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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IORS

세계박람회 ! EXPOSITION, ONCE in your life time?  [2012년 8월호 NO.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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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PO(만국박람회·세계박람회)를 국어사전에서 찾으면, ‘<경제> 세계 여러 나라가 참가하여 각국의 생산품을 합동으로 전시하는 국제박람회’라는 기본설명이 등장한다.

엑스포가 경제용어로 분류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는가?

실제로 엑스포는‘경제·문화올림픽’이라는 별칭을 갖기도 하면서, 인류의 역사에 수많은 신기술과 신제품을 제공하는 역할을 수행하며 세계의 경제와 과학의 발전에 커다란 영향을 끼쳐 왔다. 엑스포는 전화(필라델피아, 1876), 자동차(앤트워프, 1885), 비행기(세인트루이스, 1904) 등의 실용화에 기여하며 인류 문명의 발전을 촉진하는 계기가 되어 주었다.

초기(1851년~1930년)의 박람회는 국력과 신기술을 과시하고 발전을 자축하는 것이 주목적이었다. 1931년 이후의 근대 박람회는 도시를 개발하고 건설하는 실험정신에 의한 것들이 주축을 이뤘다. 1991년 이후 현대의 박람회는 인류 공동의 관심사를 모색하면서 주로 재활용과 재생에 대하여 관심을 기울였다. 이와 같이 새롭게 변화해가는 주제들은 산업혁명, 자동차 혁명, 통신과 정보의 혁명, 환경 혁명 등 인류사의 중요한 흐름과 밀접하게 관련하고 있다. 그리고 바야흐로 본격적인‘4G 박람회’의 시대로 접어들어야 하는 시점이다.

엑스포는 인류가 이룩한 과학적, 문화적 성과를 축복(celebrating)하고 새로운 미래상을 제시하여 인류공영에 이바지하고자 하는 세계인의 축제다. 올림픽과 비교하여 기간은 2-5배, 소요예산은 10배, 관람객수는 20배 정도에 달하는 이 행사가 가지는 의미는 결코 작지 않다.

이 거물급 행사의 시작은 산업혁명의 성공을 배경으로 이루어졌다. 최대의 공업국가로 성장한 영국은, 산업혁명 성공 이후 다양하고 새로운 기술과 문화가 양산되고 있었으며 다른 나라들과 활발한 교역을 펼치고 있었다. 1851년 5월 영국 전역과 유럽 대륙에서 찾아 온 수많은 관람객들은, 사실상 발달된 공업기술과 생산력을 가지게 된 영국의 위상을 목격해주러 온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중국, 페르시아, 터키 등의 아시아 3개국을 포함해 28개국이 참가하였고, 그 당시 영국인구의 3분의 1 가량에 달하는 인원이 방문하였으며, 200개의 악기와 600여명의 합창대가 동원된 화려한 개막식이 치러졌다. 그러나 정작 관람객들을 놀라게 한 것은 바로 1851피트 높이의 거대 유리 덩어리(Crystal Palace) 박람회장이었다. 전통적 형태의 건축물이 아닌, 철제구조물과 유리로 만들어진 빛나는 건축물을 보며, 나무나 돌로만 건물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은 투명하게 반짝이는 벽과 지붕을 가진 유려한 자태의 새로운 양식에 놀라움을 숨길 수 없었다.

이 작품을 만든 이 역시 전통적 의미로서의 건축가가 아닌 온실 설계가 조지프 팩스턴이었다. 빅토리아 여왕 시절부터 인기를 누렸었던 161년 전통의 그 유명한 PUNCH誌에 당시 수정궁을 묘사한 시가 실렸는데, 그 내용을 보면 영국인들은 정신이 홀린 사람들처럼 수정궁을 무척이나 좋아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이 건축물이 가지는 또 다른 의의는, Prefabrication을 대규모로 적용하여 성공한 최초의 사례라는 사실이다. 이 역시‘철’을 활용하여 일구어 낸 일이었다. 조립식이라는 특징에 의해 수정궁은 단기간에 만들어질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박람회가 끝난 후 각각 다시 해체하여 런던근교로 옮길 수 있었다. 수정궁은, ‘철과 석탄의 시대를 맞이한 산업혁명의 선두주자, 영국’을

상징하는 건물로서, 오래도록 영국인들의 사랑을 받았다.

전시 내용을 압도하는 건축물들은 박람회의 또 다른 흥미요소이다. 런던 박람회의‘거대온 ’만큼이나 인류역사에 큰 자취를 남기게 된 것이 또 있다.당시의 오피니언 리더 300인들로부터‘흉측한 새장’, ‘어리석은 바벨탑’이라는 혹독한 평을 들어야 했던 에펠탑은 오늘날 전 세계가 인정하는 파리의 명소이다.

