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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IORS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

 

순수미술이 ‘for Me’라면, 디자인은 ‘for You’, ‘for Us’ 나아가 ‘for All…All Mankind’이다.
어느 부호 저택의 벽난로 위에 걸리는 게 그림이라면, 여느 사람들이나 입고 쓰며 들고 다니는 게 디자인이다.

공유는 절대 할 수는 없는 게 순수라는 예술이고,많은 사람들이 공유해야만 명품이 될 수 있는 게 디자인이다.
즉 다양한 상생의 컬러시대에 번창하고,양극화된 상충의 흑백시대에는 쇠망할 수밖에 없는 이들이 바로 디자이너들이다.

발행인 박인학

 

 

지금으로부터 36년 전… 1980년 8월 2일은, 우리나라에서 컬러TV의 국내시판이 개시된 날이다. 실험적 컬러TV는 1928년 호반네스 에드미안에 의해 영국 런던에서 시연된 데 이어 첫 컬러방송은 1938년에 이루어졌지만, 실질적으로 본방송이 시작된 것은 1954년 1월 1일, NBC의 뉴욕지국인 WNBC가 최초였다. 그 후 일본은 1960년, 영국과 홍콩은 각각 1967년 그리고 1974년에 중국, 태국, 필리핀 등이 컬러방송 대열에 합류했고, 북한도 김일성 주석의 62번째 생일을 맞이한 1974년 4월 15일부터 컬러방송을 시작했으나, 우리나라는 1980년 12월 1일에서야 KBS가 ‘수출의 날’ 기념식을 시험방송함으로써 세계에서 81번째로 컬러방송시대에 진입한 국가가 되었다.
‘완전히 자연 그대로의 색’이라는, 총천연색! 요즘 세대들로서는 매우 생소한 단어이겠지만, 그 당시의 극장간판에는 반드시 굵직한 ‘總天然色’ 글씨 내지는 한 자 한 자씩을 빨주노초로 적는 매우 ‘럭셔리’하고 ‘스페셜’한 용어였다. 멀쩡하게 컬러로 만들어진 외국영화조차도 TV 속 ‘주말의 명화’에서는 흑백으로 볼 수밖에 없었던 우리였던지라, 극장에서나 만나는 금발의 미인들은 정녕 현란한 동경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가상현실(Virtual Reality)이니 증강현실(Augmented Reality)을 운운하는 오늘, 온 세상이 다시 흑백의 시대로 뒤덮이고 있다.
누가 흑(黑)이고 누가 백(白)인지는 몰라도, ‘Leave(탈퇴)’가 ‘Remain(잔류)’를 이겼단다. ‘EU 탈퇴’가 51.9%로 ‘EU 잔류’ 48.1%를 3.8% 포인트 앞서면서, 영국국민들은 EU를 떠나게 되었단다. 국왕 찰스1세를 반역죄로 단두대 위에서 처형시키면서까지 민주주의를 태동시킨 대영제국이 바로 그 ‘민주주의의 맹점’에 의해 흔들렸다. 이번 선거의 투표율이 72.2%였다니 결국은 많게는 전 국민 37.4% 의견에 의해 작게는 2.7%의 이견에 의해 흑과 백 모두 흑이 되고 만 것이다. 그러나 개표가 끝난 뒤 영국의 구글사이트에서 가장 많이 검색된 질문은 이런 것이었다. “What does it mean to leave the EU? EU를 떠난다는 것이 뭘 의미하는 걸까?”와 “What is the EU? EU란 무엇인가?” 온갖 색깔의 민중들을 우민화(愚民化)하여, 결국 흑과 백으로 갈라놓은 꼴이 된 것이다. 민주주의의 근간이라는 ‘다수결의 원칙’에 대해 굳이 이 시점에서 갑론을박하고 싶지는 않지만, 이번 투표결과가 나온 직후 기고한 케네스 로고프(Kenneth Rogoff) 하버드대 교수는 “민주주의라는 공식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때가 왔다. 당초에 국가적 결정을 단순 과반수에 맡긴다는 게 잘못이었다.”며, 이번 선거는 엄청난 결과를 불러올 판단이 그에 응당한 견제와 균형이 없는 상태에서 이루어진 ‘러시안룰렛 게임’ 수준이었다고 논평했다.
EU 탈퇴가 결정되자, 그동안 브렉시트파를 이끌어온 나이젤 패라지 영국독립당 당수는 6월 23일은 ‘영국의 독립기념일’로 알려질 것이라며 ‘평범한 사람들의 승리!’라 외쳤지만, 트위터 등의 소셜미디어에는 ‘What we have done? 우리가 무슨 일을 한 것인가?’라며 ‘후회(Regret)’와 ‘브렉시트(Brexit)’를 결합한 ‘리그렉시트(Regrexit)’라는 대중들의 목소리가 올라왔다. 그러나, 끝났다.
