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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의 3월 1일, 삼일절

없음

우리는 아직도 일제강점의 치욕적 역사를

말끔히 씻어내지 못한 채 오늘을 살고 있다.

여전히 망언과 망동을 일삼는 가해자와

여태껏 우리 자신 속에 남겨있는 치부도 정리하지 못한

피해자의 모습으로,

백년이 지난 오늘을 맞고 말았다.


박인학│발행인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1988년 2월 25일부터 시행되고 있는 현행 대한민국헌법 제10호 전문(前文)의 첫머리이다. 이런저런 조문들이 당대 역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그간 아홉 차례나 전부 또는 일부 개정되었지만, 1948년 7월 17일 제정된 헌법 제1호의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들 대한국민은 기미 삼일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를 되돌아보니, ‘3·1운동의 정신’으로 이 나라가 건국되었다는 초심만은 그 어떤 흔들림도 없었던 것 같다.


올해는 3·1운동이 100주년을 맞는 해이다. 3·1운동은 일본제국주의의 폭압적인 식민지 지배에 대한 온 겨레의 저항으로 일어난 민족독립운동이었다. 최근 국사편찬위원회가 조사한 3·1운동 관련 사건은 1919년 3~4월에 전국에서 일어난 시위만도 1,692건을 비롯하여 총 2,464건에 다다랐으며, 최다수치 1백3만 명이 참여해 사망자 934명을 비롯해 검찰송치도 1만9054명에 달한 말 그대로 국민통합운동이었다. ‘우리는 이에 우리 조선이 독립한 나라임과 조선 사람이 자주적인 민족임을 선언한다. 이로써 세계 만국에 알리어 인류 평등의 큰 도의를 분명히 하는 바이며, 이로써 자손만대에 깨우쳐 일러 민족의 독자적 생존의 정당한 권리를 영원히 누려 가지게 하는 바이다. (하략)’

1919년 3월 1일 토요일 오후2시 탑동공원 팔각정에서 낭독된 독립선언서에는 조국의 독립을 선언하는 내용과 인도주의에 입각한 평화적인 방법으로 민족자결에 의한 자주독립의 주장을 의연하게 대내외에 천명하고 있다. 또한 결코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방법으로 전개한다는 것과 세계의 평화를 위해서도 우리 민족이 주권을 되찾아야 한다는, 폭력적 항쟁이 아닌 비폭력적 항거였다.

‘기미년 삼월일일 정오 터지자 밀물 같은 대한 독립 만세 태극기 곳곳마다 삼천만이 하나로~ (하략)’ 아직도 기억이 생생한 삼일절 노래의 가사이다. 그러나 백년이 지난 지금은, 그저 모든 학교의 입학식과 개학식이 하루 미뤄지는 초봄의 공휴일이라는 의미 말고는, 그 숭엄한 정신이 점점 흐릿해지는 듯하여 못내 안타까울 뿐이다.


《타임》지는 1927년부터 매년 ‘올해의 인물(Person of the Year)’을 선정해 발표하고 있다. 그리고 최근의 인물 중 저항을 시작한 이름은, 2006년의 ‘YOU’를 필두로 2011년의 ‘The Protester(시위자)’ 그리고 2018년의 ‘GUARDIANS(수호자들)’ 등, 모두가 무명의 용사들이었다. 2006년, 정보화시대에 휩싸인 현대에서 단순히 인터넷정보의 수신자가 아닌 적극적인 참여자로 활동하며 디지털민주주의라는 새로운 사회현상을 아무런 대가없이 이루었다며 지목한 ‘YOU’. 2011년, 튀니지를 시작으로 일어난 아프리카 민주화 시위, 모스크바 붉은광장을 가득 메운 부정선거 시위, 심지어 뉴욕 월가를 휩쓴 반자본 시위 등을 망라한 전 세계 피플파워의 상징인 ‘The Protester’. 2018년, 이스탄불 주재 사우디아라비아 총영사관에서 살해된 자말 카슈끄지를 포함한 진실을 수호하다 탄압받은 언론인들을 적시하며 ‘GUARDIANS’를 지명했다.

모두 하나같이 강력한 세력에 대한 미약한 자들의 소리 없는 항변이었고, 나 자신을 위한 목전의 실익 추구가 아닌 자기희생이었으며, 인류의 평등과 호혜를 위한 정의로운 멸사봉공의 실천이었다.


