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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D:GD 혁명

잡지(雜誌)의 ‘지’ 字는

분명 ‘종이 紙’가 아닌 ‘기록할 誌’이건만 

여전히 빳빳하고 빤짝거리는 종이만

고집하는 우리 잡지들은, 어쩌면 아직도

구텐베르크시대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게

부정할 수 없는 실상이다.

 

 

발행인│박인학

 

10월 31일, 시월의 마지막 날. 그 곡이 나온 게 1982년이었으니 벌써 35년이 지났음에도, 어느 디스크자키가 틀지는 몰라도 올봄 환갑을 맞은 가수 이용의 영원한 히트곡 ‘잊혀진 계절’은 어김없이 라디오에서 흘러나올 것이 분명한 그날이다. 그러나 그 노랫가락과 함께 자웅을 겨룰 또 다른 토픽은 아마 ‘마르틴 루터’라는 이름일 듯싶다.

500년 전인 1517년의 10월 31일, 부패하고 방탕한 생활 때문에 재정적자에 허덕이던 교황청의 처지 하에서, 교황 레오10세가 성베드로대성당(Basilica di san Pietro in Vaticano)을 짓겠다며 면죄부를 팔자, 독일의 성직자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는 95개조의 반박문을 비텐베르크성(城) 슐로스키르헤교회의 정문에 붙이며 종교개혁의 불씨를 놓았다. 루터가 외친 이 항변의 시작은 교황의 권위에 도전하려는 것이었다기보다 면죄부의 오용으로부터 교황을 보호하는 일이 가톨릭의 권위를 되찾아주는 것이라는 확신 때문이었으나 결국에 가서는 파문을 당하고 말았고, 이 운동은 민중의 마음을 움직여 암흑의 중세 역사를 다시 부흥케 전환하는 시발점이 되었다.
이 종교개혁의 성공에는 보이지 않는 힘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1440년에 구텐베르크(Johannes Gutenberg)가 발명한 활판인쇄술에 의한 반박문의 확산과 일반대중을 위해 루터가 독일어로 번역한 성경의 보급이었다. 당시에는 대략 2개월에 1권의 책이 필사(筆寫)될 수 있었지만 구텐베르크 이후에는 1주일 만에 5백 권이 넘는 책이 인쇄될 수 있었기에,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구전(口傳)이 고작이었던 그 당시로서는 인쇄물에 의한 여론 조성이 종교개혁의 대중적 공감과 반향을 이루는 데 절대적으로 기여했다고 볼 수 있다. 오직하면 루터는 인쇄술을 가리켜 ‘복음의 전도를 가능케 해준 신이 내린 가장 고귀하고 끝이 없는 자비의 표식’이라며, 종이매체가 흑암의 시대를 다시 밝힌 불쏘시개였음을 말하고 있다.

종교개혁기념일은 그 발원지인 독일어로는 Reformationstag라 하고, 영어로도 같은 의미인 Reformation Day로, 개혁, 개선이자 개심(한 날이란 뜻이다. 원래, 포메이션(Formation)이란 구기경기에서 상대의 공격과 방어 형태에 따라 우리 팀의 작전을 편성하는 방법으로, 매우 분석적 판단력과 전략적 대응력을 필요로 한다. 즉 자신의 힘이 절대적으로 막강하면 나름대로의 전력에 의한 공세를 펼치겠지만, 그렇지 못하면 상대의 허를 찌르는 전략적 묘수를 찾게 되는 것이다. 즉 중세의 종교개혁은 자발적인 발로였다기보다 상대적 반향으로 인해 발발한 변화라 할 수 있는 것이다.

까마득한 오백년 전에 일어난 종교개혁과 그 직간접적 영향으로 일어난 산업혁명의 시발이 인류의 근현대사를 바꿔 놓았다면, 20세기 정보화시대를 넘어 지금 우리사회 속에서 터지고 있는 제4차 산업혁명은 다가올 미래사를 완전히 뒤집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오백년 전의 형세는 점진적인 개혁이었던데 반해 현재의 당면 사태는 매우 급진적 혁명이란 것이다. 즉 기존을 고쳐보고자 하는 의도가 아닌 기성을 아예 다 부숴버리겠다는 원천적인 차이가 있고, 단지 인간들 계층 간의 권력투쟁이 아닌 인간과 비인간 사이의 전무후무한 접전이라는 사실이다. 여하튼, 온 천하 사방팔방에서 온갖 개혁들이 난무하는 세상인 것만은 분명하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옥자’는, 칸영화제 심사위원장에게 “극장에서 볼 수 없는 영화가 수상해선 안 된다.”라는 말을 들어가면서까지 극장을 마다한 온라인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인 넷플릭스(Netflix) 개봉을 결정해 화제를 낳았고, 빅뱅의 지드래곤은 “USB는 음반으로 볼 수 없다.”는 한국음악콘텐츠산업협회의 방침 결정에도 “What’s the Problem?”이라 응답하면서 USB로 된 디지털음원의 출시를 강행했다. 아마 이 CD(Compact Disc)와 GD(G-DRAGON)의 가볍지만은 않아 보이는 일전은, 다가오는 새 시대를 앞둔 전초전에 불과할 듯싶다.

