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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IORS

오른손잡이의 고백

없음

의자의 오른 다리와 왼 다리 중에, 솟을대문의 왼 기둥과 오른 기둥 중,

하늘을 나는 저 비행기의 두 날개 중,

대체 어느 게 더 중하다 할 수 있단 말인가?

좌우의 모양새가 좀 다르다고 어느 하나를 업신여긴다면,

아마 좌우가 다른 우리 자신의 얼굴부터 두 손으로 가려야 할 것이다.

그저 조금 다를 뿐이다.


박인학│발행인


별의별 날도 다 있다 싶었다. 하지만 초콜릿, 사탕 장사나 시켜주는 발렌타인데이, 화이트데이 정도면 양반이고 빼빼로데이 같은 온갖 얄궂은 날들도 있는 판국에, 아무 잘못도 없는 그네들이 겪어온 구박과 천대를 돌이켜 생각하니 정녕 필요한 날이란 생각이 들었다. 8월 13일 ‘세계 왼손잡이의 날(International Lefthanders Day)’!

1976년에 제정된 이 날은, 많은 편견의 눈빛과 생활의 불편을 감수한 채 살아가고 있는 왼손잡이들의 불편을 개선하고 고충을 알리며, 왼손잡이에 대한 인권신장과 인식변화를 추구하는 날이라고 한다.


나를 봐 내 작은 모습을 / 너는 언제든지 웃을 수 있니 / 너라도 날 보고 한번쯤 / 그냥 모른 척 해 줄 순 없겠니

하지만 때론 세상이 뒤집어진다고 / 나 같은 아이 한 둘이 어지럽힌다고 / 모두가 똑같은 손을 들어야 한다고

그런 눈으로 욕하지 마 / 난 아무것도 망치지 않아 / 난 왼손잡이야

그룹 이름조차 ‘극심한 공포, 공황장애’란 뜻인 ‘패닉(Panic)’이 부른 <왼손잡이>라는 곡의 가사이다.


‘왼’이란 글자부터 문제였다. ‘왼’의 어원인 ‘외다’는 ‘물건이 좌우가 뒤바뀌어 놓여서 쓰기에 불편하다. 마음이 꼬여 있다.’는 뜻이었고, 서구 언어의 원천이자 가톨릭의 종교언어라 할 수 있는 라틴어에서조차 ‘시니스테르(siníster)’라 하며 ‘불행, 흉조, 악’같은 끔찍한 의미를 담고 있었다.

왼손잡이의 비율은 전 세계적으로 약 10% 정도이며, 우리나라는 약 5% 정도로 그 중 4% 정도가 왼손으로 식사, 1% 정도가 왼손으로 필기를 한단다. 왼손은 밑을 닦거나 돈을 세는 손으로서 악수를 하자고 내밀 수도 술을 따를 수도 없는 불결한 손이란 취급을 당했기에, 왼손잡이로 태어난 그들은 불손한 소수자의 모멸을 겪으며 매까지 맞는 혹독한 교정의 과정을 겪어야만 했다.


하지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이어진 편견과 차별 속에서도 왼손잡이들이 이룩한 역사 속에서의 역량은 대단하였다. 굳이 구구한 설명을 덧붙일 필요조차 없이, 화가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반 고흐, 피카소, 음악가 바흐, 베토벤, 문학가 괴테, 안데르센, 과학자 뉴턴, 에디슨, 퀴리, 아인슈타인, 정치지도자 알렉산더, 시저, 칭기즈칸, 나폴레옹, 간디, 처칠, 오바마, 기업가 스티브잡스, 빌게이츠, 그 외의 수많은 스포츠 스타들까지 찾아보자면, 그 비운의 왼손잡이들이 없는 인류의 문명사는 암담했을 것이라는 게 우리 오른손잡이들의 고백일 수밖에 없다.


그나마 이제는 인식이 달라져 왼손잡이도 배려를 받는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생활 속에서 불편함을 겪을 수밖에 없는 경우는 부지기수임을 알았다. 바이올린, 트럼펫 등의 일부 악기는 아예 오른손으로만 연주할 수 있게 고안되어 있고, 문손잡이의 위치, 단추나 지퍼를 열 때, 손목시계의 태엽을 감을 때, 카메라의 셔터를 누를 때는 물론이고, 오락실 게임기의 스틱이나 스마트폰의 전원버튼, 컴퓨터 키보드의 엔터키와 숫자패드, 자판기의 동전투입구, 총의 탄피배출 방향, 버스의 카드단말기와 요금통, 지하철의 교통카드단말기, 변기의 플러쉬, 오른쪽 팔걸이 안에 테이블이 들어있는 의자 등, 일반적인 위치는 대개가 오른손잡이의 전용이라는 게 실상이었다.

