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cle

INTERIORS

무심코 인생

없음

우리는 너무 ‘무심(無心)코’ 살아왔다.

무심코 생각했고, 무심코 일했고, 무심코 미워하고 화를 냈고,

무심코 담배를 피우며 술을 마셨고, 사랑마저도 무심코 한 듯하다.

무심하지 말자. 생각을 디자인해 보자. 자유롭게!








박인학│발행인


네이버의 한성숙 대표는 ‘네이버 커넥트 2019’ 행사에서 “네이버 모바일 메인 화면 상단에 배열된 7개 기사를 편집 배열하는 일은 더 이상 하지 않겠습니다.”라고 했다. 이제까지 모바일에서 네이버를 열며 좋든 싫든 ‘이것이 오늘의 이슈로구나’하며 받아들여야 했던 이용자들은 앞으로 가운데 텅 빈 녹색 네모상자 하나만 만나게 된다는 것이다. 다만 이번 개편은 모바일 앱에 한하기에 PC에서는 현재와 달라지지 않지만, 우리의 손에 항상 들려 있는 모바일에서의 변화는 적지 않은 개인적, 더 나아가 사회적 변혁을 낳을 것이다. 즉 눈에 의한 SEARCH가 아닌, 최소한 머리로 하는 RESEARCH를 필요로 하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그러나 어찌 보면 자유가 주어졌지만, 이 자율적 자유에 익숙하지 못한 우리들은 오늘 보고자 하는 세상이 과연 무엇인지에 대한 짧지만 깊은 번민에 휩싸이게 될 지도 모르겠다.


“건축처럼 풍경을 만들고, 풍경처럼 공간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Freeing Architecture’를 주창하는 일본 차세대 건축의 선두주자 이시가미 준야(石上純也)는 “나는 건축을 보다 자유롭게 생각하기를 원합니다.”고 말한다. 그의 작업들을 들여다보면 그 자유가 의미하는 것이 무엇이지를 알 수 있겠지만, 그 자유는 결코 방종이 아닌 자신의 내적 구속에 의한 외적 창출임을 느끼게 된다. 고용관계를 맺지 아니하고 독자적으로 활동하며 돈을 벌어 생활하는 경우도 많기에, 우리 디자이너들은 소위 자유직업자라 지칭되기도 한다. 물론 좀 더 많은 자유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이 업종에 들어선 자가 많은 것도 사실이나, 그들의 고심과 번민 역시도 바로 이 자유 때문임은 하루에도 수없이 실감하며 살고 있을 것이다. ‘정답이 없는 것이 디자인’이라는 그 뜻을 알 수 없는 아리송한 가설 때문에, 우리는 그 자유라는 바다 내지는 늪 속을 오늘도 헤매고 있다.


타인이나 외부적인 구속에 얽매이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행동하고 사고하는 것을 자유라 한다. 하지만 구속이란 제한이나 속박과 억압만이 아닌 긍정적인 관심 더 나아가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애정의 표현인 경우도 적지 않다. 비난과 증오보다 무서운 게 무관심이라고, 우리 디자이너는 홀로 방치된 독존을 원하는 게 결코 아니다. 자유란 이기(利己)나 자족(自足)이 아니라, 어찌 보면 무아(無我)의 마음가짐으로 이타(利他)를 희구하며 공생(共生)을 감내하는 자에게만 주어지는 특권이다. 즉 자기자신을 절제하는 자만이 영위할 수 있는 불꽃놀이의 섬광 같은 폭발이다.


대학입시에서 전공을 정하지 않고 입학한 후 일정한 시점에 원하는 학과를 선택하는 것을 자유전공이라 한다. 아직 세상도 모르고 전공에 대한 식견도 없는 학생들이 대학생활을 해가며 적성을 찾고 전공을 선택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지만 전공이 없기 때문에 뚜렷한 목적의식 없이 시간을 허비하는 경우도 있는 제도이다. 하지만 대개 대학의 입시 때마다 최고경쟁률을 기록하는 것을 보면, ‘자유’라는 단어의 힘은 역시 대단한 듯하다.

또한 어떤 독재를 자행하는 국가라 해도 자유를 부정하는 나라는 없다. 어느 독재자라 해도 최소한 입으로는 국민의 자유를 외치며 전횡을 일삼는다. 그러나 자유는 입과 귀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기에, 몸과 맘으로 느끼지 못할 때에는 민중 스스로가 생명을 바쳐 자유를 쟁취하는 투쟁을 하게 된다.

