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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IORS

깜짝 통일 디자인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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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디자인은 그런대로 연습되어 있지만

북조선의 디자인에 대해서는 상상조차 안 했으니,
한반도 디자인에 대한 총체적 준비는 전무라 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어찌 보면 어영부영 제대로도 안 된 재고와 중고가 있느니,

차라리 아무 것도 없는 맨땅이 낫다.
첫 번째 점을 어디에 찍고, 첫 번째 선을 어디로 어떻게 긋느냐가 정말 중요할 것이다

박인학 l 발행인

 

 

 

 

 

“우리의 소원은?” 하면 “통일!” 하고, 자다 깨서라도 외마디 답이 튀어나오는 게 우리이다. 그 어떤 남북공동행사에서도 모든 관객과 함께 부르는 ‘우리의 소원은 통일’의 피날레가 절대 빠지지 않았던 것만 보아도, 통일이 남북·북남을 막론하고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민족의 염원인 것은 분명한 듯하다. 그 통일의 서광이 어렴풋이 비치고 있다. 물론 와르르 하고 일순간에 장벽이 무너져 내린 독일 통일의 모습까지 바라진 못 하겠지만, 굳이 정치적 용어를 쓴다면 ‘평화통일’이 되든 ‘흡수통일’이 되든 통일의 햇살이 서서히 밝아오는 것만은 모두가 느끼고 있다.

통일에도 몇 가지 차원이 있는 듯하다. 우선은 사전에 나오는 대로 그저 하나로 합쳐 놓는 외적 통일(統一)이 급선무로 보일지 몰라도, 마음과 마음을 잇는 내적 통일(通一)이 종국의 관건이 될 것이다. 즉 서로 주고받는 상통(相通)이 없는 통일은 결국 둘 다 아픈 상통(傷痛)만 낳을 것이 빤하기 때문이다. 일단 저질러놓고 보자는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식의 처리과정으로만 일관했던 이 나라의 정치사로 볼 때에, 준비 없는 졸속은 나중에 더 큰 폐해를 자초할 게 눈에 훤히 보이는 건 말만 안 하고 있지 모두가 다 아는 걱정거리이다. 즉 지금 당장 처결해야 할 것이 북한 땅굴 속의 핵폭탄만이 아닌 마음속에 깊이 박혀 있는 까마득한 괴리임을 오늘의 남북 위정자들은 분명히 알아야 한다. 이 한반도의 통일이란 역사적 과업이 한 개인의 노벨상 수상 업적 중 한 줄로 치부되기 위한 퍼포먼스나 이벤트 거리는 절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의 ‘평화통일’이란 용어는 북한이 주장해 온 ‘연방제’와는 다르지만 일단 전쟁 없는 통일을 전제로 하여야 함은 양자가 공감할 것이다. 여하튼 누가 누구를 압도하는 일방적인 우월과 열등으로 분리되는 양극적 괴멸이 아닌, 그저 일상을 평온하고 화목하게 살아갈 수 있어야 제대로 완성되는 것일 것이다. 물론 이 세상 한살이란 것이 모두 평온하고 공평할 수만은 없다는 건 익히 잘 알지만, 심정적으로라도 오고가며 나누고자 하는 자세로 만나길 바라는 것이다.