『상상력의 전시장 엑스포』의 저자는, 세계박람회를 인류가 축적해 온 지식과 기술, 자본과 인력이 총동원된 문명의 전시장이라 표현하고 지도자들의 안목과 국력 과시 그리고 기업들의 야욕 등이 담겨 있는 중층 구조라고 이야기하면서 엑스포의 역사를 훑어보면 인류의 근현대사를 꿸 수 있다고 하였다.

세계박람회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와 맥을 같이 한다. 초창기의 박람회에서 인기를 독차지한 영역은, 영국의 공업기술과 생산능력을 웅변해 주는, 증기기관·콜트권총·수압식인쇄기·동력 직기·예초기 등과 같은‘기계들’이었다. 하나 같이 산업혁명의 주인공인‘철’과 관련된 것들이다. 영국에서 파리로 주도권이 움직이고 난 이후 프랑스에서 다섯 차례 박람회가 열리면서 엑스포는 첨단산업과 예술, 오락을 망라하는 문명 백과사전으로 격(格)을 바꾸게 되고, 20세기로 접어들어 세계경제의 중심이 미국으로 이동하게 되자 개최지 역시 미국에 집중되었었다. 그리고 1970년 오사카박람회를 기점으로 세계경제의 기운이 동아시아로 넘어오기 시작했다는 논평이 있었다. 그로부터 40여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1993년 대전엑스포에 이어 두 번째 세계박람회를 열었다. (두 가지 모두 중규모로 구성하는 전문박람회로, 인류활동 중 특정 부분을 주제로 선정하여 개최되는 공인 박람회 범주 내의 인정박람회(Recognized Exhibition)다.)

2012 여수박람회는‘해양’을 주제로‘연안의 개발과 보존’, ‘새로운 자원기술’, ‘창의적 해양 활동’의 세 가지 세부 분야에 대해 전시하였다. 무분별한 개발과 남획으로 인해 파괴·오염되고 있는 해양 환경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21세기 인류의 보고인 바다를 살리기 위한 지혜를 모으는 장(場)을 만들고자 하였다는 것이다.

이제껏 마음으로 생각하고 머리로 엮은 글이 많았지만, 이번엔 발도 움직였다.

몇 가지 사전 지식을 가지고 이른 아침 여수엑스포역에 내렸을 때, 1851년 5월 런던박람회의 개막일처럼 여수에도 비가 내렸다. 첫 눈에 들어 온 풍경부터 마지막 발걸음까지, 독창적이랄 수 없는 건축물들로 마음이 서운했다.

그 옛날 수정궁의 충격과 영광 그리고 여운을 떠올리며, 엑스포역과 건축물들의 수명에도 신경이 쓰였다.

주말 내내 비가 예고되었던 금요일이었으나, 지레 한 예상보다는 사람들이 많았다. 외국인 관람객들은 그다지 많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관람객들 중 압도적으로 눈에 띄는 것은 유아원생으로부터 고등학생에 이르기까지의 학생 단체관람객들. 전문가를 포함한 성인관객은 이미 많이 다녀갔을까? 더 마지막에 오려는 걸까? 과연 어느 정도나 다녀갔을까? 궁금했다.

꿈나무 관람객들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유난히 많았던 초등학생 단체관람객들은 몇 가지의 문제를 알렸다. 가벼운 단체관람방식과 관람태도. 이는 사실 어디에서나 늘 예상이 가능한 장면이다.

다양한 관심사를 가진 남녀노소들에 대응하려면 어떤 묘안이 녹아들어 있어야 할까?

참여와 몰입의 유발은 어떤 콘셉트와 과정을 가져야 하는 것일까?

그날 내 눈앞에서 벌어진 풍경과는 달리, 솔직한 나의 의심과 달리, 지금 당장은 커다란 효과가 없어 보일지라도 그들이 견문을 넓히고 다양한 영향을 받을 수 있었다면 참 다행이다.

미국의 북태평양철도가 태극마크를 달고 달리는 것은, 1893년 시카고박람회의 조선전시실 입구에 걸린 태극기를 보게 된 철도회사의 기술부장이 태극문양의 단순하면서도 아름다운 형태에 매료되어 회사에 적극 제의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처럼, 엑스포는 세상을 서로 만나게 해주고 생각의 폭을 넓힐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다.

과연 그날의 초등생들은 아버지가 되어 아들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게 될까?

“내가 어렸을 때 말이야… 엑스포를 관람했는데… 그곳에서의 경험이 나의 삶에 영향을 주었단다.”

가볍게 떠밀려 다니던 수많은 학생들의 가슴 속 어딘가에는 추억이 스며들어가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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