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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 시게마사 Noi Sigemasa

 

노이 시게마사 Noi Sigemasa

이럭저럭 사십년 가까이 인테리어디자인을 해왔습니다. 저의 디자인은 최초의 인스피레이션을 축으로 이미지를 만들어 가면서 아이디어를 정리하는 일이지요. 심플함을 추구하면서도 사람이 들어섰을 때따뜻함이 전해질 수 있는 그리고 재미있는 디자인을 하는 것에 마음을 두고 있습니다. 이것이 제 디자인의 방침이라고 할 수 있겠죠.

취재·임태희 l 정리·서영희

만나야 할 사람은, 언제 어디에서든 꼭 만나게 된다는 말이 있다. 나에게 노이 시게마사는 그러한 존재이다. 시간을 거꾸로 돌려, 1990년을 전후로 내 기억 속에 노이 시게마사는 없어서는 안 될 존재였다. 사실, 난 단한번도 그를 만난 적도, 그가 누군지 도 알지 못했으면서도 말이다. 인터넷이 발달하지 못했던 당시, 학생이 해외 디 자인에 관한 정보를 수집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 중 하나는 불법 해적판 수입서적이었다. 위법을 전제로 책장사 아저씨로부터 전해 받은 인쇄의 질이 조금 떨어지는 책 속에서 난 유난히 마음에 들게 반짝거리는 작품 하나를 만났다. 그러나 이 위험한 만남이 10여년 지난 지금 현실 속에서 이 루어 질 줄은 꿈에서도 생각하지 못했다. 나에게 위법의 오명을 남기게 한 그 책은, 지금 생각해 보면‘JCD DESIGN AWARD’와 함께 일본에서는 지금도 발간되는 그 책이 아니었을까 하는 확신에 가까운 추측을 해보는데, 아무튼 나 는 그 속에서 꼬물꼬물 아련한 형태로 벽면에서 시작하여 디스플레이가구까지 공간 가득 조명과 함께 피어오르는 뭔지 모를 가슴 가득한 기분 좋 은 행복함이 있는 공간과 조우했다. 그 이후 그 작품이 너무나 좋아서 과제를 하면서 흉내도 내 어보고, 스케치로 따라서 그려보기도 하고, 머리 속으로 3차원의 공간을 만들어 보면서 사진에서 보이는 공간 이외의 공간을 조합하며 상상하는 데에 많은 시간을 보낸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그 후 얼마의 시간이 지났다. 2년 전 어느 날, 향에 심취한 나에게‘니가 좋아 할 것 같은 향 가게가 있는데 같이 가볼래?’라 는 친구의 권유로 우연히 찾은 곳이 바로 <교토 키타야마 lisn>이었다. 숍에 들어가는 순간, 이 루어질 수 없는 사랑으로 내내 가슴 아픈 추억을 안고 사는 운명적인 첫사랑의 여주인공처럼 난 그렇게 전율하듯이 숙명의 재회를 했다. 1988년 작품이니 약 15년의 세월, 시간의 손때가 디자인 을 촌스럽게도 할 법한데, 여러 군데 디자인이 바 뀌어 변질된 공간이 되었을 법도 한데… 내 머리 속은 잠시 혼란스러웠다. 바로 그 상상의 공간이 그대로 존재하고 있음에, 아니 그것보다 사실상 처음 만난 그 공간이 내 상상을 실망시키 지 않음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러한 개인적 인 기억의 편린으로부터 그렇게 노이 선생과의 긴 인연이 이제야 시작되었다. 노이 시게마사는 1944년 오사카에서 태어났다. 젊었을 적부터 그 끼는 숨길 수 없는 모양인지, 일본 전역의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미술 운동 <구 체미술> 활동에 큰 관심을 가지게 되어 <구체미 술>판에 기웃기웃 거리게 된다. 덕분에 미술가 무카이 슈지의 작품제작을 돕는 등 예술의 자유 로운 표현의 즐거움을 만끽한다. 그 이후 윈도우 디스플레이, 인테리어디자인 등 이런저런 일을 돕다가‘인테르나 카가야’에 입사하여 실무 경험 을 쌓는다. 이러한 와중에도 건축가 안도 타다오 와 만나 그의 사무실을 출입하면서 더 다양한 경 험을 쌓는다. 1973년부터‘인테리어 디자인 사무실 Nob’에 서 실무를 쌓고, 1974년에 독립하여 주식회사 ‘지팩’을 설립하여 대표자로서 디자인 일을 꾸려 나가다가, 1982년부터 독립‘노이 시게마사 디 자인 사무소’를 설립한다. 이렇게 하여‘노이 시 게마사 디자인 사무소’의 시대가 열리게 된다. 노이 시게마사의 경력과 경험은 실로 일본 인테 리어디자인 역사의 산 증인이라고 할 수 있다. 인 테리어디자인이란 개념이 정착하기 시작하는 고 도 성장기 1960년대 말부터 시작하여, 쿠라마타 시로를 중심으로 세계에서도 일본의 인테리어디 자인이 주목받기 시작하는 1980년대, 일본의 경 제 호황기로 많은 것들이 실현 가능했던 1990년 대 그리고 해외에서 왕성하게 활동할 수 있는 여건이 주어진 현재의 2000년대에 이르기까지 그는 그 긴긴 세월을 변함없이 열심히 현역으로 뛰고 있다. 그 덕분에 나는 종종 가난한 학생이란 탈을 쓰고, 밥이며 술을 얻어먹곤 한다. 비서가 없어서, 직원이 없어서, 핸드폰을 안 써서 종종 난처할 때도 있지만, 아직도 손수 모형을 만 들고, 스케치를 하고, 나이 어린 나와 디자인에 대해 논쟁을 벌이고, 아름다운 것을 보고 감동 받 고, 좋은 것을 보고 좋아하고, 슬픈 것을 보고 슬 퍼하는 모습을 보면서 멋진 것만이 결코 좋은 디 자인은 아니라는 것을, 눈으로 보이는 것만 디자 인하는 것은 디자이너가 아니라는 것을, 디자인 이 무엇인지를, 인생이 무엇인지를, 사람이 사람 답게 살아가는 것이 무엇인지를 배우는 것 같다. 여기에 우리가 나누는 잡담 중에서 일부를 소개 한다. 노이와 태희의 소소한 잡담을 통해서 한국 에 있는 독자들이 부디 노이 시게마사의 보이지 않는 디자인을 조금이라도 이해하게 되기를, 부 디 노이 시게마사와 유쾌한 시간을 천천히 나눌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자, 시작해 볼까?