그들은 ‘짝빼’라 불렸고, 오른손은 ‘바른손’이라 불렸다. 단지 그들의 수가 적다는 것 하나 때문에 그들은 잘못된 유전자를 갖고 태어난 존재로 살아야 했다. 그런데 후천적인 짝배도 있다. 어떤 경우에는 그 숫자가 더 많을지라도, 이 세상에서 가진 권력과 세력이 못 미처 수적 우위에도 불구하고 천시를 당하며 살고 있다. 즉 주류(主流)가 못 된 지류(支流)와 그도 못 되는 비주류(非主流)들이다. 물론 개중에는 반주류(反主流)가 되어 나름의 반주류(半主流)로의 위력을 구사하는 계층들도 있지만, 대다수의 비주류들은 저항도 못 한 채 억압과 속박만 당하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결코 겨루고 다퉈보겠다는 것도 아니건만, 주류 또는 반주류의 힘자랑 치하에서 이리 치이고 저리 차이며 몸과 마음에 피멍만 들어간다. 주(主)가 아닌 존재들은 부(副)면 족하다는데도, 괜스레 비(非)라 칭하며 비(悲)에 빠지게 해서는 아니 된다. 어찌 보면 인간세상은 물론 모든 자연 속에도 주(主)와 부(副)가 함께 어우러질 수밖에 없는 것이 이치이고 섭리이다. 즉 그저 다른 삶을 살아가도록 내버려만 둔다면, 충분히 나름의 행복과 만족을 영위할 수도 있을 것이다.

빨강이 제 아무리 돋보이는 색이라 해도 배경이 되는 무채색이 없으면 특출하지 못 할 것이다. 빨강이 노랑 파랑들과 부대끼며 아귀다툼만 한다면 온 세상은 혼란과 갈등의 극치에 빠지고 말 것이다. 어두움이 있어야 빛의 가치가 발휘되듯, 양(陽)과 음(陰)은 조화롭게 공존해야만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무척 좋아하는 단어 중 하나가, 소위 트렌드인 듯싶다. 트렌드(Trend)란 동향(動向), 즉 움직이는 방향과 추세를 말한다. 모두 다 내가 어디로 갈 것인가를 고심하기보다, 세상 사람들이 어디로 향하는지 시시각각으로 주시하며 행여 한 걸음이라도 뒤쳐질 새라 전전긍긍하기 일쑤다. 객지에서 식당을 찾으면서, 간판 큰 집, 주차장에 차가 많은 집, 줄 길게 늘어선 집을 우선시하는 판단법과 일맥상통한다. 물론 그런 집들은 그런대로 제 값을 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나, 동네 어르신들이 삼삼오오 찾아드는 한적한 골목 속의 소탈한 맛집에서 진짜 내공 있는 주인장의 깊은 진미를 맛본 경우도 몇 번은 있었을 것이다.

아귀찜 맛집은 콩나물 맛이, 감자탕 맛집은 우거지 맛이, 짜장면 맛집은 단무지 맛이, 냉면 맛집은 육수 맛이 좋아야만 다시 찾게 된다. 활시위를 당기는 것은 튼실한 오른 팔이지만 과녁을 겨누는 것은 왼팔이다. 메인(Main)이 아닌 서브(Sub)라 보일지 몰라도, 내 몸뚱이에 달린 비주류 왼손이 없다면 바늘귀에 실을 낄 방법은 없을 것이다.


의자의 오른 다리와 왼 다리 중에, 솟을대문의 왼 기둥과 오른 기둥 중, 하늘을 나는 저 비행기의 두 날개 중, 대체 어느 게 더 중하다 할 수 있단 말인가? 좌우의 모양새가 좀 다르다고 어느 하나를 업신여긴다면, 아마 좌우가 다른 우리 자신의 얼굴부터 두 손으로 가려야 할 것이다. 그저 조금 다를 뿐이다.

그래, 가난한 이들을 반겨 맞는 디자이너가 없었다. 험난한 일들을 찾아가는 디자이너도 없었다. 몸으론 갔을지언정 마음으로부터 우러나 발 벗고 나선 디자이너는 얼마나 있었을까?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가 인생이라니, 좌지우지 우왕좌왕 좌충우돌하지 말고 너와 나 한마음으로 사랑하며 자나 깨나 살고 지자.

오른 팔과 왼 팔을 다 벌려 안아주는 것만이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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