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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휴가, 잘 다녀오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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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권의 책을 읽고, 만 리를 걸은 후에 행하라.
바보는 방황하고, 현명한 사람은 여행한다.
사람은 필요한 것을 찾기 위해 온 세상을 여행하고,

집에 돌아와 그것을 찾는다.

 

 

박인학│발행인

 

 

“죄송합니다. 먼저 올라갈 게요!” 첫날이라고 다들 달린다는데, 혼자 방으로 올라왔다. 아침 비행기를 타고 나리타공항에 내려서 짐도 풀지 못한 채 <도쿄스타일하우징박람회>가 열리는 도쿄빅사이트전시장을 헤집고 다닌 데다, 서울에서 전작(前酌)의 곤비함을 짊어지고 온 까닭일 게다. 내일부터의 일정을 보니 이틀 동안은 온갖 쇼룸들을 찍고 다니다 마지막 날에는 짐을 싸들고 또 <인테리어 라이프스타일 도쿄>라는 전시회를 보곤 공항으로 간단다. 그래도 여행이랍시고 약간의 설렘도 있었는데, 이번에도 역시 완전군장 지옥강행군일 게 뻔해 보인다.
“죄송합니다. 조금 늦었습니다!” 김포공항에서 일행을 만나 초저녁 비행기를 타고 제주공항에 내렸다. 차에 실려 내린 곳은 공항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우리의 목적지인 호텔 사이트였다. 도면과 함께 부지를 이삼십 분 쯤 둘러보곤, 뜨내기 관광객이 아니라 현지인에게 유명하다는 한 횟집으로 향했다. 시작은 다금바리 시세와 한라산 소주가 말거리로 펼쳐졌지만, 이내 일 얘기로 이어지더니 종국에는 돈 이야기로 맺어졌다. 자리를 옮겨 그럴듯한 한 잔을 다시 부딪치면서는 약간의 일탈을 얻는 듯했지만, 호텔로 돌아오는 차안에서는 다시 그 프로젝트 얘깃거리들이 방점이 되고 말았다. 아침 해장국은 저명하다는 흑돼지고사리육개장을 뜨자는데, 그 밥상머리가 이번 행차의 종지부를 찍어야 할 자리일 것 같다.
<상하이인터텍스타일> 전람회를 보고, 광저우(廣州)로 넘어왔다. 꾸전(古镇)의 조명, 샤먼(廈門)의 석재, 둥관(東莞)의 가구, 포산(佛山)의 타일·가구·위생도기, 중산(中山)의 조명, 황푸(黃浦)의 원목, 판위(番禺)의 호텔용품, 선전(深圳)의 장식소품 등⋯ 오르락내리락, 들락날락, 동분서주(東奔西走) 남선북마(南船北馬). 말이 좋아 한 단지지, 하나하나가 우리나라의 분당이나 일산의 면적쯤은 돼 보이는 지역들이었다. 이제는 눈에 익은 데들도 제법 있지만, 볼 때마다 그 매장들의 숫자에 주눅이 드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일정을 마치면, 40도에 육박하는 폭염 속을 헤맨 몸뚱어리는 기진하지만, 그 사지(四肢) 수족(手足)에 50도를 넘어선다는 바이주(白酒)로 이열치열(以熱治熱)의 비법을 시도해본다.
이런 내게, “여름휴가, 잘 다녀오셨어요?”
‘왜 사냐건, 웃지요.’(김상용의 詩 ‘남으로 창을 내겠소’ 中) 그 언제나 그랬듯이⋯

아마, 지금 이 글을 적으면서 내 자신과 주고받은 자문자답은, ‘난 이번 여름에도 아니, 어찌 보면 이제껏 단 한 번의 여행도 해보지 못했다’는 무상한 나의 실토일 것이다. 항공마일리지는 100만이 넘게 쌓여 있건만, 그건 ‘박인학’의 심신이 탔던 것이 아니라 단지 우측 상단에 ‘M◯◯◯◯◯◯◯◯’이란 번호가 박혀 있는 여권만 실려 다닌 것이었다. 자고로 선공후사(先公後私)인지라?
1916년 개장하여 71년까지 사용했다는 여의도공항에 대한 추억까지는 없지만, 남산자락에 있던 자유센터에서 받았던 몇 시간에 걸친 삼엄한 분위기 하에서의 외국여행예절교육, 그리고 이를 빙자하여 외국에서 북한사람 아니 북괴(北傀)와 마주쳤을 때의 긴급대처법을 주지시켰던 섬뜩한 반공교육까지 받고서야 어렵사리 비행기에 오를 수 있었다. 김포에 이어 인천공항을 많게는 일 년에도 수십 번씩 뻔질나게 오가던 나였건만, 이제 와서 돌이켜보니 그건 진정한 여행이 아니었다. 단지 직무장소 이동을 위한 항공여객 이용 정도라 해야지, 지는 노을을 바라보며 차 한 잔 지그시 마셔 본 기억조차 없었던 것 같다.

