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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IORS

중추가절의 陰陽

 

저 태양을 가운데 두고 우리 지구가 도는 이상,

영원한 양(陽)도 영원한 음(陰)도 존재할 수는없다.
양(陽)에서는 음(陰)을 즐기고 음(陰)에서 음(陰)에 감사하자.
양(陽)에서는 해가 만든 그림자를 찾아 음(陰)을 잊지 말고,
음(陰)에서는 달과 별의 빛을 바라보며 양(陽)을 기다리자.

박인학│발행인

 

더없이 뜨거웠던 여름을 지내고 나니 ‘양(陽)’ 字만 보아도 정수리에서 김이 모락모락 날 것 같다. 저 ‘양(洋)’마저 끓일 듯 작렬하는 태양을 피해 음지만 찾아 헤매며 그늘 밑에서 몸을 식히던 기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전 세계 중 북반구 나라들의 기상캐스터들은 ‘기상관측 이래 최고의 폭염’과 ‘기록적 폭우’란 단어를 입에 달고 살았고, 동절기였던 남반구도 극심한 가뭄에 시달렸으며, 천지사방에서 엄청난 홍수와 태풍과 산불로 많은 피해를 본 한 해였다.
지구촌 곳곳이 폭염으로 앓고 있다. 올여름 폭염은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독일 기상청에 따르면 북위 51°에 있는 베른부르크의 기온이 39.5°까지 치솟았다. 북극에 가까운 스웨덴도 7월 평균기온이 260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고, 7월 27일에는 34.6°까지 올라 올해 최고기온을 새로 썼다. 일본도 7월 23일 구마가야시의 온도가 41.1°를 기록하며 일본 관측사상 최고기록을 경신했고, 아프리카 사하라사막에 있는 알제리 기상관측소에서는 51.3°라는 수치가 관측되어 아프리카 역대 최고기온을 기록했다.
폭염은 올해가 끝이 아니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상 변화가 앞으로도 이어질 것이라는 이유에서이다. 폭염은 최근 몇 년 새 누구도 벗어날 수 없는 세계적인 현상으로 자리 잡고 있다. 아르헨티나에서는 2017년 1월 27일 43.4°를 기록하여 역대 남반구 기온 중 최고치를 기록했으며, 북반구인 파키스탄에서는 올해 5월 28일에 53.5°까지 치솟아 전 세계 최고기온을 나타냈다.
미국 CNN은 이 같은 지구온난화가 계속해서 진행된다면 약 50년 뒤에는 건강한 사람도 6시간 이상 생존할 수 없는 ‘살인더위’가 찾아온다는 미국 매사추세츠공대 연구팀의 논문을 보도했다. 특히 오는 2070년까지 중국 화베이(華北) 일대 등 북부 평원지대는 사람이 살 수 없을 만큼 심각한 혹서에 시달릴 것으로 내다봤다.
저 커다란 양(陽), 태양이 무섭게만 느껴진다.

‘양(陽)’은 고맙게만 생각되는 존재였다. 우리 인간과 동식물 모두에게 온난한 열과 밝은 빛을 주며 생명을 지속하게 해주는 원천이었다. 그러나 ‘명(明)’은 찬란한 햇살을 가진 ‘日’과 ‘日’의 합자가 아닌, ‘日’과 ‘月’ 즉 눈부신 해(日光)와 은은한 달(月陰)의 이원적 조합이다. 더욱이 ‘日’의 상형(象形)은 둥근 해의 모양이나, 月은 보름달도 아닌 초승달의 형상으로 지긋한 어둠을 상징하고 있다. 즉 이 세상의 빛은 청명과 음습의 윤회에 의한 양(陽)과 음(陰)의 조화인 것이다. 특히 ‘양(陽)’과 ‘음(陰)’이 공히 좌변에 가진 것은 ‘언덕 부(阝=阜)’인데, 이는 결코 높은 바위산이 아닌 나지막한 흙언덕으로 물이 흐르듯 명(明)과 암(暗)이 이어짐을 의미하고 있다.
우리는 양(陽)을 태양, 이승, 춘하, 남성, 그리고 음(陰)을 달, 저승, 추동, 여성으로 여기며 마치 양(陽)이 음(陰)보다 우월한 듯 말하지만, 밤이 없는 백야만의 하늘, 죽음이 없는 영생만의 인생, 중지가 없는 성장만의 계절, 할머니도 어머니도 여동생도 사랑하는 내 연인도 없는 인생살이를 떠올려 본다면 얼마나 참담한지 금세 상상이 될 것이다. 더욱이 이 험난한 세상살이를 살아가며 우리가 더없이 필요한 것은, ‘月’ 두 개가 나란히 있어 그윽한 ‘벗 붕(朋)’일 게다.