현대사회에서 자유에 대해 혼돈에 빠지게 하는 것은 바로 미디어이다. 마치 세상 모든 것을 다 담아 놓고 원하는 대로 내주는 듯하지만, 그들의 검은 속내에 있는 탐심과 욕망은 우리 대중을 제멋대로 흔들어 놓았다. 부드럽게는 유행, 경향, 사조란 단어로 포장해 놓았지만, 그 속내를 머리기사에 올리거나 사설에 깔아놓는 신문, 뉴스앵커의 멘트나 개그맨의 우스개소리에 끼어 담는 TV, 심지어는 미약해진 잡지마저도 글자의 색을 달리하고 폰트를 키워가며 우리의 뇌와 심장은 물론 머리끝부터 발끝까지를 좌지우지하고 있는 것이 실상이다. 더욱이 속칭 뉴미디어라 일컬어지는 매체들은 상하 전후 좌우도 없이 우리의 일상생활 속을 휘저어대고 있다.

이제 현대의 자유는 외적 탄압보다 자신의 내적 강박에 의해 유린당하고 수탈당하고 있다. 몸뚱이는 천지사방을 돌아다니고 있는지 몰라도, 우리의 정신은 언제부턴가 책상 위 모니터와 손바닥 안에 있는 직사각형 스크린에 갇혀 스스로의 사고를 구금시킨 영역을 온 세상이라 여기며 기거하고 있다. 과연 내 모바일에 덩그러니 검색창 하나만 뜨는 그 날, 첫 번째로 두들겨 넣을 단어가 무엇인지 모르겠다.


“짐이 곧 국가다!”라는 서구에 비해 그래도 우리는 ‘민심이 곧 천심’이란 말을 입에서 입으로 세세히 전하며 살아온 민족이다. 상명하복(上命下服)과 상의하달(上意下達)이 사회생활을 잘 하는 처세술이라 여겨지기도 했지만, 그 누구보다 자유를 숭상한 민족이었다. 그래서 수 천년동안 써 왔던 한자를 저버리고 우리만의 글인 한글을 만들었고, 온갖 침략을 당하면서도 내 나라를 지키려 온갖 고초를 이겨냈으며, 아직도 자유를 찾아 생명을 걸고 탈북을 감행하는 뿌리 깊은 본성을 가진 한민족이다. 주어지는 자유가 아닌 쟁취하는 것이 진정한 자유라는 것을 몸소 실천해 온 우리였다.


이번 네이버의 고강도 다이어트는 스스로 검색할 단어를 정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이들에게는 그저 공복으로 인한 허기만을 느끼게 할 것이다. 하지만 이 공백에 무엇을 담느냐는 우리 삶의 하루를 바꾸고 더 나아가 일생을 바꿀지도 모른다. 미국의 초대대통령 조지 워싱턴은 말했다. “자유는 싹이 트기만 하면 성장이 빠른 나무이다.” 하나씩 둘씩 생각이란 싹을 피워가며, 나만의 생각을 재생해 보자.


“지난해 행사가 삼성은 ‘데이터’ 회사라고 선언한 자리였다면, 올해는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AI’로 무엇을 할 것인지를 모색하는 자리입니다. 삼성전자는 AI의 기반이 되는 반도체 영역의 1등 기업이기에, 세상을 재구성할 수 있는 인공지능을 만들 힘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더 나은 세상을 인공지능과 함께’라는 주제로 지난 10월 11일 열린 ‘삼성 CEO 서밋’에서 손영권 삼성전자 사장이 한 말이다.

이렇듯 이미 도래한 4차산업혁명의 시대를 살아야 하는 우리 인간들이 저 인공지능을 이길 방법은 오직 자유로운 생각의 창출이다. 또 “하나의 기억과 다른 한 가지 이상의 기억을 조합하면 거기에서 생기는 상상력에 의하여 자기 나름의 새로운 창조가 생긴다.”는 말을 되새기며, 우리는 어제를 되돌아보고 내일을 내다보며 나만의 생각을 낳아야 한다.

그래, 우리는 너무 ‘무심(無心)코’ 살아왔다. 무심코 생각했고, 무심코 일했고, 무심코 미워하고 화를 냈고, 무심코 담배를 피우며 술을 마셨고, 사랑마저도 무심코 한 듯하다. 사전에는 무심(無心)과 비슷한 말이 삼매(三昧)라 나와 있지만, 삼매경은 아무 생각이 없는 게 아니라 잡념을 떠나서 오직 하나의 대상에만 정신을 집중하는 경지를 이르는 말이다.

무심하지 말자. 생각을 디자인해 보자. 자유롭게!



■ 기사 더보기

MY MEN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