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cle

INTERIORS

시월의 가을밤에 十을 이야기하다

十月이 아무리 더없이 좋은 계절이라 해도 실은 춘하추동 열두 달 중 더 아름다운 달도 없고 덜 아름다운 달도 없다.
또 행복이란 만사에 감사하는 마음으로부터 비롯되니,
평생을 살며 아등바등 10을 가득 채우기만 바라며 살지 말고 십중팔구라 하니 예닐곱만 이뤄도 충분한 성공이라 여기자.
과반 이상을 성취했다면 오늘 내가 이룬 현실에 감사하자.
성공에 대한 가치는 열이 아니라, 그때까지 이르는 과정과 자세이다.









박인학│발행인


천고마비(天高馬肥), 아름다운 풍요의 계절 가을이다. 뜨거운 여름에 밀려, 갈수록 짧아만 가는 가을이기에, 하루 낮 하루의 밤이 못내 아쉽기만 한 절기이다. 특히 그중 음력 10월을 예로부터 특별히 ‘양월(良月)’이라며, 일 년 농사가 마무리되고 햇곡식과 햇과일을 수확하여 하늘과 조상님께 감사의 예를 올리는, 열두 달 가운데 으뜸가는 상서로운 달이라 여겨 왔다. 바다 건너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신대륙으로 이주한 청교도들이 추수를 마치고 감사하며 올리기 시작한 미국의 추수감사절(Thanksgiving Day)도 11월 넷째 주 목요일이라니, 얼추 우리네와 비슷한 즈음인 듯하다. 여하튼 농경 위주의 사회였던 당시로서는 88(八+十+八)번 손길이 닿아야 쌀(米) 한 톨을 얻는다는 한 해 농사일을 마친 양민들의 축제이자 부족한 이웃들과 소산을 함께 나누던 미풍양속이었다.

그러고 보니, 우리의 디자인도 족히 88번 넘게 이것저것을 생각하고 처결해야 하는 다사다난한 수순의 작업이다. 땅을 갈아엎어 논을 가다듬고, 새로 뿌릴 씨앗을 곡진히 준비하고, 귀한 싹을 키워 온 정성을 다해 모내기를 하고, 비바람과 해를 살펴가며 거름도 주며 잡초도 뽑아주고, 벼가 여물면 추수하고 탈곡하고 정미하기까지, 일 년 농사와 엇비슷한 낱낱의 순서는 있다지만 실은 결코 미리 예정할 수 없는 나날들을 살아가고 있다. 여하튼 흥하든 망하든 그 과정에 대한 결과가 가시적으로 확실하게 나타나는 10월이 있다는 것은, 땅을 파먹고 사는 농부나 땅위에 집을 짓고 사는 디자이너나 거스를 수 없는 동병상련의 팔자소관이다.

10월이다. 그리고 사람이 가진 두 손의 손가락을 합한 것도, 발가락의 개수도 10개이다. 원래 고대인들은 새끼줄을 묶는 방법으로 숫자를 기록했는데 그 중 가장 큰 것이 ‘十’이었단다. 그래서 ‘十’을 모든 것의 최고라 여겼기에, 충분하다는 ‘十分’ 등 ‘十’이 들어간 단어가 많을 뿐 아니라 고사성어들에도 많이 등장한다.
십벌지목(十伐之木), 어떤 어려운 일이라도 끊임없이 노력하면 기어이 이루어낸다.
노마십가(駑馬十駕), 재능이 모자란 사람도 열심히 하면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다.
권불십년(權不十年), 권세는 오래가지 못하고 늘 변한다.
십인수지부득찰일적(十人守之不得察一賊), 열사람이 한 사람의 도적을 못 살핀다.
십목소시(十目所視), 세상 사람을 다 속일 수는 없다.
십보방초(十步芳草), 세상에는 훌륭한 사람이나 뛰어난 인재가 많다. 그 외에도, 십시일반(十匙一飯), 십년지기(十年知己), 십중팔구(十中八九), 십인십색(十人十色), 십년감수(十年減壽) 등 하나같이 ‘十’을 최고와 최상 또는 최저나 최악의 한계로 여기는 구절들이 족히 수십 개를 넘는다.

