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cle

INTERIORS

대통령은 국민을 선택할 수 없다

없음

‘대통령은 국민을 선택할 수 없다.

오로지 국민만이 대통령을 선택한다.’라는 말이 있듯이,

대통령이란 직분은 선출직이었지, 임명직도, 자천으로 올라선 자도 아니었음을 다시금 분명히 기억해야 한다.

즉 우리들의 손으로 찍어 뽑은 자들이었다는 사실이다.



박인학│발행인


입으로는 ‘대(大)통령’을 하겠다고 외쳐대면서 하고 있는 행실을 보아 하니 하나같이 과반도 못 되는 중소(中小)정당들의 ‘고(高)통령’ 행각이 일색이다. 국민들은 진정으로 큰 도량의 인물을 원하건만 그저 높고자 하는 대선후보들만 즐비해 보인다. 그러니 온 나라가 끝없이 반복되는 ‘고통’에 버거워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통치’의 동음이의어 중, ‘통치(統治)’는 ‘나라를 도맡아 다스린다’는 치국평천하(治國平天下)를 뜻하고, ‘통치(通治)’는 ‘한 가지 약으로 여러 가지 병을 다 고친다’는 만병통치(萬病通治)를 뜻한다. 오늘의 우리나라를 이 위기에서 구해낼 진정한 위정자는, 자기 일신을 낮춤으로써 만민을 되살리는 인술(仁術)을 가진 의인(義人)일 것이다.


우리나라 대통령들도 결국은 모두가 고통이 연속된 ‘애통(哀痛)령’들의 신세였다. 초대 대통령 이승만은 4.19혁명으로 인해 하야하고 미국 망명길에 올라 종국에는 하와이 호놀룰루의 한 요양원에서 객사했고, 박정희 대통령은 5.16군사쿠데타로 집권한 이래 18여 년간을 집권하다 결국 최측근의 총탄에 의해 죽음을 당했고, 전두환 대통령과 노태우 대통령은 반란·내란·뇌물죄로 징역 17년을 선고받은 후 온갖 수모를 당하며 비굴한 여생을 살고 있고, 김영삼 대통령과 김대중 대통령마저도 애지중지하던 아들들을 감옥에 보내야 하는 비극을 겪었고, 노무현 대통령은 재임 중의 친인척비리로 조사를 받다가 사저 뒷산 바위에서 몸을 던져버렸고, 이명박 대통령은 현직 중에 친형의 구속을 지켜보는 신세가 되었고, 박근혜 대통령도 대한민국 헌정 사상 탄핵으로 물러난 최초의 대통령이 되고 말았다. 이유여하를 막론한 그 님들의 민망한 소치로 이들 모두는 비운의 말로로 생을 마쳤거나 이어가고 있는 불행한 인생들이 되었고, 우리 대한민국의 국민들은 불운의 희생자가 되고 말았다.


‘대선(大選)’이라 함은 말 그대로 큰 선거이며, 이로 선출되는 ‘큰 사람’에 대한 사전적 의미는 ‘사람의 됨됨이가 뛰어나고 훌륭하다’, ‘생각의 범위나 도량이 넓다’, ‘겁이 없고 용감하다’, ‘가능성이 많다’는 인물이라 적혀 있다. 소위 이 정도 위인이 되어야만 대통령 즉 한 나라를 대표하는 원수가 될 수 있다는 게다.

그런데 어떠한가? 지금 우리의 목전에서 목청을 높이는 자들 중 누가 그런 큰 그릇의 인물이라 여겨지는가? 결국은 또 다시 꿩 대신 닭을 뽑아야 하는 정유년 닭의 해가 되고 말 것인가? 옛말에는 ‘닭이 천이면 봉이 한 마리는 있다’고 하던데, 글쎄… 봉황새는 고사하고 온갖 잡새들만 모여, 서로 쪼아대며 지푸라기라도 먹어보겠다고 지절거리는 세상이다. 자고로 ‘봉기불탁속(鳳飢不啄粟)’이라, ‘봉황은 아무리 굶주려도 좁쌀을 쪼지는 않는다’ 하는데 아무리 둘러봐도 봉황과 비스름한 것도 뵈지 않으니, 우리 대한민국의 국운이 봉을 잡기는 이번에도 어째 그른 듯하다.