1993년 11월 1일에 창립되어 28개국을 회원국과 함께 5억 명이 넘는 인구와 전 세계 국내총생산의 23%를 차지하는 세계 최대의 정치경제블록 EU(유럽연합, European Union)의 탈퇴 도미노가 드러나고 있다. 영국의 ‘브렉시트(Brexit)’에 이어, 프랑스는 ‘프럭오프(Fruckoff)’, 이탈리아는 ‘이탈리브(Italeave)’, 오스트리아는 ‘아우스트리아(Oustria)’, 그리스는 ‘그렉시트(Grexit)’, 체코슬로바키는 ‘체크아웃(Czechout)’, 핀란드는 ‘피니쉬(Finish)’, 벨지움은 ‘바이지움(Byegium)’, 포르투갈은 ‘디파르투갈(Departugal)’, 슬로베이나는 ‘스로브롱(Slovlong)’, 라트비아는 ‘레이터비아(Latervia)’를 외치며, 독일이 ‘저먼론리(Germlonely)’할 때까지 EU국가들이 갈라서기를 앞다투고 있다. 심지어는 대서양 건너에 있는 미국 텍사스주도 석유와 천연가스를 앞세운 세계10위권의 부(富)와 광대한 면적을 누리며 독립하겠다며 ‘텍시트(Texit)’를 주장하고 있단다. ‘개인 이혼의 시대’를 넘어 ‘국가 분단의 시대’로 치닫고 있다. 정말, 그러고 보니 ‘꿈에도 소원’이라며 자나 깨나 통일을 염원하는 민족은, 지구상에 단하나 우리뿐인 듯하다. “의리! 대한민국!”
순수미술이 ‘for Me’라면, 디자인은 ‘for You’, ‘for Us’ 나아가 ‘for All…All Mankind’이다. 어느 부호 저택의 벽난로 위에 걸리는 게 그림이라면, 여느 사람들이나 입고 쓰며 들고 다니는 게 디자인이다. 물론 많은 사람이 공감해야 명작이라지만 그 그림은 단 하나뿐인지라 공유는 절대 할 수는 없는 게 순수라는 예술이고, 많은 사람들이 공유해야만 명품이 될 수 있는 게 디자인이다. 즉 다양한 상생의 컬러시대에 번창하고, 양극화된 상충의 흑백시대에는 쇠망할 수밖에 없는 이들이 바로 디자이너들이다. 최소한 양자택일의 극단적 다툼만 없어도 적당한 회색분자들을 위한 진회색에서 연회색까지의 티셔츠장사라도 할 수 있지만, 흑과 백만을 무조건 택정해야 하는 사회적 분위기라면 디자인의 시장은 적지 않은 위기에 봉착하고 말 것이다. 소위 명화라는 것들은 뉴욕 록펠러플라자의 크리스티(Christie’s)나 런던에 본사를 둔 소더비(Sotheby’s)에서의 치열한 경합 끝에 단 한 명에게 최종 낙찰되지만, 우리의 디자인들은 전 세계 도처의 시장 속에서 팔리고 있기 때문이다.
모두의 눈앞에는 천태만상의 형형색색이 난무하지만 각자의 마음속에는 제2의 흑백시대의 암운이 드리워지며, 너나없이 편견과 증오 그리고 유혹과 배반이 횡횡하는 세상이다. 소득의 빈부, 세대의 노소, 성별의 남녀, 학력의 고저, 성향의 보수개혁에 따라 동서남북이 목전의 이해타산만을 노려 갈라서면서, 입 달린 자들은 저마다의 목소리만을 제각각 외쳐대고 있다. 어찌 보면, 그간 우리 디자인도 그 민주적 대중들의 각양각색 덕택에 휘파람을 불어 온 건 사실이지만, ‘개성’이니 ‘유행’이니를 내세우며, 자의건 타의건 오늘의 세기를 이 이분오열 아수라장으로 만드는 데 음으로 양으로 공조한 장본인 중 하나일지도 모르겠다.
‘그레이트 브리튼’에서 ‘리틀 잉글랜드’가 될지 모른다는 영국이 ‘Exit’로 나가기로 한 브렉시트 하루 만에 세계증시는 시가총액 2,440조원이 증발되었고 우리나라 또한 47조원이 사라졌으며, 금값은 폭등, 유가는 폭락, 우리나라 원화는 전일대비 29.7원 급등, 일본 엔은 달러 당 100엔 선이 무너지는 등 세계시장에 영국발 쓰나미현상이 확산되더니, 달포가 지난 이제는 서로의 손익을 이리저리 재가면서 점차 숨고르기 작전으로 들어선 듯하다. 그러나 당분간 이 암울한 전운(戰雲)은 쉽사리 사라지지는 않을 테고, 우리의 가슴속을 암회색으로 물들일 것만은 분명하다. 색여사회(色如死灰)라, 오늘날 우리의 얼굴들처럼 ‘안색이 꺼진 잿빛과 같아 혈색이 안 좋음’을 이른단다. 이럴 때에는 색동 바지저고리라도 입고 나다녀보자.
동가홍상(同價紅裳)이라,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라 하지 않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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