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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IORS

格 디자인 / “格”设计

없음

돈 없는 사람도 있다. 집이 없는 사람도 있다. 못 배운 사람도 있다.

힘이 없는 사람도 있다. 못 생긴 사람도 있다.

멋진 옷 한 벌도 없는 사람은 많다. 

하지만 格이 없는 사람은 모두를 가졌어도, 다 없어 보인다.

디자인도 똑같다.


有的人没钱,有的人无家可归,有的人不学无术,

有的人弱小无力,有的人相貌不堪,

有的人没有一件拿得出手的衣服。

但如果一个人没有“格”,就算拥有一切,看起来仍是一无所有。

设计也是如此。



박인학│발행인

朴仁鹤│出版人



더없이 아름다운 결실의 계절 가을이 가고 기나긴 겨울에 접어드는 것은 모든 이들에게 똑같은 안타까움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봄은 그저 싱숭생숭 하기만 하고, 여름은 마냥 허둥지둥 대기만 하며, 가을은 왠지 갈팡질팡 하다 보니, 그래도 나름 오목조목한 겨울이 호젓하게 깊은 생각을 하기에는 최적의 계절인 듯싶다. 해를 따라 어느덧 훌쩍 저물어가는 이 시간 속에서 우리의 언저리를 무심코 둘러보았다.


인간이 거주하는 공간은 단순한 형태가 아닌 의식주를 영위하기 위한 사회문화적 산물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제껏 단지 “어디에 사나?”만 걱정했지 “어떻게 사나?”를 헤아리는 것은 간과했던 듯싶다. 이제 디자이너는 한 채의 집을 지으며 멋진 ‘House Design’만이 아닌 행복한 ‘Home Life’를 창출해야 한다는 각오로 우리의 공간들을 위한 정신문명적 근원을 돌아봐야 하겠다.


산업사회 이후의 자본주의 속에서 살아온 우리 인간들은, 無에서는 有, 有에서는 量, 量에서는 質을 추구하더니, 質에 충족한 현대인들은 風만을 추종하고 있다. 더욱이 소비지향 경제사회에 국제주의, 정보주의의 야합이 양산한 21세기의 키워드는, ‘대중’이란 가면을 쓰고 경향(Trend), 유행(Vogue), 인기(Popularity), 스타일(Style), 붐(Boom)만이 자기 자신을 위한 최상의 가치라고 표방하며 어그러져 버린 ‘문화’란 단어이다. 이러한 와중에, 엄청난 속도의 신매체에 의해 그 어떤 판단이나 평가할 기회조차 없이 닥쳐오는 온갖 문화정보들을 무방비로 받아들이며 살고 있는 개인과, 이를 남용, 오용, 악용하는 사회와 국가들, 그리고 이를 생업으로 하는 문화 분야의 종사자들은, 인류사 만고불변의 금자탑인 문화를 개인 만족만을 위한 비천한 욕정의 산물로 만들고 있다. 이제는 風에서 格, 格에서 我, 我에서 全, 全에서 共을 목적으로 해야 한다. 특히 風이 지배하는 현시대적 동향은, 어찌 보면 우리 디자이너들에 의해 조장된 것임을 부정할 수만은 없다. 원래 디자인이란 개인을 위한 자족의 목적을 넘어 모두를 위한 공유를 지향하는 공기와 같은 가치가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格을 되찾아야 한다! 그간 우리가 저버리고 살았던 禮와 道의 정신을 온고지신의 자세로 돌이켜보며, 이제 다시 고결한 문화를 되살려야 한다.


