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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IORS

스트레스 트라우마

저  자연에  의한  재해들은 그나마 득실과 장단을 함께 갖고 있다지만,
제 잘났다는 우리 인간들이 만들어낸 재앙들은 하나같이 이득 없는 손실뿐이요 특장 없는 폐단뿐이다.
더욱이 이 세기를 산다는 현대인들 스스로가 만들어낸 소위 ‘첨단’이란 접두어를 머리에 얹고 있는 신문명의 소산물들은
결국 신기술공포증과 신변화공포증이라는 신드롬에 의한 불가항력의 스트레스성 질병만을 확산시키고 있다.

 

발행인 박인학

 

‘立春大吉 建陽多慶 입춘대길 건양다경’을 내붙이고, 새봄을 맞으며 길한 일도 오고 맑은 날과 기쁜 일도 많길 바랐건만, 지난 춘삼월의 봄날 중에 숨 쉬고 살 만한 날은 ‘죽을 사(死)’ 字가 포개 겹친 4월 4일 뿐이었단다. 아니나 다를까! 음력달력을 펼쳐 보니, 요행스럽게도 ‘하늘이 차츰 맑아진다’는 청명(淸明)이란 절기였다. 여하튼 지난 4월 중 서울 공기가 깨끗한 날은 4일과 21일 단 이틀에 불과했고, 그나마 그 중 하루는 비가 내렸기 때문에 맑은 공기를 마실 수 있는 날은 단 하루뿐이었단 얘기다. 하늘을 올려 봐도 땅을 내려다 봐도, 화만 치민다.
‘연기도 아니고 안개도 아닌 것이 온 하늘을 뒤덮어 어두컴컴하였는데, 이윽고 숯비가 내렸다’ 조선왕조실록에 나오는 태종 제위 시절 단주 일대에 내린 황사에 대한 기록이다. 문종 때에는 ‘함흥 이남에 황무(黃霧)가 끼어 보리를 손상시키고 푸르고 검은 벌레가 곡초(穀草)를 해쳤다’고 하여 그 피해가 자못 심각했음을 적고 있으며, 이밖에도 흙비(土雨)에 관한 기록은 수없이 많다. 또 성종은 황사가 오자 ‘부덕한 임금과 자격 없는 신하에 대한 응보’라 했고, 중종 때 영의정 정광필은 황사가 심하자, ‘모자란 사람이 정승자리에 앉아 흉사가 생겼다’며 사직을 청하기까지 했단다. 그러나 놀랍게도 예부터 황사를 두고 풍년의 징조라며 반기기도 했다는데, 이유인 즉은 황사가 내리면 송충이 같은 해충들이 죽어 농사에 도움을 주기 때문이었단다. 또 과학적으로도 입증되는 장점도 있다는데, 황사의 먼지 속에 섞여있는 알칼리 성분이 산성화되어 있는 토양과 섞이게 되면 중화되기 때문에 산성화의 피해를 줄일 수도 있고, 플랑크톤에게는 유기염류를 제공하기 때문이란다.

그래! 세상만사라는 게 얻음이 있으면 잃음도 있는 득실상반(得失相半)이라 함이 맞건만, 누런 하늘을 향해 삿대질한 검누런 나만 바보였다.
그래, 저 자연에 의한 재해들은 그나마 득실과 장단을 함께 갖고 있다지만, 제 잘났다는 우리 인간들이 만들어낸 재앙들은 하나같이 이득 없는 손실뿐이요 특장 없는 폐단뿐이다. 더욱이 이 세기를 산다는 현대인들 스스로가 만들어낸 소위 ‘첨단’이란 접두어를 머리에 얹고 있는 신문명의 소산물들은 결국 신기술공포증(Techno Phobia)과 신변화공포증(Change Phobia)이라는 신드롬에 의한 불가항력의 스트레스성 질병만을 확산시키고 있다.
좌우지간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외래어 중 ‘영예의 1위’를 차지했다는 이 ‘스트레스’에도, 당장은 부담스럽더라도 적절히 대응하여 자신의 향후 삶이 더 나아질 수 있게 해주는 ‘좋은 스트레스(Eustress)’와 자신의 대처나 적응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불안이나 우울 등의 증상을 일으키는 ‘나쁜 스트레스(Distress)’라는 게 있단다. “골인!” “홈런!”하고 외치다 심장마비로 쓰러졌다는 사람과, ‘또또또’ 떨어졌다는 경제성장률 때문에 속 끓이며 살다 화병으로 앓아눕고 만 사람이, 바로 그네들이다.
좋다고 마냥 좋은 것만도 아니고 나쁘다고 그저 나쁜 것만도 아닌 한낱 새옹지마(塞翁之馬)와 같은데, 이래도 걱정 저래도 걱정하는 나만 바보였다.