한심했었다. 일단 떠나질 못 했다. 하늘에 오른다면 최소한 땅바닥 일부터 내려놓아야 하건만, 비행기에 들어서면서는 항상 부랴부랴 朝中東부터 챙겼다. 그것도 당장 신문을 펼쳐보자는 것도 아니고, 도착지에서의 KBS WORLD 방송과 함께 조국을 향한 안테나를 뻗쳐놓기 위한 처절한 발버둥이었다. 핸드폰에서는 시시각각으로 YTN 문자속보뉴스가 쏟아져 오고, 페북과 카톡은 제각각 특유의 율조로 나를 불러댄다. 육신만 나다녔지, 혼백은 여전히 북위 37°34′00″ 동경 126°58′41″에 있는 서울의 땅 위에서 헤매고 있었다.
말 그대로, ‘뛰어봤자 벼룩!’, ‘날아봤자 부처님 손바닥’의 신세였다.

1만242명. 관광 통계가 집계되기 시작한 1962년의 해외여행자 숫자인데, 작년은 물경 1608만684명이었다니 바야흐로 우리나라 인구 셋 중 하나는 날아오르셨단 얘기다. 할배부터 누나까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궁둥이가 들썩들썩하나 보다. 텔레비전을 켜도, 컴퓨터를 켜도, 멀면 ‘몇 백’ 가까우면 ‘몇 십’에 ‘~99,000원’이란 꼬리표를 단 여행상품들이 날뛰어댄다. 너나 할 거 없이 죽기 전에 해야 한다는 버킷리스트에서 최상위권을 선점하고 있는 것이 바로 여행이다. 심지어는 평생을 두고 고생해서 해보고 싶은 최종목표 또한 여행이란 얘기도 심심치 않게 들리곤 한다. 하지만 적지 않은 한국인들의 코스는 7박 8일에 9개국 ‘공항~버스~호텔’을 반복하며 사진찍기와 먹고 마시기만을 거듭하는 것이 거반이다. 셀카봉을 휘저으며 볶음고추장통과 소주병을 끼고 다니는 인터내셔널 유전취식(有錢取食) 그룹.

生 살아서 活 돌아다니는 게 ‘생활’이고, 그걸 달리 말하는 게 바로 ‘여행’이다. 굳이 다른 점을 들라면 저녁나절 발 뻗고 머리 붙이는 처소가 내 집이냐 아니냐 하는 차이일 뿐이다. 그렇다면 우리 공간디자이너가 하는 일이 바로 그 일상적 여정 속의 장소들을 만드는 것이니, 자연의 재현이 우리들이 해야 할 첫 번째 소명인 것이다. 물론 전능하신 조물주와 감히 견줄 수는 없겠지만, 나름의 형형색색을 만들어내는 그 과업이 우리에게 주어진 과분한 책무인 것만은 분명하다. 빛과 그림자 아래에 물과 뭍, 산과 강, 바람과 구름, 나무와 꽃을 그 공간 안에 옮겨 담아, 모든 중생들이 천사만감(千思萬感)을 누릴 수 있는 인조환경을 만들어주는 더없이 귀한 성업(聖業)인 것이다. 그러니, 디자이너는 떠나야 한다!

어디 가는데? 그건 별로 중요한 게 아니다. 여행의 의미는 저곳에 이름보다 이곳을 떠남에 있다. 그러니 집 떠나면 다 고생이란 말을 들으면서도, 그 고생길을 자초하는 게다. 讀萬卷書 行萬里路 독만권서 행만리로. 무릇 군자가 세상을 논하자면 ‘만 권의 책을 읽고, 만 리를 걸은 후에 행하라’라는, 명대(明代) 제일의 서예가이자 화가인 동기창(董其昌)의 말이 있다. 또 이런 말들도 떠돌아다닌다. ‘바보는 방황하고, 현명한 사람은 여행한다.’ 그리고, ‘사람은 필요한 것을 찾기 위해 온 세상을 여행하고, 집에 돌아와 그것을 찾는다.’ 그래, 나를 떠난 내가 되자!
“그냥 침대에서 죽기를 바랐다면 떠나지 말았어야 했다. 이 같은 생각은 언제나 확고했다. 자신의 침대에서 죽기를 원하는 사람은, 그래서 절대 그곳에서 벗어나지 않는 사람은 이미 죽은 것과 마찬가지라고⋯” <나는 걷는다>의 저자이자 평생 기자생활을 하다 예순둘 나이부터 여행을 나섰다는 세계적인 여행가 베르나르 올리비에(Bernard Ollivier)의 말이다. “당신의 침대를 조심해라. 대부분의 사람들은 침대에서 죽기 때문이다.” <톰소여의 모험>의 작가 마크 트웨인(Mark Twain)이 남기고 간 한 마디이다. 또 다른 나, 그자를 찾아 떠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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