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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내 남은 생의 첫날

없음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란 말이 있지만,

그렇다면 ‘준비가 성공의 아버지’쯤은 족히 될 성싶다. 

성공한 자들은 하나같이 “운이 좋았다!”고 말하지만,

그 행운도 준비된 자에게만 가치 있는 행복으로 나타난다. 

그렇지 못한 자에게 오는 행운은

그나마 지금 가진 평상마저 빼앗기는 불운이 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박인학│발행인


上中下니 大中小니 하는 말도 있고 高와 低, 左와 右, 長과 短 사이에도 中이란 것은 분명코 존재하니, 등급이든 크기, 위치, 길이에는 상관없이 中만은 항상 그 양극 사이를 점하고 있다. 또 上下, 大小, 高低, 左右, 長短 모두는 그저 한 점에 불과하지만, 中은 그 일순간의 한 점을 제외한 모든 과정을 장악하고 있다. 즉 시종(始終) 외의 모든 간극은 바로 中인 것이다. 그래서 예로부터 어떤 극단에도 치우치지 않는 중용지도(中庸之道)를 군자가 반드시 행해야 할 덕목으로 여겼나 보다.


이래저래 살다 보니 벌써 어영부영 반년이 지나는, 한 해의 한가운데에 들어서 있다. 물론 하루하루를 돌이켜보면 시시각각이 다사다난이었지만, 한 걸음 넌지시 물러나 지난 시간을 둘러보니 뭐 하나 내세울 것이 없는 그저 무상한 세월이었음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어느 해나 그렇듯이 세상 물정도 모르면서도 떠벌이기만 했던 정중지와(井中之蛙), 가당치 않은 것에 욕심만 부렸던 화중지병(花中之餠), 그 와중에도 바동거리며 헛짓만 했던 공중누각(空中樓閣), 결국은 제 스스로에게 당하고만 자중지난(自中之亂), 갈피조차 잡을 수 없었던 오리무중(五里霧中)의 나날이었다. 하지만 이런저런 우여곡절의 난세 속에서도 나름은 올곧게 살아보겠다는 이중지연(泥中之蓮)의 마음만은 잊지 않았다 말하고 싶다. 여하튼 겨울을 묻고 봄을 열어 여름을 피우는 오늘에 달했다.


“휴~”하고 한숨부터 나올지 몰라도, 신년이라며 작심하며 널뛰던 게 엊그제 같은데, 올해도 또 그렇게 한 해가 지나가고 있다. 그러나 어찌 보면 오늘들만 살아왔지 내일은 생각조차 못 한 듯싶다. 한 해를 놓고 볼 때에, 상반기에는 계획과 준비를 해서 하반기에 실행과 마무리를 하는 게 일상이다. 그런데 반을 보낸 이 시점에서, 작심했던 일들 중에 실천할 수 있는 태세가 얼마나 대비되어 있는지를 한번쯤 되돌아보아야 할 시점인 것 같다.


아무리 봐도 나머지 반년을 살 준비가 안 된 듯싶다. 물론 준비도 좋지만 일상에 치이다 보니 그렇다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가장 심한 고질병은 일단 다음으로 미루는 습관이란다. 지금 해야 할 일은  잠시 후로 미루고, 오늘 해야 할 일은 내일로, 올해 해야 할 일을 내년으로, 심지어는 이승에서 해야 할 일을 저승으로까지 미룬다. 그러니, 금연이든 다이어트이든, 무조건 “내일부터!”란 말이 있는 것이다.

히말라야 설산에는 ‘밤에만 집을 짓겠다고 우는 새’라는 뜻을 가진 ‘야명조(夜鳴鳥)’가 산다. 이 새는 밤이 되면 혹독한 추위를 이기지 못해 내일은 꼭 집을 지어야겠다고 다짐한단다. 하지만 날이 밝아 햇볕이 내리쬐면 어젯밤의 결심은 까맣게 잊고 다시 온종일 놀다 다시 밤이 되면 낮의 일을 후회하며 울어댄다니, 우리의 지난 반년 아니 오늘 낮의 모습이 바로 이 야명조는 아니었을까?


