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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둥이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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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좋아 백년대계지, 하루 벌어 하루 먹여 살리기에도

헐떡거리셨던 우리의 아버지 어머니셨다.
‘초가집도 없애고 마을길도 넓히고’만이 우리의 당면과제였다.
티끌이라도 모아 태산을 만들어 보겠다는 근검절약의 정신이 있었기에,
오늘날의 우리나라가 있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대표 박인학

 

70세인 七旬(칠순)을 두고 예전부터 희귀(稀貴)하다 하여, 古稀(고희), 稀年(희년), 稀壽(희수)라 했다. 물론 우리 나이로 일흔 살을 이르는 것이 칠순이니, 만으로 칠십 번째인 70주년과는 한 해 차이가 나는 것이고, 만으로 70인 일흔한 살은 80을 바라보는 나이라 하여 망팔(望八)이라 한단다. 여하튼 칠십여 년이 지난 과거지사를 끊임없이 기린다는 것이, 매우 진기한 일인 것만은 분명한 듯하다.
광복(光復), 말 그대로 빛을 되찾았다는 말이다. 올해의 광복절이 우리나라가 일제(日帝)의 강점(强占)으로부터 해방된 지 70주년이 되는 날이다. 그런데 더없이 아쉬운 점은 ‘해방’이란 단어 자체에 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가 없다. 1919년의 상하이(上海)로부터 항저우, 자싱, 전장, 난징, 창사, 광저우를 전전하다 마지막 으로 충칭(重慶)에 이르기까지 설립했던 임시정부를 거점으로 수많은 항일투쟁과 국내에서의 독립운동은 꾸준히 이어졌지만, ‘해방’이란 ‘구속이나 억압, 부담 따위에서 벗어나게 됨’을 의미한다니, ‘쟁취’ 같이 싸워서 이뤄낸 능동이 아닌 뭔가 수동적인 듯한 느낌을 저버릴 수 없음이 못내 안타까울 뿐이다.그러나 ‘끝이 좋으면 다 좋다(All’s Well That Ends Well)’라는 셰익스피어 희곡의 제목처럼, 너무나도 미력하기만 했던 우리 민족은 광복 후 칠십 년의 역사 속에서 그 어느 나라도 이뤄내지 못했던 실로 놀라운 발전과 성장을 이룩하였다. 정녕 ‘기적’이란 단어만으로는 부족한 전무후무하다 할 만한 인류사 불세출의 위업이었다.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더니, 1945년 을유년 닭의 해에 광복은 이루어졌다. 그러나 광복의 그 빛으로 드러난 것이라고는 처절함들뿐이었다. 일제는 전쟁말기에 이르며 군수물자가 부족해지자, 부엌의 솥뚜껑부터 심지어 밥상 위 숟가락까지 수탈해갔다. 남겨진 것이라고는 너무나 참담한 심경과 너무도 참혹한 광경뿐이었다. 더욱이 그리 넓지도 않은 우리의 한반도 땅덩어리는 승전 열강들의 교활한 이해타산에 휘말려 덩그러니 반 토막이 나고 말았다. 비비고 일어날 언덕은 고사하고, 딛고 설만한 땅바닥조차도 엉망의 진창이 된 몰골이었다. 삼년에 걸친 미군정(美軍政)을 거쳐 1948년에 이르러서야 ‘대한민국’이란 국호의 자유민주주의정부를 수립하였지만, 말이 민주주의였지 그 사회적 혼란의 정도는 거의 무정부와 다름없는 상황이었다. “코리아에서 민주주의 정부를 수립하겠다는 건, 돼지우리에 장미를 심는 것과 같다!”는 게, 서방 지도자들의 하나같은 목소리였다. 그리고 들이닥친 아수라장 정국의 결말은 가혹한 동족상잔의 전쟁이었다. 남들의 전쟁에 치이고 내 전란에 망가진 우리의 강산에 남은 것은, 망연자실한 채 멍하게 주저앉아 있는 상처투성이의 기진한 혼백들뿐이었다.

 

 

‘기적’이란 단어가 있다면 기적은 이루어질 수 있다 했던가? 그 누구도 상상할 수 없었던 불가사의한 발전과 도약의 대업이 바로 그 폐망의 땅 위에서 일어났다. 그 과정 속에 파란만장의 우여곡절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어쨌든지 우리 대한민국은 파죽지세의 승승장구를 거듭하며 세계 속의 경제대국이자 문화강국인 코리아로 다시금 우뚝 치솟았다. 진정한 광복의 빛을 우리의 힘으로 이룩한 것이다. 단 한 치의 앞도 볼 수 없었던 칠흑 같은 어둠의 구렁에서 남은 것이라곤 오직 몸뚱이 하나뿐이었던 우리의 힘으로 오늘의 이 광명을 움켜잡았던 것이다.