우리 공간디자이너들은 양(陽)과 음(陰)이란 자(字)만 보면 어쩔 수 없이 음양오행(陰陽五行)부터 떠올리며, 특히 중국에서의 공간디자이너들을 좌지우지하는 속칭 풍수도사들의 전횡은 정녕 상상을 초월할 지경이다.
음양오행에서 木, 火, 土, 金, 水가 만나 생기는 결론은 대략 상생(相生)과 상극(相剋)으로 양분된다. 이 중, 木은 火를 생(生)하게 한다지만 아궁이 불에 나무를 너무 많이 넣으면 꺼지고 말며, 木은 土를 극(剋)하게 한다지만 그 뿌리가 썩어야 비옥한 옥토를 만든다.
길흉화복(吉凶禍福)이 인생사라 하는데, 길과 복만 있으면 즐거움도 느끼지 못할 것이고 흉과 화를 겪어야 작은 기쁨에도 감사할 수 있을 것이다. 또 모든 종교의 창세론을 보아도 태초는 흑암이었고, 인간 태생의 산실인 자궁도 칠흑이었듯이, 시초는 암음이었다는 지극히 평범한 진리를 깨우쳐야 할 것이다. 즉 양(陽)만이 좋은 것이고 음(陰)은 나쁜 것이다 하더라도 나쁜 것 없이 좋은 것만 있다면 좋다는 것의 상대적 가치는 소멸되고 말 것이다. 옥석혼효(玉石混淆)라며 옥과 돌이 섞여있어 아쉽다지만, 만일 세상천지에 널린 것이 옥이라면 옥의 가치는 없을 것이다. 자연을 보면 산이 높다는 것은 골이 깊다는 것이고, 인간을 보면 시장이 반찬인 것과 같은 이치라 할 것이다.

내일도 ‘日’과 ‘月’의 ‘陽’과 ‘陰’이 함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양기(陽氣)이든 음기(陰氣)이든 기(氣)의 힘은 흐름으로부터 나오는 것이기에, 어느 하나만 있다면 결코 살아 움직여야 하는 생(生)의 가치는 소멸하고 말 것이다. 산수의 내적 외적 기운이나 형세쯤을 훨씬 뛰어넘어, 음지도 양지가 되고 양지도 음지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 그 무엇보다 확실한 실례가 아니겠는가? 저 태양을 가운데 두고 우리 지구가 도는 이상, 영원한 양(陽)도 영원한 음(陰)도 존재할 수는 없다. 양(陽)에서는 음(陰)을 즐기고 음(陰)에서 음(陰)에 감사하자. 양(陽)에서는 해가 만든 그림자를 찾아 음(陰)을 잊지 말고, 음(陰)에서는 달과 별의 빛을 바라보며 양(陽)을 기다리자. 그리 길지는 않더라.
기능적으로 잘못된 디자인은 있지만 그저 나쁘다 말할 수 있는 디자인은 없다. 단지 사용자의 취향이나 감각에 따른 호(好)와 불호(不好)의 기호가 있는 것처럼, 양(陽)도 음(陰)도 때와 장소의 상황에 따라 적절하게 조화되어야 한다. 인공조명이 생겼으니 양(陽)의 가치는 사라졌다는 억설을 늘어놓진 않겠지만, 구태적인 음양의 양극적 지론만 늘어놓는 궤변들은 이제 더 이상 이어져선 안 되겠다.

“직선은 인간의 것이고, 곡선은 신의 것이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작품만도 7개나 되는 스페인의 건축가 가우디(Antoni Gaudi)의 말이다.
무엇이든 선만 내려 그어 양분하려고만 드는 인간의 속성 때문에 많은 것들이 묻히고 있다. 결코 만날 수 없는 직선에 비해, 곡선은 언제든 만나게 되는 것이다. 만사에 너무 시시비비만 가리려 말고, 넌지시 주고받으며 살아가자.
입추도 처서도 다 지나, 이제 중추가절(仲秋佳節)이라는 추석이란다. 이제껏 그랬듯이, 가을도 올 게고 겨울도 분명히 올 것이다. 양(陽)이 지나 음(陰)이 왔고, 양(陽)이 지나면 음(陰)이 오듯이.
與子相遇來 未嘗異悲悅 憩蔭若暫乖 止日終不別, 여자상우래 미상이비열 게음약잠괴 지일종불별.
그대와 우연히 서로 만나 슬픔과 기쁨을 함께 겪었네.
그늘에서 쉴 때는 잠시 떨어지나 햇볕에 나서면 끝까지 함께 있네.
도연명(陶淵明)이 쓴 ≪影答形 그림자가 몸에게≫ 中에서.
내 그림자만큼 내게서 떨어지지 않는 벗(朋)은 없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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