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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 끝이라도 아름답게 맺읍시다!

 

우리의 일상에서 나름의 수많은 시작과 끝들이 숱하게 빈발

아니 부단히 연발하고 있는 건 분명하다.
물론 그 일상사들의 완전한 끝이 없음 또한 사실이지만,
여하튼 각기의 맺고 끊음을 반복하며

하루하루를 생존하는 게 우리네들의 세상사이다.
그 누구도 100% 만족하는 결과는 결코 없기에,
우리는 유종지미란 표현으로 조금 부족하더라도

아름답게 마치기를 추구하며 일단락을 짓는다.

 

발행인 박인학

 

 

지난 여름 그토록 내리쬐던 햇살로 보아서는 결코 올 것 같지도 않더니만… 왔다. 겨울이다. 그래서 또 한 해가 저문다. 다시 떠오르긴 하겠지만, 올 한 해는 끝난단다. 되돌아보니 항시 으레 그랬듯이, 지난 일 년 열두 달도 파란만장의 우여곡절뿐이었다. 끝이 좋으면 다 좋겠지만 이미 강 건너간 배의 형국이고, 그 말조차도 그리 수긍이 가진 않았었다. 삼시세끼 굶다가 한 끼만 잘 먹다가는 위장병 걸리기가 십상이고, 언 발 동동거리다 뜨거운 물에 담그면 동상 걸려 날밤 새우며 긁어댄다. 철썩 같이 믿고 살았던 고생 끝에 온다는 ‘즐거울 낙(樂)’은 간 데 없고 ‘떨어질 낙(落)’만 닥치는 팔자들도 천지사방에 숱한 요즈음이다.

‘끝’이란, 우리말로는 한계, 정지, 마감, 결과, 그리고 죽음의 의미이고, 영어로는 end, finish, close로, 이를 한자로 풀면 ‘끝날 말(末)’, ‘마칠 종(終)’, ‘닫을 폐(閉)’라 할 수 있다. 여기서,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다’는 말이 있듯 끝은 다시 시작으로 이어질 테니, 결국은 begin, start, open하는 새날이 올 게다. 이렇듯, 시간 속 만사(萬事)의 시작과 끝들은 끊임없이 피고 지며 이어지지만, 생(生)과 사(死)만은 단 한번 뿐인 게 우리 인간에게 주어진 천명(天命)이다. 정녕 다행이지, 인생살이도 죽었다 살았다를 조석(朝夕)으로 반복하며 뜨고 감아야 한다면… 상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송년회다, 망년회다, 이곳저곳 삼삼오오 모여 (김영란법 눈치까지 보며) 법석을 떨지만, 보낸다 해봐야 해만 뜨면 여느 새날이고 잊는다 해봐야 제 뜻대로 지울 수 있는 건 뭣 하나도 없다. ‘고진감래(苦盡甘來)란 말을 들어는 봤기에 ‘근하신년(謹賀新年)’이라 박힌 연하장을 주고받지만, 보내는 나도 받는 그네들도 무덤덤하기는 매한가지다.

어릴 적엔, 9가 끝인 줄 알았더니 10이 있었고, 99가 다인 줄 알았더니 100이 있다 하고, 천만억경이 한도 없이 있다 함을 배우곤 끝이 없다 하는 그 무한대에 이내 고개를 숙이고 무릎을 꿇어야 했다.
끝은 없다. 유명을 달리 하여 이 세상을 하직하는 그 날까지는, 끝이란 단어는 입에 올리지도 말자. 대나무의 마디인 양, 소나무의 나이테인 양, 살아가는 중에 생기는 굴곡의 자국 정도로만 여기며 살아가자. 갈 때까지 가보자며, 끝장이니 막장이니 운운하는 하루살이 신세는 걷어내자. 하늘로부터 내려받은 생이니, 떨어진 빗물처럼 내를 따라 흐르다 돌이 가로막거든 돌아 흐르고 웅덩이에 고이거든 머물러 담겼다 큰 비바람이 오는 날 즈음에 다시 흘러내리는 순리대로 사는 게 행복인지도 모른다.
‘끝’들이 넘쳐나는 세상이다. 밥 먹고는 “식사 끝!”, 학교 교실에서는 “수업 끝!”, 영화 크레디트 뒤에는 ‘the End’, 결국은 피곤한 눈을 끔뻑거리다 ‘Game Over’를 보며 하루를 마친다.