대항한다는 것은 어떤 절대적인 기존의 힘에 굽히거나 지지 않으려고 맞서서 버티며 싸우는 사고이며 행위이다. 물론 천재지변과 같이 불가항력적인 재앙 앞에서 나와 모두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몸을 던지는 경우도 있지만, 우리는 일상에서도 크고 작은 저항을 하며 살아가고 있고, 그 시작은 불응이다.디자인 또한 불응이 시초이다. 기성 작품들의 답습과 모방에 대한 불응은 물론 이제까지의 내 작업들에 대한 부정이 진정한 창의의 시발점이다. 물론 공간디자이너에게 주어진 대지 환경에 대한 순응과 건축물에 대한 수긍이 디자인을 하는 사람의 당연한 자세이겠지만, 그 땅 그리고 바닥과 벽과 천장에 장해와 애로가 있다면 이를 해결해야 하는 것도 디자이너로서의 본분이다. 무조건 시류와 유행에 휩싸여서도 안 되고 자기의 독선과 아집만 내세워서도 안 되기에, 이 모두에 대한 합리적 응대에서 출발해야 한다. 다음은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과정에서의 저항이다. 클라이언트의 과도한 요구에 의한 체념과 앞에 닥친 난제 처결방안의 부재에 의한 단념은, 디자이너의 클라이언트에 대한 항복이 아니라 사용자들에 대한 비굴한 포기이다.


봄은 화려함이 아닌 화사함이다. 여름의 찬란도, 가을의 결실도, 겨울의 여유도 없지만, 봄에는 그윽함이 스며있다. 우리는 지금 봄에 다다랐다. 이 봄은 느슨하고 나약해 보이지만, 겨울을 이겨내고 언 땅을 뚫고나온 부드러운 힘을 가진 계절이다. 

일장춘몽(一長春夢)을 헛되고 덧없다 하지만 그 한바탕의 꿈이 없다면 인생은 그저 척박할 뿐이다. 춘풍추우(春風秋雨)요 춘화추월(春花秋月)이라니, 이 봄의 살랑거리는 봄바람에 묻어오는 싱그러운 꽃내음을 맡아보자. 입춘과 우수도 지나 경칩, 춘분, 청명, 곡우가 목전이니, 동토에서 돋아난 여리면서도 더없이 강인한 새싹을 본받아 이 메마른 세상에 부딪쳐 보자.


그러나 이제는 힘으로 싸우는 세상이 아닐 뿐더러 이기려들지 않고 바꾸려는 자가 승리하는 사회이다. 내유외강(內柔外剛)이 아닌 속도 겉도 부드러운 자만이 자신의 뜻을 관철할 수 있는 시대이다.

지여석 심여수(志如石 心如水), 뜻은 돌처럼 굳게 가지고 마음은 물처럼 유연하게 품으라 했다. 하루가 달리 급변하는 세상에서 온갖 어려움과 고달픔이 닥쳐오겠지만, 초심만은 잊지 말고 목적지만은 분명히 알고 찾아나서야 하겠다.

‘Having a soft heart in a cruel world is courage not weakness. 잔혹한 세상에서 부드러운 마음으로 사는 것은 나약함이 아니라 용기이다.’라는 말이 있다. 이 험한 세태에서는 대항하고 저항하는 데 전력하기보다는 그 안에서 만난 이들과 서로 위로하고 북돋우며 함께하는 지혜와 인내가 우선이다.


우리는 아직도 일제강점의 치욕적 역사를 말끔히 씻어내지 못한 채 오늘을 살고 있다. 여전히 망언과 망동을 일삼는 가해자와 여태껏 우리 자신 속에 남겨있는 치부도 정리하지 못한 피해자의 모습으로, 백년이 지난 오늘을 맞고 말았다. 가해한 그들은 온갖 변명과 핑계만 둘러대고 피해를 당한 우리끼리는 서로 책임만 전가하며, 태극기 하나 들고 거리로 나서 외쳤던 우리의 선조들 앞에 서있다. 안에서나 밖에서나, 누가 보아도 끝나지 않을 맞서기와 겨루기만 부질없이 반복하고 있다.


“내 손톱이 빠져 나가고, 내 귀와 코가 잘리고, 내 손과 다리가 부러져도 그 고통은 이길 수 있으나, 나라를 잃어버린 그 고통만은 견딜 수가 없다. 나라에 바칠 목숨이 오직 하나밖에 없는 것만이 나의 유일한 슬픔이다.” 열일곱 꽃다운 나이에 옥중에서 순국하신 유관순 열사가 남기신 말씀이다. 피지도 못하고 만 연약한 한 송이였지만, 진정한 항거가 무엇인지를 가르쳐주고 가신 영원한 우리 한민족의 ‘누나’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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