대인(大人)을 그려본다. 남보다 잘났다고 나대지 않고 지금의 나 자신보다 나아지려 노력하는 이가 대인이다. 입보다 귀를 중히 여겨 만인의 진언을 가려듣는 이가 대인이다. 많이 배웠다는 걸 내세우는 것보다는 많이 터득한 이가 대인이다. 말만 앞세우지 않고 몸소 먼저 실행하는 이가 대인이다. 만인의 이와 득을 위해 자기 일신의 부귀를 희생하는 이가 대인이다. 자신의 것과 모두가 가진 것들을 골고루 나누어줄 수 있는 지혜를 가진 이가 대인이다. 오늘 손가락질을 당하더라도 내일 박수 받을 일을 펼쳐나가는 이가 대인이다. 작은 일들은 정교하게 큰 일들은 담대하게 처결해내는 이가 대인이다. 넓게 멀리 내다보며 때로는 빨리 때론 천천히 완급을 조정할 줄 아는 이가 대인이다. 위로와 칭찬을 베풀 줄 아는 이가 대인이다. 겉만 꾸며 보이려 않고 속을 채워 느낄 수 있게 사는 이가 대인이다. 승리했을 때 패자를 보듬고 패배했을 때 승자를 섬길 수 있는 이가 대인이다. 함께 마음의 눈물 흘리고 함께 웃음 짓는 이가 대인이다. 그리고 이러한 대인의 중한 행보를 마음 깊이 감사하며 진정으로 인정할 줄 아는 이만이, 정녕 대인이다.


‘대(大)’ 字가 문제인가? 왕조국가에서도 ‘대왕(大王)’은 승하한 후의 선왕(先王)을 높여 이르던 것이 일반이었지 재위 중에는 ‘대(大)’라는 칭호를 붙이지 않았었다.

‘세종어제(世宗御製)…’라 적혀 있다. 우리 민족의 영원한 성군(聖君)이신 세종대왕이 돌아가신 후에 썼다는 <훈민정음언해(訓民正音諺解)>에서도 ‘세종 임금이 지은…’이 고작이었다. 진정한 대인(大人)은 행실이 점잖고 덕망이 높은 군자(君子)이자 성품이 어질고 지혜가 총명한 현자(賢者)이기에, 결코 스스로를 높이고자 하진 않았던 것이다.


현대의 대통령은 ‘큰 대(大)’보다는 ‘대신할 대(代)’라는 마음가짐과 행동거지를 갖추어야 한다. ‘국민의 머슴’이라며 수족이 되어 일하겠다던 자가 배부른 자리에 앉더니만 속 곯은 백성을 나 몰라라 하는 상전 중의 상전이 되었다. 국민들은 노역이나 하는 머슴을 원하는 게 아니다. 나와 우리 모두가 존경하고 사랑할 만한 큰 어른을 기다리는 것이다.

‘대통령은 국민을 선택할 수 없다. 오로지 국민만이 대통령을 선택한다.’라는 말이 있듯이, 대통령이란 직분은 선출직이었지, 임명직도, 자천으로 올라선 자도 아니었음을 다시금 분명히 기억해야 한다. 즉 우리들의 손으로 찍어 뽑은 자들이었다는 사실이다.

사심을 버리자. 그 허접한 지연, 학연, 혈연부터 내버리자. 자기 일신과의 이해득실을 잊고, 국가와 민족의 곧은 역사와 바른 공의를 위한 선택에 매진하자. 또한 지나간 어제 때문에 다가올 내일을 잃는 오늘이 되어서도 안 된다.

다 우리하기 나름이고, 다 내 탓일 뿐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는 ‘주권이 국민에게 있다’는 주권재민(主權在民) 정신을 천명하고 있다. 주권(主權)이란 한 나라와 국민을 미래로 이끄는 원동력이자 지속력이지, 시세등락에 따라 이리저리 몰려다니는 주권(株券) 같은 게 아니다.

한낱 표리부동한 그 처세들보다는 인품, 대동소이한 그 공약들보다는 철학, 그깟 외화내빈인 그 경력들보다는 비전을 보자. 언뜻 화려해 보이지만 남들의 것을 퍼담아 베껴대는 드래프트맨인지, 뭔가 설익어 보이더라도 각고의 노력 끝에 자기 스스로 만들어내는 디자이너인지, 꼼꼼히 살펴보자. 당장 일 주고 돈 주는 클라이언트만을 위한 디자이너인지, 앞으로 나타날 사용자들을 먼저 생각하는 디자이너인지, 찬찬히 들여다보자. 회사 실적과 일 잘 하는 목수 거느린 걸 자랑하는 디자이너인지, 진짜 디자인을 열심히 성실하게 잘 해낼 수 있는 디자이너인지, 세세히 눈여겨보자. 디자인을 진정 사랑하는 디자이너를 반드시 찾아내야 한다.


여하튼, 끝은 날 게다. 疑人某用  用人勿疑(의인모용  용인물의)라, 의심나는 사람이거든 쓰지 말고, 사람을 쓰거든 의심하지 말라. <명심보감(明心寶鑑)>에 나오는 말이다. 혹여 내 생각과 다르더라도 우리 모두가 정한 누군가가 대통령이 되면, 대범하게 툴툴 털어내고 화끈하게 팍팍 밀어주자. 동서남북의 산천초목조차 대한민국을 조여 누르고 있으니, 우리끼리라도 온힘을 모아야 하지 않겠는가.



■ 기사 더보기

MY MEN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