인테리어디자인 관련 기사 실기시험에서 T자와 삼각자를 치우고 CAD로 보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물론 기획 단계부터 클라이언트와 마주 한 자리에서도 반드시 필요한 손스케치는 분명 습득되어야 하지만, 청사진을 뽑았던 게 이미 수십 년 전 일인데 더 이상 전시대의 유물인 제도판만을 고집하는 것은 이제 철폐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이제는 저 지방군청의 설계경기도 최소한 PPT 프레젠테이션이 당연시되었는데, 아직도 패널과 모형만을 강요하고 있는 각종 공모전들도 새로운 대안을 마련해야 하겠다. 언뜻 옷매무새만으로는 더 없이 앞서가는 듯 보이지만, 더 없이 수구적인 도제(徒弟) 방식의 사고에서 벗어나지 않는 게 바로 우리 디자인계인 것만은 확실하다.

‘자기반성을 엄중히 하고, 다른 사람을 꾸짖는 일을 가볍게 하면 남의 원망이 멀어진다’는 공자의 말씀이 떠오른다.
잡지(雜誌)의 ‘지’ 字는 분명 ‘종이 紙’가 아닌 ‘기록할 誌’이건만 여전히 빳빳하고 빤짝거리는 종이만 고집하는 우리 잡지들은, 어쩌면 아직도 구텐베르크시대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게 부정할 수 없는 실상이다. “Thanks God, It’s Friday!”를 환호하던 T.G.I.F.의 시대마저 ‘Twitter, Google, iPhone, Facebook’에 빠져 사는 신세계로 바뀌었건만, 우리 잡지 발행인들은 물끄러미 컴퓨터 모니터 앞에 앉아 침 바른 손가락으로 페이지만 넘겨가며 홀로 끄덕이고 있다.

혁명의 시대이다. 혁명(革命)이란 ‘가죽 革’에 ‘목숨 命’을 더한 글자로 가죽에 붙은 살점들을 다 떼어내고 무두질을 해 쓸 수 있도록 만들어낸다는 처절한 뜻으로 개혁 정도가 아닌 생명을 걸고 쟁취하는 기성과의 대결을 뜻하며, 영어 ‘Revolution’의 어원인 라틴어 ‘Revolutio’도 우주의 공전(公轉)이란 의미로서 총체적인 천지개벽을 의미한단다.

솔직히 말해, 어느 것들을 버리고 어느 것을 남겨야 할지조차도 혼란스러운 오늘이다. 그러나 黑猫白猫 住老鼠 就是好猫 흑묘백묘 주노서 취시호묘,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를 잘 잡으면 좋은 고양이라는 덩샤오핑(鄧小平)의 말처럼, 무조건 새로움만 추종할 것도 아니고 아날로그든 디지털이든 오프라인이든 온라인이든 극단적 양자택일만 할 것이 아니라 현명한 지혜로 진정한 신(新)과 구(舊)를 콜라보레이션(Collaboration)할 수 있는 법고창신(法古創新) 정신의 발휘가 절실하다. 즉 온라인 오프라인, 아날로그 디지털은 절대 나눠질 수 없는 속성의 서로가 이어져 주고받는 하나의 유기체임을 알아야 한다.
루터가 말했다. “새가 머리 위로 날아가는 것은 막을 수 없지만 머리 위에 둥지를 트는 것은 막을 수 있다.”
사람이 디자인을 만들고, 디자인은 사람을 만들며, 그 사람들이 세상을 만든다. 세상을 올곧게 만들어가는 디자인으로, 우리 인간에게 쾌락만이 아닌 진정한 행복을 되찾아주는 다리가 되자! 디자인을 디자인하는 혁명을 이룩해보자!
“오늘 걷지 않으면, 내일은 뛰어야 한다.” 도스토옙스키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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