돌의 당찬 일성이었다.
제1국, 186수만에 알파고 불계승. “더운 피 흐르는 인간이 쇳덩이에 무너졌다. 원조가 인간 흉내 내던 모방품에 당했다. 산업혁명에 비견될 사건이다. 그런데 왠지 으스스하다. 알파고의 창의적 수순에 깜짝 놀랐다. 알파고는 생각보다 깊은 바둑을 둔다. 기술의 가치가 인간의 가치를 압도하는 게 두렵다. 인간이 유일하게 지능을 가진 존재라는 자부심이 깨질 때가 되었다. 기술 발전을 중단할 수는 없으니, 사람이 기계를 어찌 부릴지 고민하는 자의식을 가져야 할 때가 되었다. 기계가 인간을 능가하는 궁극적 승부는 이미 정해진 길이다. 인공지능 연구는 악마를 소환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인간들의 말이었다. 그리고 딥마인드는 “우린 달에 착륙했다. 이세돌에게도 경의를 표한다.”며 환호를 내질렀다.
제2국, 211수만에 알파고 불계승. “어떻게 지는 지도 모르고 졌다. 알파고는 도무지 약점이 없다. 충분히 놀라 이제는 할 말이 없을 정도가 됐다. 인간이 몇 시간씩 생각해야 하는 장면에서 짧은 시간 결단을 내리는 모습을 보면 경이로울 뿐이다. 알파고의 능력 한계는 아직 드러나지 않은 것 같다. 한판이라도 이기고 싶다.” 이세돌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그리고 ‘지구라는 행성에서 가장 똑똑한 사나이’가 된 ‘알파고의 아버지’ 데미스 허사비스는 “집에서 나는 검은 양과 같은 외계인이었다.”며 씁쓸한 회고를 했다.
제3국, 176수만에 알파고 불계승. “알파고는 승리의 기쁨도, 패배의 서러움도 모르고, 오로지 계산과 예측만 한다. 알파고를 만든 개발자도 알파고의 정확한 실력은 모르고 있을 공산이 크다는 게 더 무섭다.” 인간들의 말이었다. “이세돌이 패한 것일 뿐, 인간이 패한 것은 아니다.” 이세돌은 말하며 고개를 숙였고, 딥마인드는 “이세돌에게 배우기 위한 대국임은 명확하다.”라 했다.
제4국, 180수만에 이세돌 불계승. “한 판을 이기고, 이렇게 축하를 받기는 처음이다! 정말 무엇과도 바꾸지 않을 값어치를 매길 수 없는 승리이다!” 이세돌이 외쳤고, 사람들은 그를 ‘갓(God)세돌’이라 칭송했다. 그리고 딥마인드는 “이세돌은 결정적 한 수로, 알파고를 충격에 빠뜨렸다”며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제5국, 280수만에 알파고 불계승. ‘알파고처럼 생각하고, 이세돌처럼 도전하라.’는 메시지만 잔잔히 남았다. 그리고 딥마인드는 “인공지능의 잠재력을 확인했다. 하지만 이번 승리는 작은 발걸음 하나에 불과하다. 정해진 일만이 아닌 스스로 학습하고 해결책을 찾는 알파들을 찾는 게 목표이다. 알파고를 다양한 목적에 사용할 것이다.”
그래, 이게 바둑판 위에서 끝날 일만은 결코 아닐 듯싶다.
“이세돌은 데이터베이스 곧 천여 명의 프로기사가 훈수를 두는 상대와 싸워서 졌을 뿐이다. 사람이 만든 자동차가 사람보다 빨리 달린다고 두려워해야 하나?” 1202개의 CPU(컴퓨터중앙처리장치)와 176개의 GPU(그래픽처리장치)를 탑재하고 1000대 서버를 활용하는 알파고와의 ‘Google Show’를 두고, 이어령 선생님은 이 시대의 어른다운 일침을 가하셨다.
그러나 이세돌이 말했었다. “알파고는 아름답고 창의적인 수를 두었다.”
그건, 디자이너가 하는 일인데…
알파고의 이 파고(波高)를, 우리 인류는 과연 넘을 수 있을까?
한국기원은 알파고라는 인공(人工)에게 아마추어가 아닌 프로 명예9단증을 수여했다.
‘제1호’라 적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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