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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IORS

핑크를 벗어던진 카림 라시드 脱下粉红色的凯瑞姆·瑞席

없음

첫째, 無我_ MAGAZINE, 가 가진 것은 백지 뿐이다.

둘째, 利他_ DESIGNER, 는 디자이너들에 의해 채워진다.

셋째, 爲全_ READER, 는 독자들을 위한 것이다.


一、无我_MAGAZINE,《INTERIORS》拥有的只是一堆白纸。

二、利他_ DESIGNER,《INTERIORS》是由设计师们来填满的。 

三、为全_ READER,《INTERIORS》是写给读者们看的。



박인학│발행인

朴仁鹤│出版人


또 1년이 지나 창간34주년을 맞았다. 매년 창간특집기사를 기획하고 전면개편을 한답시고 끙끙거리며 나름의 변화를 모색해 왔다지만, 1986년 창간 이후 발간된 396권의 책들을 훑어보니 과연 무슨 변화가 있었는지 나 스스로에게조차 명료한 답을 내놓을 수가 없다. 1986년 10월에 나온 178페이지짜리 창간호보다 100여 페이지가 두꺼워졌고, 작금의 잣대로 볼 때에 디자인 프로젝트의 수준은 나아졌으나 이는 디자이너들의 덕분이며, 외국 프로젝트와 각종 정보의 양이 늘었다는 것도 국제교류의 활성화에 의한 것일 뿐, 그저 대동소이한 틀 안에 담긴 지극히 복지부동한 철밥통의 모습임을 부정할 도리가 없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를 대변해 왔다 할 수 있는 프로젝트를 다루는 기사는 [PROJECT], [WORKS], [INTERNATIONAL]라는 칼럼 타이틀로 대별되어 왔다. 그런데 이는 ‘세계화’란 단어조차 진부하게 느껴지는 오늘날로서는, 국적 우선적 기준은 우리 디자이너들을 안이하게, 영토 중심적 기준은 우리 디자이너들을 편협하게, 연령 세대적 기준은 우리 디자이너들을 교만하게, 규모 가치적 기준은 우리 디자이너들을 나태하게 만든 장본인이란 자성까지 하게 된다. 여차하면 ‘방탄소년단 BTS’를 들먹거리며 ‘문화선진국’이니 ‘세계 속의 한국)인’임을 자부하지만, 는 우리 디자이너들을 우물 안 개구리로 살라고 부추기며 깊은 유서만 내세워 온 한낱 오래된 잡지의 궤적이었다. 뭔가 달라져야 했다!


33살 나이에 16개월 된 자식을 두게 되었다. 요즘은 만혼이 대세인지라 그리 늦은 것도 아니지만,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노라면 그저 흐뭇하면서도 엷은 걱정에 나직한 한숨이 새어나온다. 요즘 아이들이 다 그렇듯이 말은 곧잘 재잘거리고 가끔은 나름 심각한 표정으로 제 생각을 또박또박 말하기도 하는데 아무리 봐도 키는 옆집 딸내미보다 손가락 두어 마디는 작은 듯해 은근히 걱정도 된다. 더욱 안쓰러운 것은 삼시 세끼 걱정은 덜 할지 몰라도 이래저래 제 애비 자랄 때보다는 훨씬 어려운 시절에 태어난 듯하여 왠지 미안한 구석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도 제가 타고난 팔자려니 하며 새근새근 잠든 놈을 토닥여본다.

늦둥이 얘기가 아니다. 작년 2018년 7월에 창간해 이제 갓 16호를 맞게 된 를 두고 심려하는 발행인으로서의 솔직한 심정이다. 비행기 올라타면 두어 시간도 안 되는 거리인지라 서울과 베이징 사이를 한 달에도 두세 번을 오가며 애지중지 키우고 있지만, 말도 글도 다른 이국인으로서의 고충이 없다 하면 거짓말일 게다. 그나마 손발 벗고 내 일같이 나서준 중국의 많은 지인 디자이너들의 적극적 도움 덕분에, 슬슬 제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듯하지만 아직도 겪어내야 할 것이 구만리 같아 머리를 움켜잡고 온갖 궁리 속에 살고 있다.


