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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월의 13월 1일

없음

기억이란 무엇이고 망각이란 무엇일까? 

기억이 남아있는 것이라지만,

있는 사실 그대로의 실상이 아닌

자위적 사고와 심하게는 작위적 가치관이 가미된 허상일지도 모른다.

또 망각은 잊는 것이지 잃는 것이 아니다.

쌓는 것이고 묻는 것이며 더 나아가 영원히 간직하려는

일상에서의 일탈이라 할 수 있다.

박인학│발행인


또, 그렇게 한 해가 훌쩍 흘러간다. 무술년(戊戌年) 새해라 떠들던 게 엊그제 같고 뜨거웠던 여름이 지난 지도 불과 얼마 전 같은데, 찬바람 며칠 부나 싶더니 연말이란다.

몇몇 날은 눈을 뜨기도 두려울 만큼 순간순간이 악몽 같았고 그래도 며칠은 그나마 입가에 웃음기가 돌았던 것 같다. 일분일초가 버거워 다시 기억조차 하기 싫던 날, 내일로 가려고 저무는 달이 야속할 만큼 좋았던 날, 그리고 숨만 쉬며 무상하게 지냈던 날들로 점철된 365일, 말 그대로 일희일비의 한 해였다. 이제껏도 그랬듯이…


‘송구영신(送旧迎新)’이란 넉 字는, 언제부턴지 그저 연하장 그림의 한 구석에 놓인 문양 정도로만 여겨지곤 했다. 지나간 낡은 것들은 보내버리고 도통 알지도 못할 새로운 것만 좋다며 신년을 맞아 보겠다지만, 과연 그 새 것들이 좋기만 할지는 그 누구도 모를 것이다. 또 아무리 보내겠다고 해봐야 결코 우리의 기억들을 지울 수 없는 것은, 동식물을 막론하고 생명을 가진 모든 피조물들에게 주어진 하늘의 섭리이다. 즉 기억이란 절대로 사라져 버릴 수 없는 역사의 기록이며 문화의 유산이고 한 인생으로서는 한 권의 전기(傳記)요 한 장의 자화상이다.

어쩌면 우리는 나 자신 그리고 가족과 이웃, 더 나아가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기억을 남기려고 한 생애를 사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한 해 아니 단 하루라도 빨리 남들보다 좀 더 큰 족적을 남기려 발버둥을 치며 자신에게 채찍질을 가하고 있다. 미국의 작곡가 제임스 하워드 뉴튼(James Howard Newton)은 말했다. “사람들은 당신이 그 일을 얼마나 빨리 했는가는 잊어도, 얼마나 잘했는지는 기억한다.” 또 중국속담에는 “멈추지 않는 이상, 천천히 가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말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매일매일을 헉헉거리며 시간 속을 내처 달리기만 한다.


기억은 우리가 가진 유일무이의 영원무궁한 재산이다.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재물도 한순간에 사라질 수 있지만, 기억만은 그 누구도 빼앗아 갈 수 없는 귀중한 고유의 자산이다. 우리의 새로운 미래는 과거로부터 기인한다. “상상력이란 기억이고, 기억을 조합하는 것이 상상력이다.” 37년간의 망명생활을 하며 고향을 대상으로 작품을 집필했던 아일랜드의 작가 제임스 조이스(James Joyce)의 말이다. 요즘 세상에서 제일로 내세우는 창의도 오직 기억이란 뿌리로부터 피어나는 열매인 것이다.

