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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IORS

막다른 길과 갈림길

없음

단념의 순간은

막다른 길이 아니라 갈림길이다.

결심은 어제한 것이었고

단념은 오늘이 아닌

내일이나 모레도 할 수 있는 것이니,

오늘 하루쯤 더 무념무상으로 묵상해보는 것도

그리 나쁘진 않을 것 같다.

박인학│발행인



작심삼일(作心三日)이란 말은 예로부터 내려왔고, 새해에 들어선 지도 이미 한 달여가 지났으니 이미 단념한 일이 적지 않을 듯하다. 그중에는 벌써 까마득히 잊은 일도 있을 테고, 아직도 안타까운 아쉬움을 품고 있는 몇몇의 일도 있을 게다. 더욱이 중도에 단념한다는 것은 처음에 작심하는 것보다는 어려울지도 모르며, 어쩌면 명분을 만들기 위한 다소 비굴한 자기합리화의 연유도 필요로 했을 것이다. 하지만 가지 않을 길이라면 빨리 잊고 돌아서는 굳은 용단도, 긴 인생을 걸어가야 하는 자로서는 어쩔 수 없이 겪어내야 할 과정이다.


하던 일을 포기하면 중단이라 말한다. 그런데 ‘중(中)’이란 시발점과 종착점 사이의 모두를 이르는 글자이니, 끝에 이르지 못한다면 어느 지점이든 전 과정 중의 일순간임은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단(斷)’은 언젠가 다시 이을 수 있다는 속뜻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게 숨겨져 있다. 물론 중단을 하고 나면, 막연한 미련도 있을 테고 애처로운 갈망도 있으며 불가한 줄 알면서도 희구하는 염원도 남아있을 게다. 그러나 세상만사라는 것이 초지일관하기만은 불가능하니 얼마나 취사선택을 잘 해 단념하느냐가 더 현명한 행보라 할 수도 있을 듯싶다. 중단이 항상 실패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전화위복(轉禍爲福)’이란 말이 있는 것을 보니, 도리어 어려움을 통해 더 나은 결과를 낳는 경우도 간간이 있다. 문제는 어떻게 ‘전(轉)’을 하게 되었느냐가 중요한 관건이다. 남에게 패배 당해 닥친 화(禍)가 아닌 진정한 나를 위해 자발적으로 결심한 화가 바로 단념이다. 즉 졸지에 상대에게 당한 것이 아니라 심사숙고 끝에 자구책 내지는 차선책을 준비한 자만이 재기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단념을 고심할 때에는 목전에 닥친 어려운 상황만을 보지 말고 계획할 당시의 초심을 되돌아보며 결정해야 한다. 단념이 회피가 되어서는 안 되며, 기약마저 없는 단념은 현실 도피에 불과하다. 현재의 내 발은 가시덤불 속에 있고 사방을 둘러봐도 사면초가(四面楚歌)이며 앞을 내다봐도 악전고투의 험로만 보이겠지만, 초연한 마음가짐으로 성취의 순간을 상상해 보자. 아무리 힘겨워도 할 것이라면 해내야 한다. 나 자신을 맑은 거울 앞에 세워 직시해 보자. 단념할 것은 단념하고, 단념하지 않을 것은 단념하지 말고, 단념을 했다면 깨끗이 잊어야 하겠지만, 그 단념이 긴 호흡을 가다듬은 후의 또 다른 시작이어야 한다는 것만은 절대 잊지 말자. 단념의 순간은 막다른 길이 아니라 갈림길이다. 물 한 모금을 꿀꺽 마시고 눈을 살며시 감고 나를 보자. 결심은 어제한 것이었고 단념은 오늘이 아닌 내일이나 모레도 할 수 있는 것이니, 오늘 하루쯤 더 무념무상으로 묵상해보는 것도 그리 나쁘진 않을 것 같다.


디자인도 어찌 보면 단념하는 마음가짐과 행동거지부터가 시작이고 끝이다. 디자이너로서의 첫 번째 단념은 온갖 아이디어를 들고 온 클라이언트와 마주 하며 겪게 되는 감성적 단념이며, 두 번째는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사용자들의 유행추구에 의한 지성적 단념이고, 세 번째는 사회 환경이나 정책 제도 등의 제반 여건들에 의한 이성적 단념이다. 디자인은 공간을 맡기는 클라이언트의 욕구와 이 공간에 발을 들여놓게 될 많은 사용자의 요구와 사회 전반적으로 추구하는 시대적 추세 그리고 프로젝트를 맡을 디자이너의 자아관을 융합하는 공동의 소통 작업이다. 물론 디자이너의 명성 등에 따른 차이는 있다지만, 대개의 디자이너들은 최소한 네 가지 항목 중 세 가지는 포기하고 단 한 가지만 어렵사리 취택하는 사지선다(四肢選多) 정도의 인생을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우리는 간혹 과감한 시도로 성공에 이른 디자인들을 보며 “와! 이런 디자인을 받아들인 클라이언트가 누구인지 놀랍네!”하며 탄성을 터트리기도 했지만, 고개를 내저을 수밖에 없는 프로젝트들도 적지 아니 만나게 되었다.

