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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IORS

빌 게이츠 마인드 디자인

 이제 디자인은 물론 모든 문화와 예술은

하이엔드(High-end)의 특정 고객들과만 교류 교감하며

팔고 사면 그만이라는 자세로는

 머지않아 스스로 자멸하고 말 것이다.
즉 중류계층(Midcult) 그리고 서민문화(Civilian Culture)를 향한

문화적 기부를 도외시한다면,
그 ‘High’들은 저 ‘下’의 밑바닥으로 처박히고 말 것이다.

 

발행인│박인학

 

‘퍼주고도 24년째 세계 최고 갑부, 빌 게이츠’. 한 신문기사의 제목이었다. 지난 10월 중순, 미국의 경제전문지 포브스가 발표한 ‘The Forbes 400, 미국 400대 부자 리스트’에 따르면, ‘기부왕’으로도 유명한 마이크로소프트(MS)의 공동창업자 빌 게이츠(Bill Gates)가 전년대비 80억 달러 늘어난 890억 달러(100조8000억 원)로 24년 연속 세계 최고 부자의 타이틀을 지켰다. 반면 취임 후 ‘셀프감세’ 등 온갖 논란에 휩싸였던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지난해 156위에서 무려 92계단 하락한 248위로 ‘가장 큰 패자’란 소리를 들어야 했다.
“Life is not fair; get used to it. 인생이란 결코 공평하지 않다. 이 사실에 익숙해져라.”라 말하기는 했어도, 그는 인류의 공평을 위한 여생을 살고 있다. 빌 게이츠의 명망은 그가 움켜진 돈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그의 공명정대한 씀씀이에 있다. 세 자녀에게는 각각 단돈(?) 1000만 달러씩만 물려줄 것임을 밝힌 그는, 기부재단인 ‘빌 앤드 멜린다 게이츠 재단’을 아내 멜린다(Melinda Gates)와 함께 설립하여, 국제적 보건의료, 빈곤퇴치, 교육기회확대 등을 위해 엄청나게 통 큰 기부를 지속하고 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의 오랜 친구이자 올해 3위에 랭크된 자산가 워런 버핏(Warren Buffett) 버크셔해서웨이 회장도 2006년부터 자신 소유 주식의 대부분을 이 재단에 기부하고 함께 적극 동참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나라로 치자면 삼성과 현대쯤이 손을 맞잡고 선행을 함께 베푼다는 것이니, 글쎄 도무지 상상이 안 되는 멀고먼 나라의 이야기로만 들린다.

우리나라에서는, ‘사랑의 열매’로 알려진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나의 기부, 가장 착한 선물입니다’를 올해의 슬로건으로 내걸고 3,588억 원을 목표로 한 72일간의 연말 이웃돕기 집중모금 캠페인을 전개하고 있다. 하지만, 결손아동 후원금을 가로챈 ‘새희망씨앗법인’ 사건과 딸 치료를 위한 후원금으로 호화생활을 한 ‘어금니 아빠’ 사건 등이 어렵사리 이어온 기부문화에 찬물을 끼얹더니, 사회 전반적으로도 소득공제 축소, 저성장과 고실업 등 경기불황 장기화로 기부금 모금이 감소하고 있다며 울상이다. 기부란 오른손으로 하더라도 제 왼손도 몰라야 하는 것이라 했건만, 너무 이것저것 가리고 따지며 하는 게 우리네의 얄팍한 속성인가 보다. 이유를 불문하고, 이 추운 겨울이 마음까지 더 을씨년스러워질까 걱정이 앞설 뿐이다.

