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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IORS

다시, 다음 호!

없음

만일 ‘다시’가 없이 인생이 일사천리로 이어져 있다면

그 지루함에서 오는 권태감은 상상할 수도 없을 것이다.

물론 ‘다시’에는 항상 장애가 있는 게 현실이다.

차라리 지속되기를 바랄지도 모르지만

크고 작은 단절과 위기는 항상 나타나고,

이는 정녕 축복이다.



박인학│발행인


‘다시’란, 하던 것을 되풀이해서 하거나, 방법이나 방향을 고쳐서 하거나, 하다가 그친 것을 계속하는 것을 말한다. 언뜻 보면 엇비슷하지만 하나하나를 곱씹어보면 적지 아니 다른 맛들을 지니고 있어서, 어떤 맛은 달달해 삼키지만 어떤 맛은 쓰디써서 당장 뱉고 싶을 지경일 것이다. ‘다시’는 사막이 아닌 산악이고, 수렁이 아닌 절벽이다. 물론 끝없는 험산준령을 넘는 것도 기암절벽을 오르는 것도 힘들지만, 끝도 보이지 않는 사막을 헤매고 바닥에 언제 닿을지 모르는 수렁에서 허우적대는 것보다는 분명히 나을 듯싶다.

‘다시’는 심기일전(心機一轉)을 다짐하는 마음가짐이 우선이다. 어찌 보면 지난 실패와 성공의 크고 작은 경험들을 디딤돌로 하는 도전이다. 대개는 처음 시도할 때보다 몸도 맘도 지쳐있기도 하고, 심지어는 원점보다 훨씬 뒤에서 재기해야 하는 악조건일 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다시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는 것은, 포기할 일이 아니라 반드시 이루어야 할 일이라는 판단이 전제된다. 기왕지사 나선 길이니 내처 가고 보자는 것은 결코 옳지 않으니, 처음보다 더 숙고해야 하겠다. 한번 실수는 병가지상사라지만 가서는 안 되거나 갈 힘이 도저히 부족한 여정이라면, 다른 길을 택하거나 다시 갈 만한 힘을 길러서 나서는 게 마땅하다.


1년의 반이 지나 남은 반에 접어들었다. 이 시점에서 ‘다시’의 기본 전략은, 첫째로 나와 모두를 위해 바른 목적이었나를 돌아봄이다. 혹여 일신만을 위한 야심과 탐욕 때문에 나선 것이 아니었나를 성찰할 마지막 기회이다. 둘째는 때를 잘 택함이다. 조급한 마음에 무조건 서두르는 것은 그 상대나 상황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 당하는 자충수이다. 셋째는 처음보다 목표를 낮춰 잡음이다. 당장은 의욕과 용기가 충만하더라도 또다시 실패하게 된다면 더 크게 낙심할 것은 당연지사이다.


디자인의 과정도 ‘다시’의 반복이다. 무턱대고 밀어붙이는 중단 없는 전진의 작전이 아니라, 소위 끊임없는 ‘피드백(Feed Back)’을 통해서 본연의 철학과 개념을 되돌아보며 개선과 수정을 가하는 작업이다. 어떤 디자이너는 이 피드백을 작업 도중에 클라이언트에게 당하기도 하고, 어떤 디자이너는 완성 이후에 사용자들에게 당하기도 하지만, 현명한 디자이너는 자기 스스로의 피드백에 의해 작업의 완성도를 높여간다. 즉 얼마나 많은 부분을 지우개로 지우고, 얼마나 많은 종이를 찢어버리고, 얼마나 많이 ‘딜리트(Delete)’ 키를 눌렀느냐에 따라 그 작품이 졸작이냐 걸작이냐가 정해지는 것이다. 가능하면 머릿속 또는 종이와 모니터 위에 있을 때, 다시 ‘다시’를 반복하자. ‘다시’는 결코 실패가 아닌 성공을 향한 행보이다.

공간디자이너가 스스로 이런 정정작업을 하지 않는다면, 결국 다 세워진 벽과 지붕, 더 나아가 건축물과 도시를 부숴야 하는 엄청난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그래서 혹자는 의사가 한 번 과오로 환자의 생명을 잃게 하는 것보다 디자이너가 건축물 하나를 망쳐 그 앞을 오가고 그 안에 드나드는 사람들을 괴롭히는 게 더 큰 죄라고까지 말한다. 얼마나 더 다시 생각했느냐만이 이러한 과오를 범하지 않는 방법이다.


