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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개천 [1998년 10월호]

김개천은 1958년의 개천절날 제주도를 원적으로 부산에서 출생하였다 본명은 개천(開天)이며, 법명은 석천(石千)이고 호는 운재(雲齋) 또는 선암(禪岩)이다 먼저 그는 약관 24세 때부터 미국 로스엔젤레스, 알래스카, 사우디아라비아 등의 설계 사무소, 건설 현장, 학교 등지에서 건축 구도생활을 약 10년간 하였다 Pasadena Art Center College of Design에서 환경디자인을 수학하였으며 중앙대 대학원 건축학과를 졸업한 후 동국대 대학원 선학과 철학박사 과정에 있다 현재 건국대학교 건축대학원 겸임교수, 비평건축 편집위원으로 있으며 이도건축(二圖建築)을 통한 예(禮)의 행각을 행하고 있다 또한 현재 한국실내건축가협회와 한국실내디자인학회의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인테리어디자이너가 된 동기와 배경

개천절날 태어난 이유로 아버님이 지어주신 ‘開天’이라는 내 이름은 어린 시절 ‘무엇이 하늘을 여는 것인가’하는 질문을 종종하게 하였으며, 그 하늘에 대한 관심은 뒷산에 누워 하늘과 흘러가는 구름들을 쳐다보는 일을 좋아하게 만들었다. 어린 시절 구름은 그저 신비롭고 환상적인 것이었으며, 성장과 더불어 변화무쌍하고 자재무애하는 구름의 조형은 저러한 것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욕구를 불러 일으켰다. 그러한 욕구가 조형예술인 건축에의 관심을 불러 일으켰으며 후일 작가가 될 것인가, 스님이 될 것인가를 두고 고심을 거듭하다, ‘하늘을 옮아가는 구름에 어떤 흔적이 있던가’ 하는 스님의 말에 작가 그리고 禪을 공부하는 철학자의 길을 가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의 작품 방향

禪의 空間은 역사적으로 간명하고 직접적인 구조를 통해 이룩되었으나, 그 동안의 작품은 정(靜)에도 머물지 않고 동(動) 에도 머물지 않는 靜中動 動中靜이 아니라, 靜도 없고 動도 없는 둘이 아닌 일합(一合)의 현대적 리얼리티(Reality)를 갖는 禪味의 空間을 추구하였다. 그 방법으로써 일 획으로 일체를 표현하거나 일체로써 허공에 일획을 긋는 일승법(一乘法)의 건축 혹은 실내 건축을 하려고 노력했으나, 앞으로의 작품 방향은 ‘덕산의 방망이’, ‘임제의 할‘이 아닌 ‘가섭의 미소‘와 같은 비어있음으로 일체의 본질인 진여를 만나고자 한다. 즉 한정된 모습과 고정된 실체로서의 건축과 공간이 아닌 변화하며 이어지는 생명의 실상인 空의 모습으로 무한 생명을 위한 무한 공간을 추구한다. 空은 객관적 실체가 따로 없는 것으로, 실체가 없음으로 무한한 실체를 만들어 내는 자리이다. 마치 텅빈 거울과 같이…註ㆍ덕산의 방망이와 임제의 할:덕산은 도를 묻는 자에게 방망이질을 자주 하였으며, 임제는 ‘할’이라고 큰소리로 말하였다는 고사註ㆍ가섭의 미소:부처가 연꽃을 들어보이자 가섭이 부처의 뜻을 알아 듣고 미소를 지었다는 고사

작가로서의 디자인 철학

禪建築은 禮로서의 禪, 禪으로서의 禮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20세기 초 근대 건축운동은 ‘기능을 향하여’, ‘LESS IS MORE’ 등의 가치로 역사 문화적 진보를 이룩하였으나, 다가오는 세기는 ‘인간과 환경의 본성을 향하여’ 라는 가치로 대체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인간과 환경의 본성은 일치한다는 생각으로, 물질 문명 혹은 기술이 인간의 문제를 해결해줄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이상도시란 존재하지 않는 꿈이며 오히려 인간과 환경의 본성으로 돌아가는 것. 그리고 돌아가게 하는 것이 전제될 때 서 있는 바로 이곳이 불국토(佛國土), 서 있는 바로 이곳이 금수강산 일만 이천봉이 될 것이다. 이와 같이 자연계의 원리에 지배받는 현상계의 원리는 변화하는 자연계의 원리와 일치함으로 그 생명의 지극함을 알게 되는 것. 중중무진(重重無盡: 해도 해도 다함이 없는) 무한생명으로서의 인간생명을 무한 공간으로서 발견하게 하는 空間, 무한 영역의 인간을 어찌 유한 영역의 건축으로 담을 수 있겠는가?즐거움을 주는 건축이 아닌 즐거움을 발견하게 하는 건축을 통해서 산을 넘어 내려가는 것. 올라가는 길보다 내려가는 길은 편하고 시원한 바람이 부나, 내려오는 길은 올라가서 산을 넘어 가야 하는 것. 이와 같이 건축에서 자유롭고 일체로부터 자유하자면 바로 보고, 바로 앎을 통해 건축의 건축이 아닌 건축에서 자유로운 건축을 통해 일체에서 자유로워지는 것, 그것이 선건축(禪建築). 자유로움도 없어지는 것, 그것이 예건축(禮建築).힘찬 기세와 자유자재하는 유연함을 법도 삼아 무한의 질서와 함께 하는 질서가 아님으로(非秩序) 질서가 있고, 완성하지 않음으로(非完成) 완전한 것. 평정, 고요하면서 대지와 공간에 기가 돌아 능수능란하는 化와 動의 空間. 존재와 시간을 넘나드는 시간과 공간이 무한 운동을 하는 建築, 비어있음으로 일체와 함께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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