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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년 개띠들의 환갑

어찌 보니, 디자이너의 모습도 개와 비스무리한 팔자이다.
인간에 앞서 우주탐사에 나선 우주견이 될지,

시각장애자를 이끌어주는 안내견이 될지,
주인의 사랑을 독차지할 애완견이 될지,

길거리를 헤매는 유기견이 될지,
보신탕집으로 끌려갈 식용견이 될지,

이도 저도 아닌 똥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어떤 개꼬리가 이 세상을 어떻게 흔들어 놓을지는 모두 제 하기 나름이다.

 

발행인│박인학

 

그 해 띠의 동물을 빌어 다가오는 해의 트렌드를 예측하는 키워드를 제시해 온 김난도 교수의 <트렌드 코리아>. 2016년 병신년(丙申年) 원숭이의 해에는 ‘MONKEY BARS’라며 “위기의 터널을 재치와 기지로 극복하라” 했지만 결국은 완전히 구렁텅이에 빠지고 말았고, 2017년 정유년(丁酉年) 닭의 해에는 ‘CHICKEN RUN’이라며 “비상의 날개를 펴라” 했지만 아직도 안팎 할 것 없이 비상시국은 여전하고, 2018년 무술년(戊戌年) 개의 해에는 ‘WAG THE DOGS’라며 “꼬리가 몸통을 흔들다”라니 올해도 온전히 제 정신 차리기는 도무지 어려울 성싶다.

어쩌다 그 유명세를 얻었는지 몰라도, ‘58년 개띠’님들이 육십갑자의 ‘갑(甲)’으로 되돌아온다는 환갑을 맞는 해가 바로 올해이다. 물론 식구들끼리 모여 저녁 한 끼로 넘어가거나 잘 해야 3박4일짜리 동남아여행 정도 다녀오면 고작인 게 환갑의 새 풍속도이지만, 여하튼 다사다난한 생을 산 그네들이셨다. 58년생 개띠들은 한국전을 겪으며 미뤄졌던 결혼이 급증하는 등 사회가 점차 안정을 찾아가며 나타난 베이비붐시대의 표본 중 하나였다. 그래서 이 즈음에 태어난 베이비부머들은 어쩔 수 없이 많은 경쟁을 치르며 살게 되었고, 그로 인한 치열한 강인함도 겸비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우리나라에서 입시파동에 휘말리지 않은 세대는 없다 하겠지만, 이들은 중학교 가기 2년 전에 중학교 입시가 소위 ‘뺑뺑이’ 추첨으로 되더니, 본격적으로 고입 본고사를 준비하던 중3초에는 고등학교 입시가 연합고사제로 바뀌어 혼란에 휩싸이게 되었고, 대학 입시마저 역대 최고의 경쟁률을 기록하며 ‘77학번’이란 간판을 달게 되었다. 그리고 세상에 나오면서도 어쩔 수 없이 이리 부딪고 저리 채이며 산전수전공중전의 개고생 속에서 오늘의 대한민국을 일궈 온 역전의 인생들이었다.

58년 개띠 해 오월 오일에 태어났다, 나는.
양력으로는 어린이날 음력으로는 단옷날
마을 어르신들 너는 좋은 날 태어났으니 잘 살 거라고 ‘출세’할 거라고 했다.
말이 씨가 되어 나는 지금 출세하여 잘 살고 있다.
이 세상 황금을 다 준다 해도 맞바꿀 수 없는 노동자가 되어 땀 흘리며 살고 있다.
갑근세 주민세 한 푼 깎거나 날짜 하루 어긴 일 없고
공짜 술 얻어먹거나 돈 떼어 먹은 일 한 번 없고
어느 누구한테서도 노동의 대가 훔친 일 없고
바가지 씌워 배부르게 살지 않았으니 나는 지금 ‘출세’하여 잘 살고 있다.
노동자 시인 서정홍 님이 쓴 <58년 개띠>라는 시이다. 아마 적지 않은 ‘58개’들이 공감할 수밖에 없는 글귀인 듯싶다.
그들은, 머리숱이 줄어 가발을 써야 하는 가수 설운도 같은 조짐이 나타날 테고, 배우 조형기 같이 서글서글하게 생겼거나, 그래도 아직은 그 나이 같지 않는 배우 장미희 같은 자신감을 지녔을지도 모르고, 가수 김현식의 <내 사랑 내 곁에>의 노랫말 “힘겨운 날에 너마저 떠나면 비틀거릴 내가 안길 곳은 어디에~” 같은 애환을 읊조리며 살고 있는, 우리들의 58년생 아저씨 아줌마들이다.