준비는 배려가 시작이다. 준비는 염려를 덜기 위해 모든 이와 모든 것에 대해 배려하는 정신적 자세이자 육체적 실행이다. 우선은 나를 위한 배려와 나와 함께 하는 동료들을 위한 배려, 또 어제 지나간 수고에 대한 배려와 내일 다가올 근심에 대한 배려, 그리고 주어질 결실과 다가올 행복에 대해 무조건 감사하기 위한 배려이다. 그런데도 배려를 베풀지 않는 이유는 하나이다. 나도 그 누구로부터도 배려 받지 못했다는 속내가 바로 그 원인이다. 그러나 실상은 배려를 받고도 모르는 게 문제이다. 나 자신이 내 주위의 사람들에게 배려 받았음을 모를 뿐이다. 배려라는 것을 스스로 듣지도 보지도 만지지도 느끼지도 못하며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준비에는 여유가 필요하다. 준비는 미리 예상되는 것에 대한 시의적절한 적용과 예기치 못한 것에 대해 임기응변적으로 대처를 겸비해야 하는 여유이다. 우선은 가시적 계획과 돌발적 상황을 당연시해야 하는 여유, 또 활용하게 되었을 때의 기쁨과 폐기되었을 때의 실망에 대한 여유, 그리고 실패시의 낙담과 또 다른 재기를 의연하게 대비하는 여유이다.

그러나 여유를 갖추지 않는 이유는 하나이다. 현재도 버거운데 미래를 위한 막연한 준비까지 하느니 닥쳤을 때 속전속결로 대응해 보겠다는 나태가 바로 그 원인이다. 그러나 예상대로 수순대로 전개되던 일은 단 하나도 없었다. 그리고 판에 박힌 채비와 기적 같은 요행수로는 상상도 못 했던 변수와 미지수들을 도저히 처리할 수 없었다. 항상 나타나는 것은 잘못된 것이 아니라 단지 잘못 본 것들인 경우가 더 많았다.


디자이너의 필수불가결은 배려하며 심성과 여유로운 자세의 준비이다. 그리고 내 능력과 여건 이상의 대단한 작품은 바로 이 배려와 여유의 마음가짐, 몸가짐, 행동거지로 인해 내게 나타난다. 즉 기적적인 성공과 성취는 내 계획선 안이 아닌 밖에 의해 이루어진다. 디자인의 반은 내 심신에 의해 예정한 결과가 아니다. 즉 디자이너가 당장은 쓸모없어 보이는 폭넓고 깊은 준비를 얼마나 하느냐가 성공작을 낳는 시발이 될 것이다. ‘우리의 나태에 대한 벌로 타인의 성공이 있다’란 말도 있다. 준비는 푼돈을 투자해 목돈을 버는 매우 현명한 투자이다. 그래서 우공이산(愚公移山)이 그저 바보 같은 노인의 지나간 고사만은 아닌 것이다. 그래, 조금은 바보처럼 준비하자.


먼 길을 떠날 때 필요한 것은 넉넉한 휘발유만이 아니라, 언제 필요할지 모르는 스페어타이어이다. 물론 이제껏 단 한 번도 트렁크 안의 스페어타이어를 써본 적이 없다고 말할지도 모르지만, 그렇다면 그 스페어타이어를 쓰게 될 확률은 더 크다는 반증일 수도 있다. 괜히 호들갑을 떤다 할지 몰라도, 반 쯤 지난 이 시점 아니 인생을 나름대로 적지 아니 살았다면, 당장 앞에 있는 일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준비하는 데에도 시간을 쓰자.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란 말이 있지만, 그렇다면 ‘준비가 성공의 아버지’쯤은 족히 될 성싶다. 성공한 자들은 하나같이 “운이 좋았다!”고 말하지만, 그 행운도 준비된 자에게만 가치 있는 행복으로 나타난다. 그렇지 못한 자에게 오는 행운은 그나마 지금 가진 평상마저 빼앗기는 불운이 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현명한 자는 준비가 우선이다. 또 이른 준비만이 여유로운 일상을 보장하고 막연히 말로만 준비를 운운하는 자는 그저 또 다른 스트레스만 더할 뿐이다. 건강도 식사도 공부도 독서도 잠도 휴식도 심지어는 사랑도, 모두가 다 준비이다. 그러니 준비는 내일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오늘 당장 필요한 인생의 에너지이다. 먼저 준비하자.


‘半’이란 字는 ‘牛’를 갈라 해부하듯이 나눈다는 것에서 유래했단다. 소보다는 작지만 己亥年의 돼지 한 마리를 놓고, 지난 반년도 그런대로 공과상반(功過相半) 정도 해냈으면 훌륭하니 남은 해에 대해 너무 반신반의(半信半疑)만 하지 말고, 걷는 자만이 앞으로 갈 수 있다는 지극히 평범한 얘기를 되새기며 차근차근 반 보씩이라도 내딛어 나가보자. 남은 반년도 지난 반년처럼 또 그렇게 오늘들이 들이닥칠 게다. 《오늘은 내 남은 생의 첫날》이란 책도 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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