내세우는 대의명분은 이러했다. 그간 왕래와 교류는 소소하게 있다지만, 양국 디자이너들의 제대로 된 교두보를 놓아 한중 공간문화의 신지평을 열어보자는 것이 일성이었다. 높은 데 있는 분들은 겉으로 드러난 정치, 경제만 운운하느라 급급하지만, 그 저변에서 면면히 흘러온 한국과 중국 상호간의 역사적 맥락과 문화적 교감은 어찌 보면 일순간도 끊어지지 않고 이어진 필연적 관계였다. 그간 백 년 안팎의 어찌할 수 없는 단절이 있었던 것도 실상이지만, 동아시아 문화예술의 발전과 번영을 주거니 받거니 하며 함께 이끌어온 것을 다시금 일으켜보자는 취지였다. 물론 땅덩어리도 인구도 수십 곱절 차이가 나지만 각국이 가지고 있는 분명한 장단점이 있기에, 이를 잘 융합하면 세계 문화의 도약을 창출해내는 새로운 힘을 낳을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는 단지 나 개인의 발상이 아니라 그간 황해를 넘나들며 들은, 그런대로 양국을 안다는 적지 않은 중견 디자이너들의 진심 어린 권고였다.


얼마 전 한 행사에 참여했던 오래된 지인 카림 라시드(Karim Rashid)에게서 마치 귀를 송곳으로 찌르는 듯한 한마디를 들었다. “가구회사들이 책장의 생산 비중을 줄이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책을 사지 않으니까요.” 지나는 말 중의 하나였지만 내게는 폐부에 박혀 피를 솟구치게 하는 구절이었다. 그의 말은 이어졌다. “지금 의자를 하나 디자인한다고 합시다. 뭘 고민해야 할까요? 3분 만에 하나씩 만들어서 아주 싸게 한다든지, 네댓 개쯤은 택배로도 쉽게 보내도록 가볍게 한다든지… 지나간 역사와는 전혀 상관없는 아이디어입니다. 그게 디자인입니다. 영감을 받는다고들 하지만 과거의 것을 빌려와서 재사용하는 일은 스타일링일 뿐, 디자인은 과거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의 기술과 생활에 연결되어 있어야 합니다.”

꺼떡하면 ‘온고지신(溫故知新)’을 내세우며 옛것에 대한 미련을 내려놓지 못하고 살아온 나만을 향한 진언(盡言)이라 들렸다. 그리고 자신에 대한 말까지 웃음과 함께 덧붙였다. “사람들은 뭔가가 유명해지면 거기에 꼬리표를 붙이고 싶어 합니다. 나도 각진 네모난 향수병도 만들어 봤고 흑백조의 컬러도 쓰지만, 사람들은 곡선이나 분홍 같은 것들만 기억합니다. 꼬리표가 붙는 건 싫으니 이제 핑크색 옷부터 그만 입어야겠습니다.” 카림의 패션 이미지인 ‘핑크’도 벗어 던지겠단다.


황해가 먼 옛날에는 육지였단다. 신생대 제4기에는 해수면이 현재보다 100m 이상 낮았기에 평균수심 44m인 황해는 한반도와 중국대륙 사이의 평탄한 육지였다가 해빙기에 해수면이 높아져 바다가 된 것이란다. 그래서 그런지 ‘동해’란 이름을 두고는 말도 탈도 많지만 ‘황해’에 대해서는 뉘 하나 다른 얘기가 없다. 또 수심으로도 알 수 있듯이 대륙붕의 발달이 뚜렷하며 황허에 의해 운반된 중국 내륙지방의 황토 때문에 물색은 비록 누렇지만, 전 세계적으로 멸종위기에 처한 물새 47%의 주요서식지인 갯벌은 각종 어패류의 보고이고 드넓은 염전이 발달되어 있을 뿐 아니라 조기, 황돔, 갈치 등이 잡히는 귀한 어장이며 작은 섬들도 많아 어류의 귀한 산란장으로도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단다. 이제 그 황해를 건너 오가는 것은 마음만 있는 사람이라면 반나절의 일이다.


