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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IORS

만두의 피와 소

없음

21세기 디자인의 현상적 문제는

과도한 정보와 잡다한 유행에 의해

디자이너들의 창의 사고마저 쇠락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개념도 정신도 철학도 없는

모방과 외식(外飾)과 과시의 디자인들만이 극성하고 있다.

제 아무리 피의 식감도 중요하다지만

결국 만두의 맛은 소에 무엇을 넣었느냐가 주된 관건일 것이다.


박인학│발행인


4월 23일은 UN 산하의 국제연합교육과학문화기구(UNESCO)가 독서 증진을 위해 1955년에 제정한 ‘세계 책과 저작권의 날(World Book and Copyright Day)’이다. 많은 날 중에 유독 4월 23일로 정해진 이유는, 에스파냐의 카탈루냐에서 책을 읽는 사람에게 꽃을 선물하던 ‘세인트 조지 축일(St. George’s Day)’을 기리고, 영국이 낳은 세계적 대문호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와 스페인 문학의 최고봉인 풍자소설 <돈키호테>의 저자 세르반테스(Miguel de Cervantes Saavedra)가 각각 51세와 68세로 1616년 이 날에 사망한 데서 유래한다.

사실 이 즈음의 봄날은, 잠시 책을 읽어 가노라면 쉬이 온몸이 나른해지기도 하고 창밖을 물끄러미 내다보면 왠지 길로 나서고 싶은 충동이 느껴지기도 하는 절기이다. 또 가을을 ‘독서의 계절’이라고 하지만 겨울과 여름이 최대 출판성수기이자 열독의 계절이지, 정작 봄과 가을에는 책을 접고 온화하고 청량한 바깥으로 나가는 게 실상이란다. 예전의 여름과 겨울은 책을 읽기에 너무 덥고 추웠지만 냉난방이 갖춰진 현대에는 실내생활의 환경조건이 매우 쾌적해졌고, 점점 짧아지고 있는 봄과 가을에는 모처럼의 야외활동을 더 원하기에 겨울과 여름의 독서량 증가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변화라 하겠다.


성리학의 확립으로 유학과 동아시아 사상에 불후의 영향을 미쳐 ‘동양의 칸트(Immanuel Kant)’라 불리는 남송 때의 대학자 주희(朱熹)는, 독서삼도(讀書三到)라 하여 독서를 할 때에 입으로 다른 말을 하지 않는 구도(口到), 눈으로 딴 것을 보지 않는 안도(眼到), 마음을 가다듬고 반복해서 숙독하는 심도(心到)를 해야 그 진의를 깨닫는다고 했다. 그러나 그가 본의를 터득하려는 의도는 그 이상이었다.

서진 때의 장화(張華)가 쓴 일종의 백과사전이라 할 수 있는 《박물지(博物志)》에 따르면 “성인제작일경 현인저술일전(聖人制作曰經, 賢人著述曰傳), 성인이 지은 것을 경(經)이라 하고, 현인이 풀이한 것을 전(傳)이라 한다.”하며 감히 뛰어넘을 수 없는 권위를 말하고 있다. 또 經과 傳의 뜻을 밝히는 훈고학에서도 “이전해경 전불위경(以傳解經, 傳不違經), 傳으로 經을 풀이하지 傳이 經을 어겨서는 안 된다.”고 못 박고 있다. 하지만 주희의 생각은 이러한 구태를 뛰어넘어 경문을 의심하는 의경(疑經)과 경문이 의심스러우면 고치는 개경(改經)을 감행하였으니, 이제까지 절대적이던 경문의 신성성과 절대성에 대한 실로 경천동지(驚天動地)할 만한 대사건이었다. 물론 주희는 《대학(大學)》의 가르침이 폐기되어 세상의 도덕이 어둡게 되었다고 주창했지만, 기존의 잘못된 전통과 권위에 도전했던 진정한 혁파의 학자라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독서는 종이 위에 박힌 글자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위한 맹목적인 수단이 아니다. 한 권의 책을 읽음으로써 그중에서 공감하는 부분을 확고히 하거나 그 내용을 터득한 후 그에 반하는 자기 자신의 의견을 얻는 것이 진정한 책의 가치라 할 수 있겠다. 즉 완독한 후에 자신의 머리와 마음속에 한 권의 또 다른 책이 쓰인다면, 그 책은 분명히 가치 있는 책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책(書)은 읽는(讀) 것이 전부가 아니다. 독서란, 視 봄으로써, 解 이해하고, 知 알게 되며, 考 이에 대해 생각해, 智 지혜를 얻고, 覺 이를 돌이켜 생각해, 脫 이에서 벗어남으로써, 感 나름의 느낌을 찾아, 創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新 새로운 자아관을 얻기 위한 수단이다. 어찌 보면 책은, 그저 객관을 통해 주관을 찾아내는 하나의 동기유발일 뿐이다.

