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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IORS

꼰대 아재의 망발

 

다들 패를 갈라 보수니 개혁이니 떠벌이지만,
모두가 자기 일신만을 위한 보수요

권세 사취만을 개혁이 우선이지,
진정으로 우리 국민과 우리의 국가를 위해,
몸과 마음을 다 바쳐 헌신할 이가 누구이고

정녕 그 능력을 갖춘 자인가를 눈 감고 생각해보자.

 

발행인 박인학

 

 

디자인에 대한 정의 중 가장 일반적인 논리는 ‘기능과 미의 조화’라는 문구일 것이다. 일단은 겉과 속의 의미였고, 어찌 보면 주(主)와 종(從)의 관계였다. 그러나 세계가 정보화·세계화의 시대에 돌입하며 과학기술 분야가 동반적 공유성장이라는 신기원을 이룩하자, 기능의 가치는 전반적인 보편·평준화의 단계에 다다랐다. 이렇듯, 엔진 걱정하는 자동차, 화질 걱정하는 텔레비전, 온도 걱정하는 냉장고가 없는 게 현실이다 보니, 결국 디자인은 미적 외양 추구에만 편중하는 양상이 대세를 이루었다. 이러한 현상은 현대를 사는 남녀노소 모두에게 물들어 있는 외모지상주의(Lookism)와 덩달아, 종국에는 꼴값과 이름값만 내세우며 팔고 사는 판국이 된 것이다.

디자인이 하나의 사물을 놓고 본격적으로 전개해가는 시발점은 ‘이미지메이킹(Image Making)’과 ‘스토리텔링(Story Telling)’이다. 이 같은 접근방식의 근본적 이유는 사물을 사용할 인간과의 공감대 형성을 위한 형체의 의인화에 이은 감성 친화적 작업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지(Image)’란 뜻은 ‘상대에게 전해지는 인상’ 또는 ‘화면에 비춰지는 형상’ 정도로 표현되니, 본연의 민낯이 아닌 화장기가 가해진 것이 사실이고, ‘스토리(Story)’란 뜻도 ‘줄거리를 담고 있는 말이나 글’로서 유의어가 ‘소설’인 것을 보니, 이도 뭔가 가미된 흔적이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런데 근자에 보아하니, 몇몇의 인간들을 놓고 디자인하려는 시도가 사방에서 행해지고 있다. 외양만이 아니라 속내까지 화장으로 떡칠을 하고, 살아있는 사람만이 아니라 죽은 조상까지 미화하는 허구가 난무하고 있다. 디자이너가 손을 대기 시작한 본연의 대상은 사물이었는데, 그 손놀림을 훔쳐보던 오만상 긁고 살며 밑바닥을 헤매던 파렴치한들이 제 온 몸뚱이에 졸속의 디자인을 바르고 있다.
“이 나라 소위 좌파들이 선한 사마리아인과 고독한 지식인 행세로 나르시시즘의 허기를 채우고 있다면, 이 나라 우파들은 애국자 행세로 속물의 극치를 보여준다.” ‘아웃사이더’를 자청하는 이응준의 산문집 <영혼의 무기>에 나오는 글귀이다.
그래, 표리부동(表裏不同)한 외화내빈(外華內貧)의 속빈 강정들이 이 나라의 정치판 위에서 때를 만났다며 날뛰고 있다. 아바타 소인배들의 대인 코스프레(Costume Play)를 하며 서로에게 삿대질만 해대고 있는 것이 오늘의 대한민국 정국이다.

이왕지사 내친김에 말하련다. 이러한 작태는 사실 그네들만이 아니다.
아재라 그럴 게다. 그런데 사실이다.
“잘 한다!” 그런데, 까놓고 말하자면 감동은 없다. 모두 다라고 싸잡아 말할 수는 없겠지만, 요즘의 노래들은 귀로 듣기보다 그저 눈으로 봐야 한단다. 이걸 두고 소위 비주얼커뮤니케이션 아니 오감만족이라 칭해야 하는 것일까? 아무리 마셔 봐야 먹고 나면 갈증만 더한 탄산음료처럼, 묵은 마음의 때를 씻어 내주는 심산유곡의 쨍한 약수 같은 맛은 전혀 느낄 수 없다. 그러니 오죽하면 우스꽝스런 가면을 뒤집어쓰고 소리만 들어보자는 ‘복면가왕’ 같은 프로그램이 생겼는지 이해가 간다. 전주·간주·후주 다 빼고 나면 1인당 10여초 내지는 길어야 20여초가 고작이라는 떼거지 가수들의 외마디 소리를 들으며, 과연 무슨 감동을 어떻게 받을 수 있단 말인가.
염세철학가인 쇼펜하우어가 음악을 최고의 예술이라 말한 이유는, 모름지기 음악 특히 노래는 다른 예술처럼 무엇이든 다른 요소를 활용하지 않고 인간 내재의 본체로 표현할 수 있는 유일한 기예란 판단 때문이라 생각된다. 그런데 그 노래마저도 이젠 메이크업 마네킹들의 경연장이 되고 말았다. 물론 그 덕분에 말도 안 통하는 전 세계의 시장에서 후크(Hook, 갈고리)송이라는 이름까지 붙어 팔리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노랫가락을 뜻하는 ‘곡(曲)’이란 ‘굽을 곡’이라니, 굽이굽이 흐르는 인생의 행로처럼 희로애락을 담아 주고받는 작업만이 진정으로 심금을 울리는 노래라 할 수 있다는 게, 이 꼰대 아재의 겁 없는 망발이다.