 

 

말과 글, 이름 석 자까지 빼앗겼던 비운의 민족이었지만, 우리는 결국 다시 일어섰다. 그 누가 뭐래도, 더없이 자랑스러운 나의 조국 대한민국이다. 그러니 이제 지난 광복을 운운하는 것은 이 시각에서 그만 내려놓자. 어제에만 연연하고 있기에는 곧 지나가 과거가 될 오늘이 너무 아깝다. 또한 빛이 있으면 그림자도 있고, 낮이 있으면 밤도 있는 건 영원불변의 철칙이다. 광(光)은 화(火)와 인(人)이 더해진 것이지만, 광(光)에 의한 빛인 명(明)에는 휘황찬란한 해(日)도 있고 어슴푸레한 달(月)도 있다. 일월성신(日月星辰) 아래 사는 이 세상 모두가 그랬듯이, 우리도 이제부터는 암(暗)의 시간을 지나가야 할지도 모르겠다.
손바닥이 갈라지고 발이 부르튼 채 앞만 보며 걷고 걸었고, 험산준령이 나타나면 이름도 묻지 않고 넘어서며 이 자리에 이르렀다. 이제부터 올라야 할 산은 백두대간 중의 여느 봉우리가 아닐 성싶다. 세계의 산정(山頂)들을 목전에 둔 이 마당에서, 이대로 주저앉아 드러누울 수는 없다. 얼마나 걸릴지는 몰라도, 당분간은 어지간히 고생할 것도 각오해야 할 게다. 프랑스의 등산가 알랑 드 샤뗄리우스가 말했다. “등산은 길이 끝나는 데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러나 되돌아보니 우리에겐 평탄한 길도 없었고, 오직 산 너머 산뿐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왔다!

 

 

“도대체 제대로 된 건축이 단 하나도 없어!” 근자에는 유수의 유명 외국 건축가들까지 몰려와 사방팔방에 세워대고 있긴 하지만, 우리의 개발시대에 우리 손으로 지은 건물들을 보면 ‘뺑끼’ 아니면 ‘타이루’가 고작이었다. 심지어 혹자는 왜정(倭政) 때 지어진 건물만이 그나마 ‘사조(思潮)가 있는’ 정통 건축물이란 말을 서슴지 않는다. 맞다! 그럴 지도 모른다! 그러나 당시로서는 그게 현실이었다. 말이 좋아 백년대계지, 하루 벌어 하루 먹여 살리기에도 헐떡거리셨던 우리의 아버지 어머니셨다. ‘초가집도 없애고 마을길도 넓히고’만이 우리의 당면과제였다. 티끌이라도 모아 태산을 만들어 보겠다는 근검절약의 정신이 있었기에, 오늘날의 우리나라가 있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해방둥이란 말이 있기에, 누가 있나 싶어 찾아봤다. 아직도 여전한 미모를 간직하고 있는 탤런트 선우용여가, 놀랍게도 바로 1945년의 8월 15일 수요일에 태어났단다. 그리고 1945년생으로는 이미 고인이 된 소설가 최인호와 여전히 왕성한 활동을 하는 가수 현철, 배우 임현식, 시인 수녀 이해인, 그리고 가수이자 화가인 조영남 등이 눈에 들어왔다.
“일사후퇴 때 피난 내려와 살다 정든 곳 두메나 산골, 태어난 곳은 아니었지만 나를 키워준 내 고향 충청도, 어머니는 밭에 나가시고 아버지는 장에 가시고, 나와 내 동생 논길을 따라 메뚜기잡이 하루가 갔죠~” 황해도 평산군 남천읍이란 곳에서 태어났지만, ‘내 고향 충청도’라며 목청을 높여야 했던 조영남의 노랫말이다. 그 어느 누가 아니라 모든 해방둥이들이 겪을 수밖에 없었던 비애가 느껴지는 한 폭의 애처로운 그림이다.

 

 

전체 지구에서 우리나라 땅덩어리가 차지하는 면적은 약 0.02%이며 바다를 제외한 면적에 비한다 해도 약 0.065%가 고작이라니, 반짝하고 볕들 시간도 정말 한순간이겠다. 하지만 오늘 우리가 누비며 주름잡는 세상은 한없이 드넓다.
그래! 우리는 전 세계의 빛살들을 찾아다니며, 불철주야 백야(白夜) 속만을 달려 온 영광(榮光)의 대한민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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