 

 

  

 

 

 

 


LIM 인테리어디자인은 언제부터 시작하셨습니까?

NOI 1970년 오사카 만국박람회의 2~3년 전부터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LIM 어떤 특별한 계기가 있었습니까?
NOI 특별한 계기라기보다는 이전에 아르바이트로 윈도 디스플레이나 무대장치 등 관계하는 일을 하고 있었는데, 윈도 디스플레이보다 오랫동안 남는 일을 하고 싶어서 인테리어디자인 일 을 시작하게 되었죠.


LIM 일본에서 1970년대 인테리어디자인 업계는 공예사라던지 하는 이름으로 불려지던 시기 로‘인테리어디자인’이라는 단어조차 생소한 시대였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1970년대의 당 사자로서 그 당시의 인테리어디자인의 영역이라는 것은 어떤 것이었습니까?
NOI 그렇습니다. 겨우 인테리어디자인이라는 말이 생기려고 하는 무렵이었지요. 디자이너라 는 말도 아직 자리 잡지 못하던 시대였지요. 설계라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까 디자인 이라는 영역만으로 사무실이 성립되기 시작한 시기가 1970년대라고 할 수 있지요.


LIM 현재 일본은 설계와 시공이 완전히 분리되어 있습니다만, 1970년대만 하더라도 설계와 시공이 분리되지 않던 시기였군요.
NOI 상업공간을 하는 사람들이 즉, 클라이언트들이 겨우 디자인에 대한 이해가 되기 시작하 는 시기라고도 할 수 있지요.


