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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본 없는 드라마, 스포츠

 수많은 경쟁 속에서 다투며 홀로 이겨내야 하는 스포츠의 과정이

우리 디자이너들의 행보와 비슷함을 알게 된다.
정신노동이니 감성노동이니 말들은 하지만

육체적 지탱이 없이는 결코 성취할 수 없고,

혼자하기도 하지만 팀을 짜서 하는 일이 태반이며,
더욱 어려운 것은 스포츠처럼 한 순간에 아싸리하게

판정이 나지 않고 최소한 사용 연한이 끝날 때까지는

그 경기가 끝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발행인│박인학

 

 

전 세계에 우리를 알리며 범국민적 환호 속에 서울올림픽이 열린 것이 1988년이니 지금부터 딱 30년 전의 일이었고, 아직도 그 감동이 식지 않은 2002년 월드컵축구대회의 뜨거운 열기도 벌써 16년이 지났다. 스포츠 국제대회의 유치는 산업생산 유발과 관광수입 증대는 물론 개최 국가나 지역의 국제적 위상증진 등 많은 유무형의 긍정적 효과를 유발하기도 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주최 측만 실속을 챙기고 개최 당사자는 엄청난 재정부채만 떠안게 된 부정적 실패사례도 적지 않았다. 즉 결국 패배를 당한 대회도 있었고, 승리를 얻은 대회도 있는 게 스포츠대회였다. 이기기도 하고 지기도 하는 승패병가상사(勝敗兵家常事)의 명운이 바로 스포츠인가 보다.

스포츠의 어원은 ‘물건을 운반한다’는 라틴어 ‘portāre’를 기원으로 13세기경에는 프랑스어 ‘de(s) port=disport’로 이어지다 같은 무렵에 영어 ‘sporte’로 전화(轉化)되었는데, 지금은 본래의 ‘game’이나 ‘play’를 대신하는 국제공용어가 되었다. 이 같은 어원의 경로를 볼 때에, 고대그리스의 ‘경기는 죽을 때까지 싸운다’는 ‘agonize’와는 근본적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고, 프랑스어나 영어로 전화했던 당시는 서민들이 작은 권리들을 주장하기 시작했던 시대로 ‘엄하고 가혹한 작업이나 노동에서 잠시 벗어나 기분전환을 한다’는 뜻이 내재되어 있었단다. 즉 농민, 기술자 등 일반시민들이 뛰고, 헤엄치고, 공을 차고, 힘을 겨루는 것이 스포츠였다. 그 후 영국의 스포츠학자 매킨토시(P. C. Mcintosh)는 스포츠를 경기(Competitive), 격기(Combat), 극복(Conquest) 스포츠의 3개 범주로 나누었고, 우리나라는 1962년 제정된 국민체육진흥법 이후 ‘운동경기, 야외운동 등 신체활동을 통하여 건전한 신체와 정신을 기르고 여가를 선용하는 것을 말한다’라 규정하고 있다.

그러고 보니 수많은 경쟁 속에서 다투며 홀로 이겨내야 하는 스포츠의 과정이 우리 디자이너들의 행보와 비슷함을 알게 된다. 정신노동이니 감성노동이니 말들은 하지만 육체적 지탱이 없이는 결코 성취할 수 없고, 혼자하기도 하지만 팀을 짜서 하는 일이 태반이며, 더욱 어려운 것은 스포츠처럼 한 순간에 아싸리하게 판정이 나지 않고 최소한 사용 연한이 끝날 때까지는 그 경기가 끝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풍작을 기원하고 수확물의 정령을 위로하며 농경의례를 치르는 새해의 첫 절기 입춘(立春)과 눈이 녹아서 비가 되면서 새싹이 트이고 봄이 온다는 우수(雨水)가 있는 게 올 2월이다. 예로부터 겨우살이를 마치고 농사를 준비하면서 노동을 대하는 첫 시작은 농악무였다. 꽹과리, 북, 태평소, 징 등을 두드려대는 풍물놀이에 맞추어 흥겹게 춤을 추면서 예술적 체육 문화로 한 해를 여는 우리 민족이었다. 이는 서양의 획일적 매스게임(Mass Game)이나 단순한 스트레칭(Stretching)과는 격이 다른 장단 속의 손짓발짓이었다. 누구 하나 부딪쳐 겨루려 하지도 않았고 모두 함께 신명나게 웃고 놀며 진정으로 스포츠정신을 드높이는 몸가짐이요 마음가짐이었으니, 정녕 멋과 맛을 아는 스포츠맨들이 우리 민족이었다.