그럼, 이 시대의 급선무인 격(格)이란 무엇인지 생각해보자. 서양에서는 格을 ‘Dignity:존엄’ 정도로 견주겠지만, 우리 동양인들로서는 완전히 공감할 만한 단어를 찾아볼 수가 없다. 格이란 ‘가지치기를 하여 똑바로 자란 높은 나무’란 뜻이기에, 높게 자라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를 위해 잔가지를 스스로 쳐내는 각고의 노력인 개인적 인품과 사회적 의식이 전제되어야 한다. 단지 내 위상이 드높다고 格을 갖춘 것은 아닐 뿐더러, 格 안에는 인정이 넘치는 운치도 함께 머금어야 한다. 즉 아래에서 위로 올려다보아야 하는 낙락장송의 고고한 위용이 아니라, 위아래 없는 듯해 아무나 기어오를 수 있는 느티나무의 널찍한 품과 같은 게 우리가 진정으로 기다리는 格이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나무의 모양새 문제가 아니다. 땅 위에 드러난 나무의 진가는 외양이 아닌 그 땅 아래 있는 뿌리에 있다. 뿌리는 곧 영혼과 정신으로부터 비롯된 의식이요, 철학이다. 지금의 문명들을 보면 하나같이 뛰어난 자태를 갖고 있는 듯하지만 문제는 품고 있는 이념과 사상이 빈약하다는 사실이다. 온갖 인공비료와 숱한 가지치기로 그럴듯한 모양새는 만들어 놓았지만 작은 비바람이나 짧은 가뭄에도 휘청거리며 메말라 버리고 마는 실뿌리를 가졌다는 것이다.

작금의 디자인은 언뜻 보면 더없이 화려해 보일지 몰라도 격조의 기품은 도대체 찾아볼 수가 없는 게 대다수이다. 겉에 나붙은 브랜드의 상표나 디자이너의 지명도에 의해 나 자신에게는 걸맞지도 않는 외식(外飾)을 일삼고 있을 뿐이다. 단지 지명도가 있다는 디자인들을 소유하고 있음을 과시할 뿐, 진정 품격 있는 디자인적 가치를 보전하고 있지 못한 이들이 태반이다. 이는 그 사용자들의 잘못이라기보다 이러한 풍토를 양산한 디자이너들의 몰지각과 비양심이 원흉이라 하는 게 진실일 것이다. ‘44’와 ‘55’ 사이즈의 형형색색만 내걸어 놓는 패션디자이너, ‘콘셉트카’랍시고 해괴한 외관만 내세우는 자동차디자이너, 실생활은 안중에도 없는 보기에만 번드르르한 ‘모델하우스’로 현혹하는 공간디자이너들이 바로 그들이다. 물론 나 개인의 편협하고 옹졸한 독설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디자인을 내놓기 전에, 전 세계를 휘젓고 다니기 전에 얼마나 많이 하늘과 땅과 물을 물끄러미 바라봤고, 키워드를 잡기 전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호젓이 만나 봤고, 이미지를 서치하기 전에 얼마나 많은 책장을 세세히 들춰 봤고, 마우스를 움직이기 전에 얼마나 많은 스케치를 밤새워 그려 봤는지, 나직하게 물어보고 싶다.

오늘날의 많은 디자인들은 말초적 感으로 시작해 色으로 유인하고 形으로 현혹해서 결국은 돈의 유희로 결정지으려 하는 옐로문화(Yellow Culture)적 노선 위를 위풍당당하게 내달리고 있다. 심지어는 디자이너에 대한 평가마저도 사회명성의 높고 낮음, 회사규모의 크고 작음, 수주물량의 많고 적음, 거래상대의 높고 낮음, 매출수익의 많고 적음만을 기준으로 열거하고 있다. 


‘格 디자인’을 이끌어갈 디자이너는, 인간 본연에 대한 생각으로 시작해 사회를 고찰하고 더 나아가 자연과 미래에 대한 배려까지 잊지 않는 신실한 사랑의 전도자가 되어야 한다. 하기에 ‘格 디자이너’는 중하고 엄한 지존이 되어서는 안 된다. 외유내강의 자세로 하후상박으로 대하며 은인자중하여 진정으로 품격을 갖추어야 하고, 혹시 부귀와 명예를 얻더라도 오만불손한 후안무치의 안하무인이 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또한 절대 곁에 두지 말라는 ‘무정(無情) 무례(無禮) 무식(無識) 무도(無道) 무능(無能)의 五無人’에 대한 그럴듯한 풍설도 항상 명심하며 끊임없이 제 자신을 갈고 닦아야 한다.