‘十’은 결코 ‘1만 만(萬)’도 ‘가득 찰 만(滿)’도 아닐 뿐더러, ‘11’도 있고 ‘9’도 있다. 즉 ‘十’이라는 땅은 목적지가 아니라 단지 많은 숫자 중의 한 때이며 한 곳일 뿐이기에, 다다르면 마음의 평정만 사라질 수도 있어 차라리 영원히 갈망하는 신기루 같은 미지로 존속하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十은 방위표의 쓰임새처럼, 먼저 동서남북에 점을 찍어놓은 후, 집터를 잡고, 집을 앉히고, 방을 정하고, 창 하나를 뚫는 위치까지 택하는 공간디자인을 하는 데 필요한 하나의 기점과 같다. 또한 북동, 동남, 남서, 북서 등 그 사이와 사이에서 사방천지를 향해 산재하는 무수한 향(向)들 각각의 가치도 존중하고, 위도 섬기고 아래도 돌볼 줄 아는 도량 넓은 성품의 소유자이다. 하지만 정치, 경제는 물론 이제는 문화, 예술까지의 모든 분야에서 최고와 최상 지상주의가 판치는 게 작금의 현실이다. 소수의 엘리트들이 사회의 높은 계층으로서 대중의 의견은 묵살한 채 권력을 독점하고 지배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엘리트주의(Elitism)부터 심지어는 외모가 개인 간의 우열과 성패를 가름한다고 믿고 뜯어고치며 집착하는 외모지상주의(Lookism)까지, 현대인의 겉과 속 모두가 상대적 우월만을 추종하고 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는 ‘十 百 千 萬 億’은 고사하고 ‘最’도 뛰어넘어 ‘첨단’이란 단어가 독주하는 시대가 되었다.
그런데 그 ‘첨단’이란 무엇인가? 첨단(尖端)이란 영어로는 ‘cutting edge’, 말 그대로 ‘물체의 뾰족한 끝’이란 뜻으로 ‘시대의 사조나 학문 또는 유행의 선두’를 말한다. 하지만 ‘첨(尖)’이란 글자만 풀어보면, ‘小’와 ‘大’가 위아래로 놓여 끄트머리인 가지는 뾰족하나 그 밑바탕인 뿌리는 굵직한 한 그루 나무와 같다는 깊은 뜻을 내포하고 있다. 하지만 ‘十’에만 급급한 사람들은 그 아래의 뿌리는 보지 못 하고 겉으로 드러난 가지 끝에서 잠시 피었다 지는 꽃만을 탐닉하고 있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 할진데, 화려해 보이는 꽃과 무성한 잎에만 눈길을 두지 말고 흙 속에 묻혀 있는 뿌리에 거름을 주는 게, 진정한 첨단을 위한 선봉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이 시대 최첨단 네트워크인 인터넷업계의 산증인으로서 아마존의 최고기술책임자와 노키아의 기술고문을 역임한 안드레아스 베이겐트(Andreas Weigend) 박사가 세계지식포럼(World Knowledge Forum)의 기조연설에서 “e-비즈니스에서 출발한 인터넷 비즈니스가, me-비즈니스를 거쳐, we-비즈니스로 발전해 가고 있다.”고 말한 것은 매우 의미심장했다. 첨단 기술과학 발전의 과정과 목표도 인간에 의해 만들어지며 결국은 인류를 위한 것이라는 매우 평범한 논리였다.

노자(老子)는 스승의 병이 깊어지자 마지막 가르침을 청했다. 그러자 스승은 자신의 입을 벌려 노자에게 보여주며 물었다.
“내 혀가 있느냐?” “있습니다.” “그럼, 내 이빨은 있느냐?” “스승님의 치아는 남아 있지 않습니다.” “이는 다 빠지고 혀는 남아 있는 이유를 아느냐?” “이는 단단하기 때문에 빠져 버리고, 혀는 부드러운 덕분에 남아 있는 것 아닙니까?” “그렇다. 물방울이 바위를 뚫듯이 부드러움이 단단함을 이긴다는 천하만사의 이치이고, 세상 사는 지혜의 전부이다. 이제 더 이상 너에게 줄 가르침이 없구나….”
이에 훗날 노자는 “최고의 선(善)은 물과 같다.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하는 데 뛰어나지만 다투지 않고, 모든 사람이 싫어하는 곳에 머문다. 그러므로 도(道)에 가깝다.”고 하였단다.

十은 물과 같아, 十月이 아무리 더없이 좋은 계절이라 해도 실은 춘하추동 열두 달 중 더 아름다운 달도 없고 덜 아름다운 달도 없다. 또 행복이란 감사하는 마음으로부터 비롯되니, 평생을 살며 아등바등 10을 채우기만 바라지 말고 십중팔구라 하니 예닐곱만 이뤄도 성공이라 여기자. 과반 이상을 성취했다면 오늘 내가 이룬 현실에 감사하자. 성공에 대한 가치는 열이 아니라, 그때까지 이르는 과정과 자세이다. 행복은 욕심이란 잡초를 땀 흘려 뽑아가며 한 해를 묵묵히 살아온 농군의 주름진 얼굴이고, 우리의 디자인을 보며 웃는 이를 바라보는 디자이너의 지친 미소이다.



■ 기사 더보기

MY MEN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