여하튼 이런 모습이 눈앞의 현실이다 보니, 현재를 떠나 과거와 미래로 탈출하려는 눈길들이 판타지 드라마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치맥열풍’까지 몰고 온 천송이와 도민준의 SF 로맨틱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 SBS>, 무전기 하나를 들고 시공간을 초월한 타임 슬립(Time Slip) 혹은 타임 루프(Time Loop) 스타일을 취한 스릴러 드라마 <시그널, tvN>, 웹툰 속 가상현실 세계를 넘나들던 로맨틱 서스펜스 멜로 드라마 , 조선시대의 야담집 <어우야담>에 나오는 인어 이야기를 모티브로 한 판타지 로맨스 드라마 <푸른 바다의 전설, SBS>, 2016년 12월 2일 평균시청률 20.5%, 순간최고시청률 22.1%를 기록하며 역대 케이블채널 최고 시청률을 기록한 김은숙 작가의 낭만설화 드라마 <도깨비, tvN>까지, 하나같이 어두운 오늘 속의 나 자신을 스스로 위로하려 떠나는 발길들이다.
판타지에 대해, 영화이론가 수잔 헤이워드(Susan Hayward)는 <영화 사전>에서 “판타지는 우리 무의식의 표현이다. 따라서 그것은 우리가 억압하는 영역, 즉 무의식의 영역과 꿈의 세계를 가장 쉽게 반영한다.”고 했고, 영국의 아동문학가 네즈빗(Edith Nesbit)은 ‘일상의 마술(Everyday Magic)’이라고, 정신분석의 창시자인 정신과의사 프로이트(Sigmund Freud)는 <햄릿>에 등장하는 대사를 빌어 ‘진리라는 잉어를 낚아 올리는 허구적인 미끼’라고 말했다. 즉 부질없는 일탈의 허구일 뿐이라는 이야기였다.

시각은 오감 중의 하나일 뿐이다. 더욱이 보인다는 것은 그 대상의 극히 일부일 뿐이다. 최소한 360도로 토막을 낸다면 360분의 1이라는 한 단면이고, 3차원인 입체의 2차원적 평면 하나를 보고 있는 것일 뿐이다. 속을 채우자. 온갖 고명을 버무려 넣은 김칫소나 만두소처럼 배추도 만두피도 물론 중요하지만 온갖 소에 들어간 양념과 재료 그리고 할머니 손맛의 그 소가 없다면 그 김치와 만두는 말 그대로 앙꼬 없는 찐빵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눈을 감자. TV 속 그네들의 꾸며진 표정과 거짓된 손짓 발짓 몸짓에서 벗어나보자. 말보다는 말투를 보고, 외치는 목소리보다는 중얼거리는 혼잣말에 귀기울이고, 오늘의 생김새와 차림새보다는 어제의 행동거지를 기억해 내일의 걸음걸이를 미루어보자. 다들 패를 갈라 보수니 개혁이니 떠벌이지만, 모두가 자기 일신만을 위한 보수요 권세 사취만을 개혁이 우선이지, 진정으로 우리 국민과 우리의 국가를 위해, 몸과 마음을 다 바쳐 헌신할 이가 누구이고 정녕 그 능력을 갖춘 자인가를 눈 감고 생각해보자. 하기야  나 역시도, 얄팍한 내 속내를 도대체 알 도리가 없긴 매한가지이다.

“난 니가 싫어 졌어 우리 이만 헤어져 / 다른 여자가 생겼어 너보다 훨씬 좋은 / 실망하지는 마 난 원래 이런 놈이니까 / 제발 더 이상 귀찮게 하지 마” 아재 주제에 좋아하는 GOD의 <거짓말>이란 노래의 한 구절이다. 매일 고생만 시키는 자신을 버리고 더 나은 사람을 찾아 보내려는 한 남자의 절규를 들으며, 나보다는 그가 낫겠다며 흔쾌히 내려놓는 단 한 명이라도 있었으면 하는 공허한 판타지 한 편을 꿈꾸어본다.
잘못된 선이면 스스로 지우고 새 선을 찾아 긋는 자만이 진정한 디자이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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