빈털터리로 나서 사글셋방 한 칸이라도 있으면 하다 전셋집을 전전하던 끝에 이름 석 자 박은 문패를 걸 내 집칸을 마련하고 이젠 내로라하게 멋들어진 집까지 소유하며 아등바등 살아온 이도, 결국 깨닫게 되는 것은 멋진 집(Beautiful House)에 대한 부질없는 발버둥이 아닌 행복한 집(Sweet Home)에 대한 바람이었음을 깨달을 게다.

벽 바닥 천장으로 된 주택 만들기를 넘어 그 벽 바닥 천장 사이에 있는 가정의 분위기를 위해 格을 가진 디자인을 펼쳐 주자. 인격을 갖추지 못한 인간은 가격이 없는 물건과 같다.

‘동방(東)’은 나무(木) 뒤에서 해(日)가 뜨는 풍광을 가진 땅이란다. 우리가 올곧은 나무가 되어 격조 있는 새 문화를 낳는 찬연한 태양이 되자.


돈 없는 사람도 있다. 집이 없는 사람도 있다. 못 배운 사람도 있다. 힘이 없는 사람도 있다. 못 생긴 사람도 있다. 멋진 옷 한 벌도 없는 사람은 많다. 

하지만 格이 晩秋佳景的季节过去,进入漫长的冬天,给所有人留下的是同样的不舍。但春天总是让人心绪难安,夏天又太过仓促慌忙,秋天莫名的茫无头绪,只有称得上小巧玲珑的冬天,还算是能够寂静深思的最佳时节。在这个不知不觉间随着太阳转瞬而逝的时光里,我无意间环顾了我们的周围。


人类居住的空间并非单纯的形态,而是旨在经营衣食住的社会文化产物。但一直以来我们只是苦恼 “住在哪里?”却似乎忽视了去思考“如何生活?”如今,当设计师造出一间房子时,不应该仅仅是精美的“House Design”,而应该以创造幸福的“Home Life”的觉悟来审视为空间服务的精神文明的根源。

生活在工业社会之后的资本主义中的人类,追求的对象从无到有,从有到量,从量到质,如今已经满足了“质”的现代人,正在追求“风”。更何况消费导向性的经济社会在搭上了国际主义和信息主义后,所量产出的21世纪的关键词是戴着名为“大众”的面具,标榜唯有倾向(Trend)、流行(Vogue)、人气(Popularity)、风格(Style)、热潮(Boom)才是自己的最高价值,扭曲了本意的所谓“文化”。在这种情况下,因为以超高速度更新信息的新媒体,连判断和评价的机会都没有就毫无防备地接受各种文化信息的个人,对此进行滥用、误用乃至恶意利用的社会和国家,以及以此为生的文化领域从业者,正将人类历史上亘古不变的金字塔——“文化”变成只为了满足个人卑贱欲望的产物。如今我们的追求应该从风演变到格,从格到我,从我到全,从全到共。尤其是被“风”所支配的当代动向,从某种角度来讲其实是我们这群设计师们助长的,这一点不容否认。设计原本的价值应该如同空气一般,超越满足自我的目的,旨在与所有人共享。为此,首先要寻回“格”!以温故而知新的姿态,回顾此前被我们所遗忘的礼与道的精神,让高尚的文化重获新生。 