어찌 보면 잡지가 바로 ‘다시’의 대표적 산물 중 하나가 아닌가 싶다. 정기간행물로 분류되는 잡지는 주로 월간이지만 격월간이나 계간 등 일정한 주기에 하나의 주제로 재발간되는 책이다. 당장 어렵다고 하염없이 쉴 수도 없고, 아무리 좋다고 해도 수차례 재판을 반복할 수 없는 팔자의 매체이다. 요즘 세상에 종이로 된 잡지사업이 어렵다는 이야기는 이구동성으로 숱하게 듣고 있지만, 잡지를 만드는 이들이 감내하며 이겨내는 매력은 바로 이 ‘다시’에 있다. 그래서 잡지인들이 자위하는 외마디소리는 ‘최고의 잡지는 다음 호’라는 일취월장(日就月將)에 대한 각오이다.

《다시 책으로; Reader, Come Home》란 책이 화제이다. 그렇다고 현대인들의 신종 중독이라는 SNS [카페인(카카오, 페이스북, 인스타그램의 앞 글자를 따 만든 신조어)]을 끊고, 종이책만 보자고 강변하고 싶지는 않다. 단지 오늘날 같은 순간접속의 시대에 책을 읽어야 한다는 것은, 우리에게 들이닥친 수많은 정보들을 최소한 생각하고 나서 받아들이자고 이야기하기 위함이다. SNS가 새로운 정보를 편리하게 가져다준다면, 책은 깊고 넓은 사고를 하게 만들고 무한한 상상의 날개까지 펴게 해준다. 오늘도 눈을 뜨자마자 SNS를 통해 많은 정보들을 접했겠지만, 아마 손가락을 따라 흐르는 사진들, 그리고 잘 해야 제목이나 굵은 글씨 몇 자 말고 그 내용을 세세히 읽어본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서 우리는 많은 정보와 지식, 나아가 지혜를 얻었다고 자신하며 살고 있다. SNS는 기껏 해야 ‘우리’의 것이지 ‘나’의 것은 결코 아닐지도 모른다. ‘다시’의 진정한 가치는 다시 행함이 아니라 다시 생각함이다. 인생이 ‘다시’의 무한 반복이라면, 죽는 날까지 생각함이 가장 귀한 생의 목표일 것이다. 그러니 다시 한 번 책을 펼쳐 글자를 읽어보는 것도 간곡히 권유하고 싶다.


사방 천지에 있는 듯하지만 사실은 그 어디에도 결코 존재할 수 없는 것이 ‘다시’인지도 모르겠다.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똑같은 일상이라며 푸념하지만, 가까이 가서 보니 그 둥근 통 안에서 미친 듯이 두 발을 돌려대는 다람쥐는 한시가 다른 표정이다. 거울에 비추듯 똑같은 상황이나 사건도 없는 것은 분명하니, 아무리 엇비슷해 보여도 실상은 모두가 ‘다시’가 아닌 ‘새것’인 셈이다. 일단 며칠이라도 나이가 더 들었을 테고, 날씨도 다를 게고, 세상도 달라졌을 것이다. 새 해, 새 달, 새 날이 오고 시계바늘이 돈다는 것은 ‘다시’가 일상인 듯하지만, TV의 일기예보만 봐도 다시 반복된 날은 단 하루도 없었다. 엄마젖을 빨다 미음을 뜨고 죽맛을 보다 밥 먹고 살다, 다시 국이나 물 말아 먹던 밥을 치우고 죽사발이 앞에 놓이고 미음을 받아먹다 밥숟가락 놓는 걸 보면, 결국은 다시 돌아가는 것 같기도 하나, 입맛 다시는 아이의 눈망울과 침대에서 숟가락을 받아먹는 노인의 눈동자는 다르다.

생각해보자. 만일 ‘다시’가 없이 인생이 일사천리로 이어져 있다면 그 지루함에서 오는 권태감은 상상할 수도 없을 것이다. 물론 ‘다시’에는 항상 장애가 있는 게 현실이다. 차라리 지속되기를 바랄지도 모르지만 크고 작은 단절과 위기는 항상 나타나고, 이는 정녕 축복이다.


‘다시’를 뜻하는 ‘再’ 자(字)의 형상은 물고기가 물 위로 반복적으로 입을 내밀어 숨 쉬는 모습에서 유래되었다 한다. 이렇듯 오르내리며 산소를 들이키지 않으면 결국은 바닥으로 가라앉았다 물위에 떠오르는 꼴이 되고 말 것이니, ‘다시’는 생명 부지의 절대적 수단이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다른 ‘다시’를 행하며 살아가자.

“Insanity is doing the same thing over and over again and expecting different results. 같은 일을 다시 되풀이하면서 다른 결과를 기대하는 것은 정신이상이다.”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이 남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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