‘개가 개를 낳지, 개가 겨를 먹다가 말경 쌀을 먹는다, 개가 똥을 마다할까, 개가 미쳐 나면 소도 미쳐 난다, 개가 제 주인을 보고 짖게 되여야 농사가 풍년 진다, 개가 짖어도 행차는 간다, 개같이 벌어서 정승같이 산다, 개 고양이 보듯, 개 닭 보듯, 개가 웃을 일, 개 눈에는 똥만 보인다, 개는 나면서부터 짖는다, 개 팔자가 상팔자…’ 개처럼 속담이 많은 단어도 없는 듯하다. 아마 그 무엇보다 사람과 친근한 동물이라 그렇겠지만, 예전에는 하나같이 다소 부정적인 것 일색이지 오늘날의 반려견 같은 상팔자의 개 팔자는 없어 보인다. ‘Every dog has its day.’ 쥐구멍에 볕들 날이, 드디어 저 견공(犬公)들에게 온 게다.

‘디자인은 인간을 위한 창의적 행위이다.’ 디자인에 대한 나의 수십 년 지론이었다. 그런데 이 근시안적 단견이 무너져 버렸다. 근자에 들어 인테리어디자인 프로젝트들 중에는 온갖 반려동물을 위한 공간들이 부쩍 많아졌음을 보게 된다. 처음에는 ‘이러다 말겠지…’ 싶었지만, 그 시장의 증폭은 가히 놀라울 지경이다. 국내에서 반려동물을 키우는 인구는 지난해 7월로 1,000만 명을 이미 돌파했고, 한 백화점의 실적을 보니 아동 카타고리 매출이 29% 늘어날 때 반려동물은 178%의 폭발적 신장률을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태어나 징징대는 아이들은 줄어들고 멍멍짓는 강아지들만 늘어나고 있음을 보여주는 한 단면이라 아니할 수 없다.이젠 반려동물과 짝이 되어 ‘펫팸(Pet-Family)족’으로 살겠노라고 하니, 그 동반자 내지는 동거인들을 위한 공간 내의 공간을 그저 마당 한 구석의 ‘개집’ 취급만은 할 수 없는 세태가 되었다. 이는 단지 주거공간에서 뿐만 아니라 식음공간, 판매공간은 물론 모든 인간전용 공간 내에서 반려동물의 입장허용 여부를 스스로 결정해야 할 시점이 임박한 듯싶다. 공간디자인은 공간 내의 모든 생명체뿐 아니라 모든 사물을 기능적이고 아름답게 담는 창의적 작업인 것은 분명하다. 특히 그 중 인간이 유일하게 생활하는 존재였지만 반려동물들도 생존에서 생활로 변화하고 있기에, 그에 대한 면밀한 대비책의 마련 또한 필수불가결의 사항이 될 것이다. 개가 사람과 가장 친근한 까닭은 제 주인을 알아본다는 것일 게다. 먹여주고 재워주니 그런 것이라 할지 몰라도 의식주에 온갖 걸 다 갖다 바쳤는데도 나 몰라라 하는 개만도 못한 인간들도 적지 않다 보니, 개와 생사고락을 함께 하는 이들이 늘어나는 듯싶다.
러시아어로 ‘동반자’란 뜻인 스푸트니크호는 소비에트연방이 1957년부터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을 띄우며 우주경쟁시대의 포문을 연 우주개발계획이었다. 그중 스푸트니크 2호는 생물을 우주로 데리고 나가기 위해 밀폐된 탑승실에 모스크바 골목을 떠돌던 암캉아지 ‘라이카(Laika)’를 탑승시켰고 안타깝게도 발사 7일 만에 산소고갈로 사망했지만(우주과학자 말라센코프의 당일 사망설도 있음), 여하튼 인간에 앞서 우주를 여행한 최초의 생명체가 되었다. 즉 영예 아닌 영예를 얻고 지구를 떠나 먼 나들이 길을 간 것도 인간보다 개가 먼저였다.

개의 품종이 자그마치 400여 종에 이른다니, 개처럼 생김새가 제각각인 종자도 흔치 않을 뿐더러 덩치만도 크고 작은 놈이 몇 곱절은 차이가 난다. 어찌 보니, 디자이너의 모습도 개와 비스무리한 팔자이다.
인간에 앞서 우주탐사에 나설 우주견이 될지, 시각장애자를 이끌어주는 안내견이 될지, 주인의 사랑을 독차지할 애완견이 될지, 길거리를 헤매는 유기견이 될지, 보신탕집으로 끌려갈 식용견이 될지, 이도 저도 아닌 똥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어떤 개꼬리가 이 세상을 어떻게 흔들어 놓을지는 모두 제 하기 나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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