LIM 선생님 이름의 독립된 사무실을 운영한 시기가 1970년대인가요?
NOI 몇 년 도라고 확실히 기억하고 있지 않습니다만, 아마 지금부터 26~7년 전 일겁니다.

 

LIM 현재 선생님 혼자서 모든 일을 꾸려나가고 계십니다만, 처음부터 혼자서 일을 할 결심으 로 사무실을 개설하신건가요?
NOI 처음에는 파트너가 있었습니다. 둘이서 시작하다가 점점 같이 일하고 싶다고 하는 사람 들이 늘어나서 나중에는 8명 정도가 같이 일을 하였지요. 물론, 제가 대표 디자이너로서 일을 해나갔습니다만, 사무실의 대표로서 사람을 관리하는 데에 많은 어려움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저는 조직을 운영하는 사람이나 돈을 관리하는 데에 아무런 관심이 없는 모양으로 디자인하는 것이 좋아서 디자인만 관계하고 조직의 운영은 다른 사람에게 맡기다 보니 점점 어려운 점이 많이 발생해서 그 이후로는 혼자서 일하게 되었지요.


LIM 갑자기 조금 엉뚱한 질문입니다만, 선생님이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이란 무엇입니 까?
NOI 솔직하게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사람입니다.


LIM 왜 이렇게 엉뚱한 질문을 하게 되었는가 하면, 선생님의 초기 작품부터 지금까지의 작품 까지 가장 본질적인 것은 변하지 않고 있는 듯한 인상을 받고, 그것이 제게 매력적입니다. 자, 가령 디자인 일이 발생했다고 해봅시다. 제일 처음 어떤 것부터 작업하십니까?

NOI 우선, 클라이언트를 관찰하는 일부터 시작합니다. 그 사람의 성격이나 분위기를 디자인 합니다. 클라이언트의 분위기를 형태로 옮기고 싶기 때문이지요. 물론 그 사람의 마음에 들 것 인가 말 것인가 와는 관계가 없습니다. 잘 살펴보면서 취향이나 분위기를 이미지로 디자인해 나갑니다.


LIM 제가 선생님의 작품에서 느끼는 변하지 않는 그 무엇이란 형태적인 요소라기보다 공간을 메우고 있는 기운이라고 해야 할까요, 공간을 채우는 밀도라고 해야 할까요, 그런 인상을 받은 이유를 지금의 선생님의 대답으로 조금 알 것 같습니다. 결국에 사람을 제일 먼저 생각하고, 사람을 위한 공간을 만들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NOI 저도 묻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만, 제 작품 중에서 에 대해‘약간의 긴장감과 약간의 푸근함이 참 기분 좋네요’라고 평하는 것을 이전에 들은 기억이 있습니다만, 기억하고 계시는지요? 아직도 그렇게 느끼시는지요?


LIM 물론, 기억하고 있고 아직도 그렇게 느끼고 있습니다. 극단적인 것이 공존하는 아슬아슬 한 경계에서의 평온함이라고 할까요. 를 설계하실 때 가장 중요한 컨셉으 로 무엇을 생각하셨나요?
NOI 을 설계할 때 표현하고자 하였던 것은, 향의 연기가 피어 올라가는 것이 공간감으로 표현되면 좋겠다는 발상이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그러한 향을 공간으로도 느 낄 수 있는 디자인을 하고 싶었죠.