를 창간하며, 목차 페이지를 할애해 우리 생각을 적어 왔다.

첫째, 無我_ MAGAZINE, 가 가진 것은 백지 뿐이다.

둘째, 利他_ DESIGNER, 는 디자이너들에 의해 채워진다.

셋째, 爲全_ READER, 는 독자들을 위한 것이다.

모든 잡지인들이 마음에 새겨야 할 영구불변의 덕목이어야 한다는 게 내 지론이다.


시 한 편에 삼만 원이면 너무 박하다 싶다가도, 쌀이 두 말인데 생각하면 금방 마음이 따뜻한 밥이 되네.

시집 한 권에 삼천 원이면, 든 공에 비해 헐하다 싶다가도, 국밥이 한 그릇인데,

내 시집이 국밥 한 그릇만큼 사람들 가슴을 따뜻하게 덥혀줄 수 있을까 생각하면 아직 멀기만 하네.

시집이 한 권 팔리면 내게 삼백 원이 돌아온다.

박리다 싶다가도 굵은 소금이 한 됫박인데 생각하면 푸른 바다처럼 상할 마음 하나 없네.

시인 함민복(咸敏復)의 <긍정적인 밥>이란 시이다.


잡지 하느라 힘이 든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내가 부족했던 것 또한 진실이다. 다시 좀 더 나은 다음 호를 위해 마음을 다져야겠다.

난 책장이 부족하다!


又一年过去了,我们迎来了创刊34周年。虽然每年都做创刊特辑的报道企划,说要全面改版,自以为在努力求变,可翻看一下1986年创刊后发行的396本杂志,究竟发生了哪些变化?——连我自己都无法给出明确的回答。和1986年10月出版的178页创刊号相比,现在的杂志在页数上多出了100多页;用最近的标准来看,设计项目的水平有了提升,但这主要是设计师们的功劳;外国项目和各种信息的量也有所增加,这不过是得益于国际化交流的活跃;在大同小异的框架里,呈现出几乎原地踏步的铁饭碗状态,是不争的事实。

不管怎么说,介绍能代表《INTERIORS》的项目的报道大致可以分为《PROJECT》、《WORKS》和《INTERNATIONAL》等几个栏目。但如今,连“世界化”这个词都叫人感到过时,让人不由得开始自省,以国籍为优先的标准让韩国设计师安于现状,以领土为中心的标准让韩国设计师变得偏执狭隘,年龄世代的标准则让韩国设计师傲慢起来,规模价值的标准则是让韩国设计师变懒惰的罪魁祸首。《INTERIORS》怂恿韩国设计师安于做井底之蛙——这是一本用深刻说辞包装起来的陈旧杂志。因此,我们必须要做出改变! 


33岁的年纪,我有了一个16个月大的孩子。虽说最近晚婚是大势所趋,这样的年纪也并不算晚,但静静地望着孩子,我的心中既有欣慰又有些担心,不禁轻叹出声。现在的孩子都是这样,喜欢咿咿呀呀地说话,偶尔也会一脸严肃、一板一眼地阐述自己的想法,但怎么看都觉得个子比隔壁家的闺女矮上两个指节,叫人暗自担心。更叫人伤心的是,虽然现在不愁三餐吃喝,但怎么都觉得孩子的成长环境要比他爸爸那时候要艰难得多,总觉得对不住他,但这也是他的命——就这么一边琢磨着,一边轻拍着熟睡的小家伙。

我要说的并非老来得子,而是我作为出版人,看待去年2018年7月创刊后即将迎来第16期的《INTERIORS CHINA》时的真实想法。虽说只是坐飞机还不到两小时的距离,我每月都要往返北京和首尔之间两三次,尽心尽力培养着它,但作为一个语言和文字都不通的外国人,要说没有苦衷那是骗人。但因为有很多相识的中国设计师把这本杂志当做自己的事情,不遗余力地给予我们帮助,才使得《INTERIORS CHINA》逐渐站稳了脚跟。然而前路漫漫、困难重重,我们依然绞尽脑汁,终日纠结于各种烦恼之中。