스트레스(Stress)의 어원은 ‘팽팽히 죄다’의 뜻인 라틴어 ‘Stringere’란다. 즉, ‘느슨하거나 헐거운 것을 단단하게 만드는 것’과 ‘차지하고 있던 자리가 좁아지는 것’이, 명의든 돌팔이의사든 이구동성으로 ‘만병의 근원’이라 일컫는 스트레스란 게다. 그렇다면 원인과 결과의 길흉화복을 떠나, 일단의 스트레스를 막기 위해서는 지금 우리의 자리를 적당히 당겨 좁혀 앉는 게 우선이란 논리이다. 결국은 지하철 쩍벌남처럼 길지도 않은 다리를 있는 대로 다 벌리고 앉으려면 턱없이 좁을 테고, 극장 스윗박스에 박혀 ⑲영화 보는 커플처럼 달라붙어 앉으면 한없이 넉넉할 거란 게 그 귀결이다.
남녀노소, 빈부귀천 할 것 없이, 사람들이 입버릇처럼 하는 말은 “스트레스를 달고 산다!” 이다. 이 스트레스에 대한 우리 인간의 반응 단계는, 경고기, 저항기, 소진기로 나누어진단다. 그러나 결국 우리가 결정해야 할 것은 ‘싸울지? 도망칠지?(Fight or Flight)’라는 반응 태세의 문제란다. 그냥 멍하니 있는 게, 제일 문제인 것이다.
또 Stress를 영어사전에서 보니, 외래어로서의 ‘스트레스’ 다음에는 ‘긴장, 압박, 강조, 중점’이라 나와 있다. 지긋지긋하게 달고 사는 그놈의 ‘스트레스성 질환’ 말고는 모두가, 우리 디자인작업에 반드시 필요한 항목들의 나열인 듯 보였다. ‘조이고, 누르다, 힘주어, 찍어내는’ 단계들로 된 매우 순리적인 ‘기승전결(起承轉結)’의 흐름이었다.그럼, 스트레스가 없는 세상은 어디일까? ‘Stressless’란 용어를 제일 좋아하는 분야는 항상 ‘안락(Comfortable)’이란 단어를 지상목표로 여기는 가구인 듯하다. 그러나 너무 푹신한 소파에 묻혀 구르다 보면 허리디스크가 걸릴 수 있다니, 너무 편한 것만도 좋은 건 아닌 듯싶다.

물은 흐르고 사람은 걷건만, 세월과 인생을 두고는 흐른다고들 한다. 수적성천(水積成川)이라, 물이 모여 내를 이루고, 적수성연(積水成淵)이라, 그 물이 쌓여 연못이 됨은 자연의 이치이다. 또한 물은 그 바위가 가로막으면 맞부딪치지 않고 그저 돌아 흐르며, 깊은 골이 있으면 솟구쳐 오르지 않고 고이 내려 담기며, 고인 물은 제 아무리 맑은 물이었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탁해지다 못해 썩어들고 만다. 그러나 수청무대어(水淸無大魚)라, 물이 너무 맑으면 큰 고기가 없다 하니, 이 또한 자연의 기묘한 섭리이다. 그리 보니 결국인 즉은, 그 물에 가해진 온갖 스트레스들 덕분에 물고기란 생명체가 살아 버틴다는 게, 저 산천초목을 다스리시는 천지신명이 정해 내리신 천은이었다. 디자인을 ‘문제점을 해결하는 행위, Problem Solving Activity’라 정의하는 것처럼.

물을 운운하다 보니 이 말씀이 떠오른다. “山是山 水是水 산시산 수시수,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라!” 중국의 다섯 스님이 쓴 금강경 주석서인 <금강경 오가해(金剛經 五家解)>에 나오는 시를 원용한 성철스님의 조계종 종정 취임설법이었다. 삼척동자도 다 알만한 이 한 마디로 마친 대선사의 진의를 두고 사람들은 갸우뚱했지만, 원래 그 시구(詩句)의 뒤가 이렇게 이어져 있음을 알지 못 했던 게다. ‘山是山 水是水 佛在何處,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인데, 대체 부처님은 어디에 따로 계신다는 말인가…’ 눈앞에 보이는 것에만 집착해 일희일비(一喜一悲)하지 말자. 겉으로 보이는 건 출렁이는 흰 파도뿐이지만, 드러나 있지 않은 그 안에는 깊고 검푸른 바다가 있다. 우리의 마음처럼…
“네가 옳다면 화낼 필요가 없고, 네가 틀렸다면 화낼 자격이 없다.” 인도의 시성(詩聖) 타고르(Rabindranath Tagore)로부터 ‘마하트마(Mahatma, 위대한 영혼)’라 칭송한 시를 헌정받은 뒤로부터 ‘마하트마 간디’라 불려온 간디의 멋들어진 한 마디이다.
화가 나면 “하나 둘…”하며 10까지 세란다. 그래도 풀리지 않으면 100까지 세어볼까?
그런데, 그래도 화가 풀리지 않으면 어쩌지…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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