책은 위대한 천재가 인류에게 남긴 유산이다.

돈이 좀 생기면 나는 책을 산다. 그리고 남은 돈이 있으면 빵과 옷을 산다.

책이 없는 궁전에 사는 것보다 책이 있는 마구간에 사는 것이 낫다.

책이 없는 집은 문이 없는 가옥과 같고, 책이 없는 방은 혼이 없는 육체와도 같다.

좋은 책을 읽는다는 것은 과거의 가장 훌륭한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이다.

독서가 정신에 미치는 영향은 운동이 육체에 미치는 영향과 다름이 없다.

생각하지 않고 책을 읽는 것은 잘 씹지 않고 음식을 먹는 것과 같다.

독서란 자기의 머리가 남의 머리로 생각하는 일이다.

아무리 유익한 책이라 할지라도 그 가치의 절반은 독자가 창조한다.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

짧은 한 구절의 글이지만 두꺼운 한 권의 책보다 깊은 뜻이 담겨 있는, 책에 대한 여러 위인들의 명언들이다. 사람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대략 500만 마디의 말을 한다니, 이 정도 되는 거목들이라면 더 많은 말을 남겼을 수도 있겠지만, 결국 후대에 이어져 남겨지는 방법은 종이에 찍힌 글자가 우선이라는 것만은 변치 않을 것이다. 이에 인간의 역사는 글자의 기록을 전제로 한 선사(先史)와 유사(有史)의 비문명과 문명의 사회로 나뉜 것이다.


여하튼 ‘독서삼매(讀書三昧)’라며 책을 읽을 때에는 정신을 집중하라 했다. 그러나 책을 읽는 더 나은 방법은 책을 읽으며 또 한 권의 책을 마음과 머릿속에 심어가는 것이다. 종이와 컴퓨터모니터 앞에 있지 않더라도, 마치 들판에서 한 송이 꽃을 보며, 미술관을 찾아 그림을 보며, 극장에서 영화를 보며, 거리에서 사람들의 표정을 보며, 하나의 디자인을 찾아내는 디자이너처럼, 한 페이지의 책 속에서 단 한 개라도 통감하는 단어를 찾아낸다면 그 책의 가치는 실로 충분하다.


디자인은 순수한 창의가 아닌 상호의 조화를 위한 융합적 재생이다. 인간과 인간 그리고 인간과 자연 더 나아가 인간과 환경, 사물, 상태 등의, 상생적 발전을 위한, 도전적 재고에 의한, 개선적 작업이 바로 디자인이다. 즉 기존과 기성에 대한 감성적 의경과 이성적 개경이 바로 디자인 창의의 시발인 것이다. 발명의 시대는 지나갔고 현대는 발견의 시대라 한다. 이미 발명되어 있는 수많은 것들을 달리 더하고 빼며 뭔가 색다른 것을 찾아내는 것이 바로 이 시대의 창의정신이다.


21세기 디자인의 현상적 문제는 과도한 정보와 잡다한 유행에 의해 디자이너들의 창의 사고마저 쇠락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개념도 정신도 철학도 없는 모방과 외식(外飾)과 과시의 디자인들만이 극성하고 있다. 제 아무리 피의 식감도 중요하다지만 결국 만두의 맛은 소에 무엇을 넣었느냐가 주된 관건일 것이다. 온갖 멋들어진 이미지들이 핸드폰과 모니터 위에서 범람하는 시대이지만, 그 이미지를 만들어낸 사람의 머리와 가슴 속에 담긴 것은 하나의 단어 아니면 그리 길지 않은 글귀일 것이다. 그러나 디자이너들조차도 그 창시자의 속은 살펴보려 않고 겉만 훑어보며 뒤따르고 있다.

책을 읽자. 주희는 《주자십회훈(朱子十悔訓)》을 통해 ‘소불근학노후회(少不勤學老後悔), 젊어서 부지런히 배우지 않으면 늙어서 뉘우친다.’고 일렀다. 하지만 남녀평등의 백세시대라 하니, 남녀노소 춘하추동 없이, 도끼를 갈아 바늘을 만드는 마음가짐으로 책을 읽으며 글을 써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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