“그림자 넘어왔어. 조심하라우!” 영화 ‘JSA’에서 북한군 역을 맡은 배우 송강호가 국군 이병헌에게 던진 한마디였다. 움찔한 이병헌은 당장 한 걸음 물러섰다. 구름만이 넘을 수 있다는 판문점 군사분계선(MDL)에서의 대화였다.
“나는 언제쯤 넘어갈 수 있을까요?” “그럼 지금 넘어가 볼까요?”
김정은은 탈북하고 문재인은 월북했다는, 세계를 놀라게 한 ‘깜짝월경’. 마치 애들이 고무줄놀이를 하듯 그 낮고도 높기만 했던 높이 5㎝, 너비 50㎝의 분단장벽을 남북의 지도자가 손을 맞잡고 발을 디디고 왔다. 판문점의 본래 이름인 ‘널문리’는, 임금이 이곳에 이르러 다리가 없어 강을 건너지 못함을 보고 마을 사람들이 판자로 된 널문을 뜯어다가 다리를 놓아 무사히 건널 수 있도록 하였다고 해서 부르게 되었다는 지명의 유래를 한자로 고쳐 정해진 이름이었다. 애당초부터 발을 디뎌 건넌 것은 나라님이었지만 판을 깐 것은 백성이었던 곳이 판문점이었던 것이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칠십여 년의 민족분단을, 오늘의 있는 그대로 상호 인정하는 것이 화합의 단초이다. 새 술을 새 부대에 담으려 않고 서로 현재의 제 틀에 끼워 맞추려고만 한다면 결국 한 쪽에서는 체제적 불만이 폭발할 수밖에 없을 것이니, 승패 없는 윈윈(Win-Win)만이 함께 승복하는 새로운 그릇이 될 것이다. 즉 물리적 조합이 아닌 화학적 융합을 이루는 것만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발전적 하나 됨이다.
물론 한 사람 한 사람의 생각은 제각기 다 다르겠지만, 우선은 가타부타를 떠나 싸움은 말리고 흥정은 붙여야 할 때인 것만은 분명하다. 동아시아 끄트머리에 있는 한반도의 동강난 남북을 넘어 21세기의 세계정세를 뒤흔드는 역사적 일대사건이기에, 미국과 중국 그리고 일본과 러시아 등은 물론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어 있는 이 땅이다.
한반도라 하여 오직 한 곬의 하나였던 듯싶겠지만, 역사적으로도 고조선, 부여, 진, 한사군, 낙랑, 옥저, 동예,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 발해, 후고구려, 후백제, 통일신라 그리고 고려와 조선에 이르기까지 길고 짧은 흔적들을 남겼던 끊이지 않는 흥망성쇠의 민족사로 이어진 땅덩어리이다. 하지만 그 수많았던 역경을 이겨내며 오늘에 이른 우리의 옥토이기에 우리는 목전에 있는 이 통일이라는 시대적 과업을 반드시 이루어야 할 민족사적 소명을 부여받고 있다. 물론 고조선이 웅거하고 있던 만주벌판이 떠오르겠지만 현실적으로 압록강과 두만강 아래의 백두에서 한라까지만이라도 제대로 점유하는 통일을 이루는 것이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반만년 역사에서 찾아볼 수 없었던 실로 중차대한 대과업이다. 소탐대실이라 했으니 자잘한 이해타산에 휘말리지 말고 대의명분을 되찾는 거대한 겨레의 웅보를 위해 양보할 것은 양보하며 하나를 이루어 진정한 ‘우리나라’를 만들어내야만 한다.

6월이라 하면 떠오르는 것은 6.25사변뿐이었는데, 이젠 마치 언제 그랬었냐는 양 완연한 화해의 무드가 물씬 풍기는 계절이 되었다. 거리로 보면 제일 가깝지만 대한민국 국민들이 못 들어가는 곳은 북한뿐이다. 심지어 오토 웜비어 사망을 계기로 미국인의 북한 여행금지령이 내려지기 전까지는 미국인들조차도 제법 많이 찾는 곳이 북한이었다. ‘가깝고도 먼’ 나라가 일본이라는데, 이는 북한을 언감생심 아예 제쳐놓았든지 딴 나라라 하기엔 그래도 피붙이라 멀다 못해 떠돈 말이었나 보다.
‘평화, 새로운 시작’이 이번 남북정상회담의 슬로건이었다. 평화도 새 것 헌 것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번의 새로운 평화 시대는 내가 만들었다며 자랑할 것이 아니라 모두에게 사랑받을 수 있는 평화로 승화시켜야 할 것이다. 그 어떤 나라도 우리민족을 위한 통일국가를 바라지 않는다. 그들의 실리와 이해관계만 따지며 온갖 완급과 강약 조절을 지루하게 지속할 것이다. 우리는 이 열강들의 틈바구니에서 사투를 계속하며, 통일을 위한 대소사를 대비하여야 할 것이다.

서울과 평양의 표준시 통일수정 실행을 필두로, 개성공단 재가동, 금강산 관광재개, 겨레말큰사전 공동편찬 재개, 개성 만월대 공동발굴 재개 등 많은 남북 공동행보가 준비되고 있지만, 민족의 실질적 생활터전을 펼칠 공간디자인에 대한 시도는 구상조차 하고 있지 않다. 대한민국 디자인은 그런대로 연습되어 있지만 북조선의 디자인에 대해서는 상상조차 안 했으니, 한반도 디자인에 대한 총체적 준비는 전무라 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어찌 보면 어영부영 제대로도 안 된 재고와 중고가 있느니, 차라리 아무 것도 없는 맨땅이 낫다. 첫 번째 점을 어디에 찍고, 첫 번째 선을 어디로 어떻게 긋느냐가 정말 중요하다. 또 허접한 상징적 조형물과 전시적 건축물들로 되돌릴 수 없는 프로젝트나 마구 남발한다면, 통일 한반도의 모습은 마치 저급하고 조잡스런 조화(造花)로 가득한 강토가 되고 만다. 화려한 꽃은 머릿속에 남지만 향기로운 꽃은 마음속에 남게 된단다. 디자인은 깜짝하고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한반도 통일 디자인의 씨앗이라도 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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