인간이 시간 공간을 뛰어넘어 자연 위에서 끝없이 겨루어야 하는 게 스포츠이다.
언뜻 마구잡이로 보이지만 정해진 룰을 철저하게 지켜야 하는 게 스포츠이다.
제각각의 다른 능력을 발휘하여 집중된 한 힘으로 모아야 하는 게 스포츠이다.
일상생활에서의 일탈이며 자아의식으로부터 이탈하는 방도가 스포츠이다.
한 명의 스타를 낳기 위해 많은 조력자들의 숨겨진 노고가 필요한 게 스포츠이다.
심신단련이란 말처럼 몸과 마음을 다 수련해야 좋은 결과를 낳는 게 스포츠이다.
결과만이 겉으로 드러나지만 하나하나의 과정들이 쌓여 이루어지는 게 스포츠이다.
혼자 할 수 없기에 할 때는 하지만 쉴 때는 쉴 수밖에 없는 게 스포츠이다.
각자만의 경쟁인 듯하지만 결국은 모두를 위한 경합인 게 스포츠이다.
항상 이기기만 하고 싶지만 언제든 뉘에게든 질 수도 있는 게 스포츠이다.
많은 것을 얻는 것 같지만 결국은 이름만 남겨지는 게 스포츠이다.
영원히 계속할 것 같지만 언젠가는 물려주고 물러날 수밖에 없는 게 스포츠이다.
그리고 이러한 스포츠의 이치들은, 디자인도 마찬가지라는 것은 잘 알 것이다.

돌이켜 보니 자웅을 겨루던 승부의 결과에 대한 기억보다는, 서울올림픽은 ‘굴렁쇠 소년’의 잔상을 남겼고 월드컵은 “대~한민국!”이란 메아리를 남겼다. 많은 승리와 패배를 주고받겠지만, 결국 우리 모두에게 남는 것은 문화적 콘텐츠 이미지뿐이다.
“세계적인 문화상품이 되려면 한국적 독특함도 중요한 요소지만 그것만 갖고는 세계인의 이목을 집중시킬 수 없습니다. 한국적인 요소에 세계적인 보편성이 어우러져야 합니다. 이 두 가지가 있을 때 비로소 세계적 작품이 탄생하는 것입니다. 평창동계올림픽 개폐회식에서는 바로 이 두 가지 요소를 극대화해 세계 최고의 쇼를 선보일 계획입니다.” 평창동계올림픽 개폐회식 연출을 맡은 ‘대중문화의 마법사’ 송승환 총감독의 말이었다. 수십 년 전에 지어낸 ‘굴렁쇠’의 시각적 이미지와 “대한민국!”의 청각적 이미지를 뛰어넘어 조화되는 새로운 콘텐츠가 온 세상을 향한 멋들어진 ‘난타’로 태어나기를 믿고 기대할 뿐이다.

“99도까지 열심히 온도를 올려놓아도 마지막 1도를 넘기지 못하면 영원히 물은 끓지 않는다고 한다. 물을 끓이는 건 마지막 1도, 포기하고 싶은 바로 그 1분을 참아내는 것이다. 이 순간을 넘어야 그 다음 문이 열린다. 그래야 내가 원하는 세상으로 갈 수 있다.”
‘스무 살 김연아, 그 열정과 도전의 기록’라는 부제를 가진 자서전 <김연아의 7분 드라마>에 나오는 글귀이다. 말도 많고 탈도 많지만, 예측을 불허하는 그 각본 없는 드라마가 우리의 눈앞에 다가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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