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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IORS

“놀 줄 알더라고요!”

‘저녁이 있는 사회’는 고사하고 아직까지도

‘月火水木金金金’ 새벽나절에 시작하는 공사현장과,
야근과 철야를 밥 먹듯 하는 설계사무실이 있는 게

바로 우리네 바닥의 현실이다.
또 2017년 최저임금이 시급 6,470원이라는데,
우리 디자이너들의 근무시간을 따져볼 때에

과연 편의점알바 시급에나 미칠는지 모를 지경이다.

 

발행인│박인학

 

 

날마다 같은 일을 되풀이하며 살아가는 것을 일상이라 한단다. 늘…
2017년 10월, 지난 한 달은 일생 중 얼마 안 되는 일상 속에서의 일탈이었다. 물론 자의적이라기보다는 나라에서 정해준 세칭 ‘황금연휴’라는 시간이었지만, 그 황금의 찬란한 빛이 좋다며 만끽했던 이들도 있었던 반면, 도리어 암담한 구덩이였던 이들도 적지 않았던 듯했다. 장장의 휴일에서 돌아온 면면들을 보아하니, ‘고기도 먹어 본 놈들이 먹는다‘고, 그 황금빛 번쩍거림이 버거워 열흘 동안 눈을 가리고 살아야 했던 군상들도 꽤 많았던 듯싶다. 놀라기에 싫든 좋든 노니나니 하느라 전후좌우로 앞가림하랴 뒤치다꺼리하랴 부랴부랴 허겁지겁 고생도 많았고, 유유자적 쉬고 놀았다는 기억보다는 아등바등 갈팡질팡 널뛰었던 기억들로만 그득한 열흘이었다.

좌우지간 ‘세상에 공짜는 없다’고, 무엇인가를 얻는다는 것은 반드시 무엇이든 잃는 것도 있는 게다. 더 없이 좋아만 보이는 게 부귀영화라 여길지 몰라도, 부유함은 만족을 빼앗고 고귀함은 겸손을 앗아가기에, 결국 일시적으로 다가왔던 영화(榮華)가 서글픈 영화(映畵)로 끝맺게 되고 마는 스토리도 많은가 보다. 또 모두가 성공을 쟁취하려 버둥대지만 그 성취의 결과가 항상 행복으로 이어지는 것만이 아님도 숱하게 보았고, 심지어는 영원할 듯했던 사랑의 속삭임도 증오의 눈길로 바뀌는 이들도 적지 않다. 그래서 인생을 두고 희비의 쌍곡선이라 하는가 보다.

“행복에 이르는 길은 욕심을 채울 때가 아니라 비울 때 열린다.” 헬레니즘시대의 그리스 철학자 에피쿠로스(Epicurus)의 말이다. 다 고개를 끄덕일 만한 말이고, 어떤 이는 그럴듯한 표정으로 다른 이들에게 이르기도 했던 이야기일 게다. 하지만 행하기는 결코 쉬운 언사가 아니다. 허튼 욕정을 비울 줄 아는 것보다 더 큰 축복은 없으며, 아마 크게 깨우친 불세출의 성인군자만이 행할 수 있는 득도의 경지일 것이다. 과욕초화(過慾招禍) 욕심이 지나치면 화를 부른다 하고, 과유불급(過猶不及) 지나침은 미치지 못함과 같다 하고, 소탐대실(小貪大失) 작은 것을 탐하다가 큰 것을 잃음도 적잖이 당했으면서도, 그 과욕은 이 몸뚱이 밖으로 내치지 못한 채 일거양득(一擧兩得), 일석이조(一石二鳥)까지 탐하며 사는 게 우리 무지렁이들이다.

마치 담금질해대듯 물불 안 가리고 양극단을 오가는 우리 인테리어디자인 업계를 보면, 이제는 뭔가 바뀌지 않으면 안 된다는 급박한 지경에 달했음이 피부에 와 닿는다. ‘저녁이 있는 사회’는 고사하고 아직까지도 ‘月火水木金金金’ 새벽나절에 시작하는 공사현장과, 야근과 철야를 밥 먹듯 하는 설계사무실이 있는 게 바로 우리네 바닥의 현실이다. 또 2017년 최저임금이 시급 6,470원이라는데, 우리 디자이너들의 근무시간을 따져볼 때에 과연 편의점알바 시급에나 미칠는지 모를 지경이다. 아침7시에 현장 가서 오후5시에 마감 짓고 다시 사무실에서 도면 치다 밤10시나 되어야 눈치 보며 퇴근하는 하루 13시간(식사시간 제외) 종사자라면, 학력 경력 불문 초보자라도 (만일 휴일도 없이 일한다면) 적어도 2,523,000원은 주어야 소위 노동법에 저촉이 안 된다는 게 실상이다. 사장 입장에서 보자면, 나갈 목돈은 잔뜩 있고 그나마 들어올 푼돈도 종무소식인데, 듣기만 해도 걱정이 태산일 게다.