가장 빈번한 상황은 돈에 의한 단념이었다. 어느 경우에도, “돈은 마음껏 써서 신나게 해보세요!”라는 클라이언트는 찾아볼 수 없었다. 대개가, 세상의 경기불황을 탓하고 심지어는 최근의 집안문제 더 나아가 국제정치 판도까지 운운하며, 이번 프로젝트만은 ‘저가의 고품질 디자인’을 부탁했다. 또 다른 경우는, 시간에 대한 포기였다. 언제나 들었던 얘기가, “앞으로는 이런 일이 다시 없을 테니 이번만은 좀 서둘러 주시기 바랍니다!”가 첫마디였다. 한 달에 나가는 임대료 얘기로부터 길일(吉日)이 며칠이니 그때까지 마감해 달라는 억설까지 늘어놓으며, 불가한 일정을 강요하는 게 다반사였다. 하지만 이 돈과 시간이라는 매우 일상적인 난제에 결코 좌절하지 않고, 어떤 묘책을 찾아내느냐가 디자이너의 역량이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사지선다 디자인의 난제 상황을 풀어 나가려면 객관식을 주관식 문제로 바꾸어놓는 방식이 필요하다. 하지만 여기에는 적지 않은 노력과 경륜을 통한 디자이너의 확고한 재능과 의지가 겸비되어야 할 것이다. 일단은 빨강, 파랑 중에서 택해야 하는 편협한 조건에서 빨강과 파랑의 중간색인 보라로 합의를 도출하거나, 디자이너의 의도를 충분히 이해하고 수긍해 원하는 빨강으로 이끄는 방책이다. 그러나 자고로 겸청즉명편신즉암(兼聽則明偏信則暗)이라, 여러 의견을 들으면 현명해지고 한쪽 의견만 들으면 아둔해진다고 했다. 항상 디자이너의 판단이 옳은 것만은 아니니, 클라이언트들이 비록 전문가는 아니더라도 내가 아닌 남들의 이야기를 소중히 여기는 자세도 절대 간과해서는 안 되겠다. 그래서 순수예술을 ‘창의’라고 한다면, 디자인을 두고는 ‘소통하는 창의적 작업’이라고 하는 것이다.


하루가 달리 격변하는 오늘날이니 일을 성취해 가는 길에는 예상치 못 했던 온갖 곤경들이 나타날 게다. 그러나 그것과 대결하여 도리어 반전과 역전의 호기가 되도록 나 자신부터 환골탈태하여 이 난국에서 기사회생할 때에는, 처음의 목표치보다 더 뛰어난 놀라운 결과가 내 앞에 나타날지도 모른다.

자포자기하지 말자. 단념하겠다는 자들의 변명은 하나같이 항상 똑같았다. “모두 그만 두라고 하는데…” 아니면 “세상 형편이 갈수록 어려워져서…” 몰랐던가? 시작도 스스로 결정했으니, 단념도 신신불미 미언불신(信言不美 美言不信) 즉 믿음직한 말은 아름답지 않고, 아름다운 말은 믿음직하지 않다는 말을 되새기며 마지막 순간까지 결자해지(結者解之)의 자세로 임하자. 단, 두루뭉술하게 은근슬쩍 넘어갈 생각은 하지 말고 어려움에 봉착하게 된 이 순간의 원인만은 확실히 알고 가자.


씨앗을 단념해야 뿌리가 내리고 뿌리를 단념해야 싹이 솟아나고 싹을 단념해야 줄기가 자라고 줄기를 단념해야 잎이 나고 잎을 단념해야 꽃이 피고 꽃을 단념해야 열매가 맺고 열매를 단념해야 씨앗이 생긴다. 그러나 그 단념들은 빼앗김도 잃음도 아닌 어제와 내일을 위한 오늘의 베풂이어야 한다.

단념은 돌고 도는 인생이란 동그라미에 맺혀 있는 크고 작은 매듭 중의 하나일 뿐이다. 소동파는 “고기가 없는 식사는 할 수 있지만 대나무 없는 생활은 할 수 없다.”고 했단다. 그리고 그 대나무의 백미는 그저 하늘로 솟아오른 줄기의 위용만이 아니라 겨울의 북풍한설이 만들어놓은 매듭이다. 사시사철 푸르른 대나무가 되지는 못할 테니 그윽한 대나무 향이라도 간간히 맡으며 살아가자.

마디가 없는 대나무는 아름답지 않다. 파죽지세(破竹之勢)만 고집하지 말고, 대나무의 마디마디를 쓰다듬으며 살아가자. 속이 텅 빈 대나무가 쭉쭉 뻗어 자라며 모진 비바람에도 꺾이지 않는 것은, 온갖 굴곡을 이겨낸 이 마디들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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