개인사가 아닌 세계 전반의 판도를 보아도, 한랭전선의 기류가 등등하다. 먼저, 세계 강대국의 국가지도자들의 면면을 둘러보니, 막가는 미국, 잊혀져가는 영국, 지쳐가는 독일, 어설픈 프랑스, 뻔뻔스런 일본, 그리고 치우쳐진 한국에 비해, 바다 하나 건너 있는 저 중국만은 날로 강성해짐이 피부에 와 닿는다. 물론 이 중국에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기에, 문젯거리의 노출은 온갖 통제에 의해 철저히 막은 채 양지만 드러내고 음지는 아예 깊은 흑암에 묻어버리는 게 실상이다.
그런데 그 중국에서 새로운 단어들이 국가기조로서 대두되고 있다. 민족적으로는 ‘쫑구어멍(中國夢), 중화민족의 부흥에 대한 꿈)’, 경제적으로는 ‘신창타이(新常態, 고도성장기를 지나 중고속의 안정성장 시대를 맞는 경제)’, 국제적으로는 ‘이다이일루(一帶一路, 신 실크로드경제권과 21세기 해상 실크로드로의 확장)’, 사회적으로는 ‘샤오캉(小康, 온 국민이 누리는 편안하고 풍족한 생활)’이 그것이다.
이러한 중국 정강을 요약하면 무엇일까? 그것은 놀랍게도, 소위 인민들을 생각하기 시작했다는 혁명적 발상의 전환이다. 물론 14억에 육박하는 전체 인구를 하루아침에 끌어올리기는 절대 쉽지 않겠지만, 중국 지도자들의 눈이 아래를 살피기 시작했다는 점만은 지켜볼 만한 일이다. 특히 이는 서방민주주의국가들이 내세우는 겉만 번드르르한 선거공약과는 질적으로 다른 힘이 느껴진다. 하기야 중국의 영문국명이 ‘The People’s Republic of China’임을 감안할 때, 중국의 서민대중 즉 ‘People’을 향한 선회는 지극히 당연한 수순이라 할 수 있겠다.

디자인의 초심도 기부이다. 이는 우선 디자인을 뜻하는 설계의 ‘設’이 베푼다는 뜻이기 때문일 것이고, 다음은 대학가에 분식점을 차리려는 쉰아홉 사장님과 서른여덟 디자이너가 스물하나 여대생의 마음을 읽으려 고심하는 마음가짐과 같은 연유이다. 더욱이 공간디자인은 땅과 하늘, 인간과 사물, 오늘과 내일 등과 디자인 결과물 간 상호의 주고받음 즉 Give&Take가 제대로 이루어져야만 완성되는 결과물이기에, 서로가 서로를 아는 철저한 이해와 소통이 선행되어야 한다.

‘十匙一飯 십시일반’이라, 열 사람이 한 술씩 보태면 한 사람 먹을 분량이 된다는 뜻이다. 언뜻은 쉬워 보인다. 그러나 진짜 중요한 것은, 우선 남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열 명 당 하나일 때에만 가능한 게고, 더 따지고 들자면 그 열 명의 나누고자 하는 마음가짐이 일치해야 이루어질 수 있는 논리이다. 그렇다면, 현실은 십시일반이 아니라 백시일반(百匙一飯), 천시일반(千匙一飯), 만시일반(萬匙一飯) 쯤은 되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20세기 초 전 세계 예술가를 불러 모아 ‘예술의 본향’으로서 도도하게 풍요와 평화를 누리며 ‘벨 에포크(la belle epoque, 좋은 시대)’를 맞았던 프랑스였지만, 갈수록 런던과 뉴욕 등에 밀려 사그라짐을 절감했나 보다. 에펠탑에서는 ‘뉘 블랑슈(nuit blanche, 하얀 밤)’란 라이팅쇼를 벌였고, 프랑스 사법부의 심장이라는 최고재판소는 지방시(Givenchy)의 패션쇼를 위해 8백 년 만에 자리를 내주었으며, 생로랑(Saint Laurent)은 에펠탑 앞의 트로카데로에 런웨이를 펼쳤고, 로레알(L'Oreal)은 개선문에서부터 샹젤리제 거리 통째를 쇼장으로 바꾸었다.

이제 디자인은 물론 모든 문화와 예술은 하이엔드(High-end)의 특정 고객들과만 교류 교감하며 팔고 사면 그만이라는 자세로는 머지않아 스스로 자멸하고 말 것이다. 즉 중류계층(Midcult) 그리고 서민문화(Civilian Culture)를 향한 문화적 기부를 도외시한다면, 그 ‘High’들은 저 ‘下’의 밑바닥으로 처박히고 말 것이다.

기부란 행위는 나눔과 베품이라고만 여길지 몰라도, 기부의 결과는 내가 준 것 몇 곱절의 자족과 치유로 돌아오기도 한다. 제 자신을 먼저 생각하는 이기심은 얼마나 노골적이냐의 차이일 뿐 모두가 품고 있지만, 남을 위하는 이타심이 없는 자기애는 궁극적 행복도 성공도 이룰 수가 없다. 이러한 배타적 이기주의는 종국에 가서는 자기 자신마저 미워하고 싫어지는 결말로 빠져들기 때문이다. 지금 기부를 기다리는 이들이 바라는 것은, 아마도 돈과 쌀만은 아닐 것이다.

절을 할 때는 상대방의 발끝을 보며 머리를 깊이 숙이라 이르셨던 은사님의 말씀이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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