那么就让我们来思考一下,这个时代的当务之急——“格”究竟是什么。在西方,格可以理解为“Dignity:尊严”,而对我们东方人来说,无法找到一个完全可以引起共鸣的词汇。所谓“格”指的是“修剪枝干,笔直生长的高大树木”,长得高固然重要,但前提是要有为此自行修剪旁枝的觉悟,以及刻苦努力的个人品质和社会意识。并非个人地位崇高就是拥有“格”,还应该具备“格”中充满人情的韵味。也就是说,我们真正期待的“格”不应是抬头仰视的落落长松的高傲威容,而是似乎没有高低之分,任何人都能爬上去的榉树宽阔的枝干。

然而问题并不在于肉眼可见的树木的外观。裸露在地面上的树木,其真正价值并不在外表,而在于深埋于地下的根。根才是源自灵魂和精神的意识和哲学。现今的文明看似个个都拥有卓越的姿态,但问题在于背后的理念和思想乏善可陈。用各式各样的人工肥料和频繁的修建打造出似是而非的模样,但实际上树根干枯无力,甚至经不住小小的风雨和短暂的干旱。 

最近的设计乍一看异常华丽,但大部分根本毫无格调和品味可言。不过是仗着贴在表面的品牌商标或者设计师的知名度,与我自身完全不相称的外饰罢了。他们中的大多数只是在炫耀自己拥有高知名度的设计,却没有拥有真正有品格的设计价值。而事实的真相是,这并非使用者的错,罪魁祸首是大批滋生出这种风气的设计师们的不自觉和良心泯灭。他们是只挂着形形色色的“XS”和“S”码的服装设计师,打着“概念车”的旗号一味追求怪异外形的汽车设计师,不把实际生活放在眼里,用看似流光溢彩的“样品房”迷惑购房者的空间设计师等。

当然,这也许只是我个人狭隘、偏颇的刻薄言辞。但在拿出你的设计之前,我只想低声问一句:“在你巡游世界之前,认真地凝视过多少天空、土地和水?在提取关键词之前,单独与多少人见过面?在搜索图片之前,仔细地翻看过多少书页?在滑动鼠标之前,彻夜画过多少手稿?”

如今有不少设计师以细枝末节的感开头,用色加以引诱,用形施以迷惑,最后在定为金钱游戏的黄色文化(Yellow Culture)路线上,威风凛凛地狂奔着。甚至在对设计师进行评价时,仅将社会名声的高低、公司规模的大小、订单量的多寡、交易对象的高低、销售额的多少作为标准。


将来引领“格设计”的设计师,必须是从对人类本性的思索出发,对社会进行观察,进而不忘关怀自然与未来的真正的爱的传教士。因此“格设计师”不能成为重要、严格的至尊。而是应该以外柔内刚的姿态,厚下薄上(对晚辈慈爱,对长辈严格),隐忍自重,具备真正的品格。就算获得了富贵和名誉,也应该警惕,不能变得傲慢不逊、目中无人。另外,还需要铭记关于绝对不应来往的所谓“五无之人(无情、无礼、无识、无道、无能)”的煞有介事的传闻,不断地磨练自己。 


一个穷光蛋,从租得起一间单间,到租下一整间房,再到买下挂着自己铭牌的房子,最后拥有了数一数二的漂亮房子,如此忙碌一生的人最终也会领悟到他所追求的并非对漂亮房子(Beautiful House)毫无意义的执着,而是对幸福之家(Sweet Home)的希冀。

让我们超越建造由墙面、地板和天花板构成的单纯房屋,在墙面、地板和天花板之间营造出家庭的氛围,展现具有“格”的设计。不具备人格的人,就如同没有标价的物品。

繁体字“東”是指拥有太阳在木之后升起的美景的土地。让我们成为笔直的大树,成为孕育有格调的新文化的灿烂太阳。


有的人没钱,有的人无家可归,有的人不学无术,有的人弱小无力,有的人相貌不堪,有的人没有一件拿得出手的衣服。

但如果一个人没有“格”,就算拥有一切,看起来仍是一无所有。

设计也是如此。없는 사람은 모두를 가졌어도, 다 없어 보인다. 디자인도 똑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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