무시무종(無始無終), 시작도 없고 끝도 없다. “생각을 일으켜 경계를 짓고, 시작과 끝의 두 모양을 지으니, 현상에 집착하여 온갖 고뇌를 일으킨다.” 즉문즉설(卽問卽說)로 유명한 법륜(法輪)스님의 법어이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 중 영원히 존재하는 것은 없으며 그 모두가 언젠가는 사라져가는 덧없는 것들이라는 부처님의 말씀처럼, 우주의 역사 또한 불생불멸(不生不滅)이라는 게 불가(佛家)에서의 윤회(輪廻)적 논리이다.
이에 반해 기독교에서는,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빛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둠을 나누사, 하나님이 빛을 낮이라 부르시고 어둠을 밤이라 부르시니라.” 어둠이 먼저였고, 빛이 나중이었다고 성경에서는 창세(創世)를 말하고 있다.

이 같은 종교 교리에 대해 담론을 시작해봐야 그 답은 끝도 없을 터이고, 우리의 일상에서 나름의 수많은 시작과 끝들이 숱하게 빈발 아니 부단히 연발하고 있는 건 분명하다. 물론 그 일상사들의 완전한 끝이 없음 또한 사실이지만, 여하튼 각기의 맺고 끊음을 반복하며 하루하루를 생존하는 게 우리네들의 세상사이다. 그 누구도 100% 만족하는 결과는 결코 없기에, 우리는 ‘유종지미(有終之美)’란 표현으로 조금 부족하더라도 아름답게 마치기를 추구하며 일단락을 짓는다. 그 아름다움이란 ‘제 눈에 안경’이란 말처럼, 자기만족이 판단의 기준이다. 즉 ‘이만하면 됐지…’하며 자신에 대한 상황적 한계를 스스로 인정하고 주어진 것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가짐이 우선되어야 한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는 성경의 말씀과, ‘적은 것과 작은 것에 만족할 줄 알라’는 불자들에 대한 소욕지족(少欲知足)의 가르침이 그것이다. 지족자부(知足者富)라, 현재에 만족할 줄 아는 사람만이 부자란다.

좌우지간 아름답게 끝내는 게 최선인 것은 분명하다. 그럼 아름답다는 것은 무엇인가? 우선 너무 아름다워서도 안 된다. 즉 경국지색(傾國之色)은 나라를 흔들었고, 미인박명(美人薄命)도 제 명을 재촉한단다. 그렇다고 너무 추해서도 아니 된다. ‘일색 소박은 있어도 박색 소박은 없다’는 말로 자위하려 들지는 몰라도, 이도 결코 행복하지는 못 할 것이다. 즉 너무 과하지도 덜 하지도 않게 채워진 끝만이 아름다운 끝이다.

아름다운 끝을 위해 남은 12월의 시간을…
1. 더 채우려 끝날까지 버둥대지만 말고, 지나친 것들 중에 빈 부분을 살펴 채우자.
2. 내가 아닌 우리, 심지어 일을 하며 다퉈왔던 경쟁자를 헤아려 보는 마음을 갖자.
3. 작더라도 얼마나마 번 것이 있다면, 조금이라도 떼어 이웃과 나눌 방도를 찾자.
4. 끝의 끝은 한 치의 틈도 없는 시작이니, 힘찬 출발을 위해 몸과 마음을 가다듬자.
5. 지난 과정들은 낱낱이 글로 적어보고, 앞으로의 계획은 그림으로 대충 그려보자.
6. 마침표는 불가하니 짤막한 쉼표라도 내게 얻어, 쉬고 놀고 자고 다시 일어나자.
7. 우선 감사하고 무조건 ‘난 행복하다’며 신명나게 자축하자.
8. 찾아뵙지 못 해 마음 한 구석이 편치 않았던 그 선생님을 찾아뵙자.
9. 하늘을 보고, 땅을 보고, 물을 보고, 나무를 보고, 새를 보고, 사람들을 올려다보자.
10. 허튼 망년회만 쫓아다니지 말고, 하루쯤은 절에 오르고 교회를 찾아 기도하자.
그만! 너무 많네. 더 바빠지겠네. “제발, 끝이라도 아름답게 맺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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