지난 한 해만을 돌이켜 봐도, 잊고 싶은 기억도 있고 영원히 간직하고 싶은 기억도 있을 것이다. 기쁜 기억과 슬픈 기억, 좋은 기억과 나쁜 기억도 있겠지만, 이 모두가 뒤섞인 게 바로 나 자신이다. 무의미한 기억이 있을지는 몰라도 무가치한 기억은 없다. 제 아무리 큰 고난과 고통이 있었다 해도 더 큰 고진감래(苦盡甘來)의 시발일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아픈 기억을 두려워하는 것은 그것이 과거에서 끝나지 않고 다가올 미래에서 다시 나타날까 하는 심려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걱정의 30%는 이미 지나간 것들일 뿐이며, 40%는 절대 일어나지 않을 것들이고, 22%는 사소한 것들이며, 4%만이 우리에게 닥치게 될 걱정들이란 통계가 있다. 즉 이 재발될 4%만이 우리가 대처해야 하는 진짜 사건이고, 96%의 걱정거리는 쓸데없는 기우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걱정이 팔자’란 말이 있다. 걱정의 근본은 뭔가를 가진 자만 겪고 당하는 의무이자 권리이다. 모르면 무난할 텐데 유식하니 근심하고, 가진 게 없으면 무탈할 텐데 부유하니 불안하고, 심지어 약하면 무사할 텐데 건강하니 설쳐대다 사고를 당한다. 그래서 마음이 안빈(安貧)하고 태도가 청빈(請賓)해야 진정한 낙(樂)을 누리게 되는가 보다. 결국 즐거움을 얻는 비결은 바로 망각이기에, 기억과 망각이 양(陽)과 음(陰)처럼 조화되어 무(無)가 될 때에 비로소 마음의 평정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디자인이란 경험으로 얻은 기억 속의 노하우(Know-how)들을 갈고 다듬어 나름의 자기 발상을 펼치는 과정이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새로운 창조를 위해 구태적인 것들을 스스로 걷어내는 정리작업 즉 망각이다. 어찌 보면 상상 속에서 이뤄지는 기억과 망각의 상쇄관계에 의한 완성이라 할 수 있다. 어렵고 힘들고 실패했던 기억들이 더 가치 있는 디자인을 완성하는 경우를 우리 디자이너들은 여러 번 절감했을 것이다. 왜냐 하면 실패는 과거 속에 있으나 성공은 미래에 있기 때문이다. 즉 창의를 위한 동기는 결핍인 것이다.


사람들은 좀 더 많은 것을 기억하려 하며 이를 경륜 또는 소양이라 여긴다. 하지만 유한(有限)할 수밖에 없는 것이 인간이기에, 가진 것을 덜어내야 새 것을 더할 수 있다. 과거의 망각에 의해 미래의 상상을 담을 수 있도록, 사고라는 빈 그릇을 만들어 놓아야 한다. 인간에게 망각이 없다면 우리는 실패와 고통과 비애에 대한 기억 때문에 성공과 환희와 쾌락도 못 느끼고 깊은 수렁 속에서 살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픈 기억이 있었기에 기쁨을 느끼는 것도 당연한 이치이다.

서양철학에서는 플라톤의 상기론(想起論)을 근본으로 한 ‘기억’에 초점을 맞추었지만, 동양사상은 장자(莊子)의 생각을 빌어 ‘망각은 새로운 능력을 발견하는 긍정적 원천’이라 여겼다. 망각이라는 개념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수동적 잊어버림이 아니라, 오히려 기억을 초월하고 벗어나려는 적극적이고 창의적인 행동이란 논리이다.


현대는 정보과잉의 시대이다. 내가 직접 경험하지 않더라도 너무나 많은 정보와 지식들이 쏟아져 들어오기에 자아의 독창성은 점점 상실되고 있다. 언뜻 보면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신문명이 나타나는 것 같지만, 실상은 조금 상향평준화된 정도의 대동소이한 유사문화의 내적 외적 변모만이 반복되고 있다. 심지어는 내 기억들이 나 스스로 직접 체험한 것인지 아니면 보고 들은 것인지조차 모를 지경에 이른 것이 오늘날의 실태이다.

가는 사람 붙들지 않고 오는 사람도 물리치지도 않겠다는 마음으로, 기억과 망각을 주거니 받거니 하며 살아가자. 지난 한 해를 살며 얻은 이해, 득실, 공과, 성패 모두를 귀히 여기고 다가올 해의 길흉화복도 묵묵히 받아들이며 살아가보자. 일이 안 풀리면 잘 될 거라 믿고, 일이 잘 되거든 도리어 조심하자.


기억이란 무엇이고 망각이란 무엇일까? 기억이 남아있는 것이라지만, 있는 사실 그대로의 실상이 아닌 자위적 사고와 심하게는 작위적 가치관이 가미된 허상일지도 모른다. 또 망각은 잊는 것이지 잃는 것이 아니다. 쌓는 것이고 묻는 것이며 더 나아가 영원히 간직하려는 일상에서의 일탈이라 할 수 있다.

올해의 마지막 달의 시간들에는, 기억을 귀히 품고 망각을 중히 여기고 상상을 한껏 펼치자.

그래야만 다가오는 새해의 첫 날이, 2018월의 13월 1일이 아닌 2019년의 1월 1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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