LIM 어쩌면 긴장감과 푸근함이란 모순되는 개념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요, 에서 대립적인 감각이 공존하고 있는 것이 저로서도 불가사의합니다. 선생님이 디자인 하신‘바’에서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지요. 또 하나의 문화로 이해하여야 한다는 생각은 물론 듭니다만, 동양인인 저에게는 바와 같이 떠들썩하고 즐거운 분위기에서 스트레스를 해소 하는 것은 하나의 서양 문화로 여겨집니다.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방법으로 혼자만의 시간을 가 질 수도 있지요. 동양의 문화 중에서 이러한 것들을 간접적으로 이해하게 하는 것들이 몇 가지 있는데, 예를 들자면‘차도’라는 문화가 있겠지요. 일상에서 떠나 새로운 자신과 만나는 정신 적인 완화를 위해 약간의 긴장이 필요한 것이죠. 이러한 문화의 연장선에서 선생님의 디자인을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NOI 저는 인간에게 있어서, 지금 이곳에서 필요한 이외의 것들이 있음으로 인하여 피곤해지 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곤 합니다. 그러므로 필요한 것은 존재하고 필요하지 않는 것은 존재하 지 않는 공간이야말로 질리지 않고 피곤하지 않는 공간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는 공간의 간격이나 거리감, 조명, 색채, 물성 등 모든 것이 관련하겠지요. 가능한 한 하나만 튀는 것이 아니라 균형감 있게 연결되게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건 디자이 너의 감각과 경험에서 나오는 것이겠지요. 이러한 것들과 연결선상에서 저는 품격 있는 것을 더 가해지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LIM 어떤 의식적 인 변화가 있었나요?
NOI 아마도 보이는 그대로 느끼시면 될 것 같습니다. 척 보아서 아, 뭔가 재미있어 보이는 걸, 하는 것. 아마, 디자인 단계에서 이 재료가 아니면 표현되기 어렵겠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LIM 더군다나 2000년대로 들어 건축적인 작품이 늘어나지 않는가 하는 인상도 받습니다. 물론 실제 건축 작품도 늘어나게 됩니다만, 공간을 건축적으로 해석하고 계신 것은 아닌가 하 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의 공간이 지하가 많았다면 지상의 작품이 많아지면서 파사드라든지 창문 처리를 하게 되었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은데요.
NOI 모든 작품들이 연결되어 흘러가는 듯한 인상입니다. 좁은 공간이 좁지 않게 느껴진다던 지 1층에 위치한 공간에 들어가면서 문을 열면 바로 공간이 펼쳐지기보다는 길에서 내부 공간 을 연결하는 공간을 생각한다던지 하는 것들을 생각하게 된 것은 사실입니다.


LIM 제일 처음 건축을 포함해서 작업하신 것이 인가요?
NOI 사실 건축은 오래전부터 관련하고 있었습니다. 토요나까에 있는 <차리브라운>, <루트록 크>, <고다이> 등의 작품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작은 규모의 공간을 디자인 할 때가 가장 즐겁습니다. 그렇지만 처음부터 하고 싶은 것을 만들어 나갈 수 있다는 점에서 건축은 매력이 있는 것 같습니다.


LIM 어떻게 보면 이러한 폭 넓은 경험의 축적은 더 균형 있고 새로움을 주는 디자인을 가능하 게 하는 중요한 요소가 되는 것 같습니다.
NOI 그러한 의미에서 밸런스라고 하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감각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가르쳐 줄 수도 배울 수도 없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의식하지 않는 감각이라고나 할까, 어쩌 면 무의식의 감각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주 솔직하게 아름다운 것을 보고 아름답다 고 생각하는 기분이라고 설명할까요. 가령 다른 사람의‘저거 예쁘다’라는 이야기를 들은 다음 에야‘어, 정말 예쁘네’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의외로 많다고 생각합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에 버스를 기다리면서‘오늘 달이 아름답구나’라고 느끼는 감성이라고 해야 할까요. 자기가 느 끼는 것을 그대로 느끼고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LIM 느낄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 느낌을 표현 할 수 있다는 것. 이것이야 말로 디자이너가 가져야 할 가장 기본적인 자질이 아닐까요? 그런 점에서 보면 왜 선생님의 작품이 그저 멋진 공간이 아니라 감동이 전해지는 그리고 전율이 전해지는 공간으로 성립되는가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오늘 이렇게 긴 시간을 내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디자인하는 선생님의 작품이 한국의 독자들에게도 전달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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