虽然此前偶有往来和交流却不成规模,但我们追求的名分是希望《INTERIORS CHINA》成为两国设计师之间坚实的桥头堡,开启中韩空间文化的新篇章。在那个高高在上的世界里,忙于谈论表面上的政治和经济,而在底层的世界里,绵延至今的中韩之间的历史脉络和文化交流似乎一刻也未曾中断过,其中存在着延续至今的必然关系。此前确实有过百年间无可奈何的断交,《INTERIORS CHINA》的目的是通过东亚文化艺术发展和繁荣的交流,共同引领文化的复兴。尽管两国的国土面积和人口相差数十倍,但两国都有各自突出的优点和缺点,我相信只要取长补短,就能够迸发出新的力量,创造出世界文化的飞跃。这并非我个人的想法,是很多此前往返于黄海两岸,对两国多有了解的资深设计师们由衷的期盼。


不久前出席一场活动时,我遇到了老朋友凯瑞姆·瑞席,他的一番话对我如同醍醐灌顶。“家具公司正在减少书架的生产比重,因为人们不买书了。”这不过是他随口提到的一句话,却深深刺入我的肺腑,让我觉得热血沸腾。他接着说道:“假设我们要设计一把椅子,需要考虑些什么呢?要么就做成三分钟就能生产一把的廉价产品,要么就做得足够轻,可以轻易地用快递发走四五把……都是与过往历史毫无关联的创意——这就是设计。虽说要获取灵感,借用过去的东西重复使用,但也仅仅是风格上的事情,设计应该与当下的技术和生活紧密相连,而不是执着于过去。”

动不动就把“温故知新”挂在嘴边,放不下对旧事物的迷恋——他的这番话,仿佛是说给这样的我听的谏言。他还笑着谈到了自己:“有些东西一旦出名了,人们就会想给它贴上标签。我也设计过棱角分明的方形香水瓶,用过黑天鹅的配色,但人们只记得曲线或粉红色的东西。不想再被贴上这样的标签,我就得从不穿粉色的衣服开始做起。”也就是说,凯瑞姆要摆脱自己的时尚标志——“粉红色”。 


黄海在很久以前曾是一片陆地。据说,新生代第四纪时,海平面比现在低100多米,平均水深44米的黄海曾经是中国大陆和朝鲜半岛之间的平坦陆地,解冻期海平面升高,才变成了汪洋。也许正因如此,虽然人们对韩国的“东海”这个名称颇有微词,但对“黄海”却没人多说什么。此外,从海水深度也可以得知,黄海大陆架的发展十分明显,虽然中国内陆地区的黄土经黄河入海使得海水呈现出黄色,但这里的滩涂作为全世界47%濒危水鸟的主要栖息地,不仅可以看到各种各样的鱼贝类,拥有广阔的盐田,还是能够捕获到黄花鱼、黄鲷、带鱼等鱼类的珍贵渔场。黄海还拥有众多小岛,具备作为鱼类珍贵产卵地的优良条件。如今有意人往返于这片黄海,只需半天功夫。 


《INTERIORS CHINA》创刊时,我在目录页面里用了宝贵的三页篇幅,写下了自己的三点想法。

一、无我_MAGAZINE,《INTERIORS》拥有的只是一堆白纸。

二、利他_ DESIGNER,《INTERIORS》是由设计师们来填满的。 

三、为全_ READER,《INTERIORS》是写给读者们看的。

这些永恒不变的品德,所有杂志人都应该铭记在心——就是我一贯的主张。 


一首诗三万韩元,觉得太不值了,但把它想成是两斗米,心就立刻暖成了一碗热饭。

一本诗集三千韩元,和花费的心血相比,觉得太不值了,其实就是一碗汤饭的钱,

想想自己的诗集能不能像一碗汤饭一样让人觉得心里热乎乎的,似乎还差得很远。

卖出一本诗集,我能拿到三百韩元。

觉得太不值了,但把它当成一瓢粗盐,我的心便像湛蓝的大海一样不再有半点忧伤。

——这是韩国诗人咸敏复的诗作《积极的米饭》。


做杂志辛苦是事实,但我有不足之处也是事实。为了把下一本月刊做得更好,我必须下定决心。

我的书柜不够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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