여하튼 최근 우리의 관련단체에서는 이대로 눈 가리고 입 닦고 나가다가는 사회적 공분을 살 파렴치한 집단이 될 것 같아 스스로를 돌아보는 기구구성과 대책마련을 모색하고 있다. 실내건축공사업협의회(ICC)는 ‘새 정부 노동정책과 실내건축업의 노무방안 전략’을 주제로 하는 세미나를 개최하며 대응방안에 대해 논의했고, 한국실내건축가협회(KOSID)는 ‘디자이너의 표준임금 및 근로조건 제정’을 위한 특별위원회를 구성하는 등, 급변하는 노무시책에 대비한 일련의 제도수립을 고심하고 있다. 또 정부에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노동시간단축을 통한 일자리나누기’를 운운하며, 주52시간(연장근로 12시간 포함)의 추진을 공언하고 있다.
지금 같은 세상판세라면 그간 묵언수행하듯 묵묵히 주어진 일만 하던 우리의 차세대들도 슬슬 언제 제 권리를 주장하고 나설지 모른다. 더욱이 서 있으면 앉고 싶고, 앉으면 눕고 싶고, 누우면 자고 싶은 게 인간이라니, 취업자 입장에서의 목소리가 머지않아 큰 고함이 되어 나타나지 않으리라고는 아무도 속단할 수 없는 시국이다. 기왕 줘야 할 것일 진데, 먼저 주지 않으면 결국은 더 많이 빼앗기게 되는 것이 세태이다.

21세기의 디자인은 일상이다. 현대의 디자인은, 특이하고 값비싼 호사의 상징으로만 여겨졌던 전시대적 개념의 극소수 고소득집단만을 위한 독과점산물이 결코 아니다. 하기에 디자이너들도 일을 내려놓은 일상의 삶 속에서 새로운 창의를 찾아낼 수 있는 정도의 쉼이 주어져야 한다. (그 따위 것들은 정말 싫어하지만) 빼빼로데이에 여친 남친과 데이트라도 즐길 수 있는 여유 정도는 이제 누려야 한다는 말이다.“어떻게 하면, 훌륭한 디자이너가 될 수 있어요?” 언제 어디였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한 대학특강을 마친 후 질문시간에 날아온 돌직구였다. 잠시 동안의 고심 후에 내놓은 답변은 고작 이것이었다. “놀 줄 알더라고요!” 주변에서 보아온 소위 잘 나간다는 디자이너들의 유일한 공통점은 오직 하나, ‘놀 때 멋지게 신나게 노는’ 놀이꾼들이란 것뿐이었다. 뭔지 그럴듯한 응답을 기다렸던 듯했던 그 학생의 표정은 갸우뚱했지만, 그것 말고 더 이상의 답이 없다는 것은 지금도 변치 않는 생각이다.

평상이 좋아야 특별도 좋다. 오늘이란 일상이 행복해야 어쩌다 찾아오는 특별한 시간에도 평온과 안락을 취할 수 있다. 지금은 별식이요 건강식이 된 겉보리겨죽만 삼시세끼 먹다 명절날이나 되어야 고깃국을 맛보던 시대는 지났어도 한참 전에 지났다. 아무리 산해진미 반찬이 있어도 밥맛이 없으면 결국 젓가락질만 하다 물려지는 밥상 신세가 되고 만다.

에피쿠로스는 이런 말도 했단다. “못 가진 것에 대한 욕망으로 가진 것을 망치지 말라. 그리고 지금 가진 것이 한때는 바라기만 했던 것 중 하나였다는 것도 기억하라.” 지금 내게 주어진 이 디자인이란 과업에 감사하자. 그리고 만일 감사의 마음이 없다면, 지금 당장 일어나 보따리 싸서 떠나라.
지혜가 절실한 시점이다. 곳간에 쌓아둔 것을 나누는 것이 아니니, 모두가 함께 피땀 흘려 거둬들여야 우리의 몸도 맘도 나아질 수 있다. 앞에서 끌고 뒤에서 밀며 한 걸음씩 나아가보자. 우선, 너와 나란 이분법적 계산을 버리고 우리를 먼저 생각해야 나도 너도 살 수 있다. 만일 우리 인테리어디자인 시장에도 노사(勞使) 광풍이 닥친다면, 위약하기 그지없는 우리는 피어 보지도 못한 채 맥없이 노사(老死)하고 말 것이다.
“나도 그랬으니, 너희도 다 겪어내야지!” 그런 말씀 그만 하세요.
“남들도 그렇다니, 우리도 나아져야죠!” 그런 말도 말자.
차근차근 하나씩 풀어가자. 일단 함께 살아야, 놀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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